강태중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에듀인뉴스=지준호 기자]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1년을 맞았다. 문 정부는 출범이후 내내 60%대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해 왔으며, 여기에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친 문재인 정부라 할 수 있는 진보 교육감들이 17개 시도 중 14개 시도를 석권했다. 국회는 제 일당 의석을 확보했으며, 여당 압승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로 문재인 정부는 과거 그 어느 정부보다 교육정책을 별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정치 지형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1년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그다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김상곤 교육부장관 주도로 진행된 유아 영어정책, 대입정책들이 우왕좌왕하면서 공론화위원, 국가교육위원회 등 어려운 결정은 모두 위원회 소관으로 공을 넘겨 빈축을 사기도 했다. 본지는 문재인 정부 1년의 교육 전반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되돌아 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첫회 교육정책 평가에 이어 2회와 3회에서는 특히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대학 입시와 고교 입시 정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강태중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강태중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매우 실망스런 文정부 교육정책 행보

우리 사회가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는 각별했다. 각별했던 기대는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국정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좀 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았다는 반증이고, 앞으로 더 기대하고 있다는 국민의 바람도 보여준다.

하지만 교육 부문에 주목해보면 사태는 다르다. 교육 문제에 대한 논란은 유독 소란스럽고, 정책에 대한 불만도 유난히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만 보게 되는 현상은 물론 아니다. 교육 정책에 대한 이해(利害) 대립은 늘 날카로웠고, 과거 정부들에서도 불만은 일반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이 이전 정부들보다 못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전과 다름없기 때문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촛불 시민’이 지지한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했을 때, 교육 부문에서도 전과는 다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이전처럼 타성적이고 피상적인 ‘개혁’ 타령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만하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기대를 감지했을 터이지만, 교육 정책은 전과 다름없이 타성에 젖어있다. 부러 정책을 망칠 리는 없으므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 행보는 매우 실망스럽다.

수능개편안 “정책의 심지(心志)가 있기는 한 건지...”

문재인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교육 정책의 심판대에 올랐다. 출범 3개월 안에 ‘수능 개편안’을 내놓아야 했었다. 박근혜정부에서 교육과정을 개정한 데 따라 남겨진 숙제였다. 이 숙제는 결국 제때 해내지 못했고, 지난 1년 남짓 계속 거기에 매달려 왔다. 오는 8월 말까지는 최종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과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동안 문재인정부가 보인 행태에 비추어,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게 낫다. 대입제도를 다루는 데서, 문재인정부는 실력이 미흡하고 노력도 부족하다.

적어도 대입 문제에 관한 한, 문재인정부는 애초에 정련된 안목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공약부터 야물지 못했다. 공약에서 드러나는 ‘캠프’의 안목은 필부의 상식 수준이다. 공약의 구성과 내용에서 식견의 탁월함을 읽어볼 수 없고, 낱개 공약들 사이에 철학이나 논리의 일관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년여 수능 개편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는, 정책의 심지(心志)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문재인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 공약 관철하려다 결국 후퇴

문재인 정부가 작년 8월 수능 개편을 매듭짓지 못하고 1년을 유예해야 했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대선 공약에 관련돼 있다.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는 “수능은 절대평가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필경 이 공약 때문에, 작년 8월 10일에 발표했던 ‘수능 개편 시안’에, 교육부는 “절대평가 과목 확대” 항목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한 논란은 뜨겁고 대립적이었다. 결국 공청회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하는 데 실패했고, 교육부는 “수능 개편, 1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교육부는 “절대평가 범위 등 수능 개편방향에 대한 교육주체 간 이견이 크고,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음도 확인”했다고 변명했다.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절대평가 확대’ 안을 넣지 않았더라면, 수능 개편안을 작년에 매듭지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작년 수능 개편은 ‘2015 교육과정 개편’에 부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험 과목을 재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기회에 ‘수능 절대평가’의 공약을 관철시키려고 했고, 그 시도는 논란을 걷잡을 수 없이 비화시켰다. 정부는 물러섰다. 빚어질 혼선이 작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소통의 교육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며 금년 8월말로 결정을 미뤘다.

'수능 절대평가'가 수능 상대평가 대안? 변별력 약화된다고?

‘수능 절대평가’ 공약은 무지하고 타성적인 믿음의 소산이다. 그런 공약을 주요 정책 의제로 올리고 1년 이상 혼란을 감수하며 ‘공론’해야 할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 공약은 전제부터 틀렸다. ‘수능 절대평가’는 ‘수능 상대평가’에서 벗어나는 대안이라고 전제하고 있는데, 사실 두 안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수능의 실제에서 보면, 상대평가는 ‘스태나인’(Stanine)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고, 절대평가는 점수 급간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상대평가 방안을 채택하면, 상위 4% 점수대는 1등급, 버금 7% 점수대는 2등급, 그 아래 12% 점수대는 3등급 하는 식으로 등급점수를 부여하게 된다. 절대평가에서는 90점 이상은 1등급, 80점 이상 90점 미만은 2등급, 그리고 70점 이상 80점 미만은 3등급 등으로 매기게 된다. 전자의 경우 등급을 자르는 선(점수)이 정해지지 않은 반면, 후자 경우에는 그 선이 이미 정해져있다. 이런 겉만 보면 두 방식이 전혀 달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두 방식은, 점수 서열에 따라 등급을 ‘상대적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하는 상황에서도, 상대평가 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1, 2, 3등급 받는 수험생 비율이 각각 4%, 7%, 12%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하면 수능의 변별력이 약해진다고 철석같이 믿고 주장하는데, 천만에 말이다. 시험의 난이도를 조절하면, 절대평가 체제에서 상대평가 경우보다 훨씬 더 변별력 있게 만들 수도 있다.

요컨대, 시중의 수능 상대-절대 평가 논란은 의미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선 캠프에는 그 무의미함을 간파할 수 있는 양식(良識)이 없었다. 시중의 상식에 휘둘린 채, 수능에 ‘절대평가’ 등급제를 도입하면 굉장한 교육 변화가 올 것으로 믿었고, 그 믿음대로 공약을 만들고 정책을 밀어붙이려 했다. 결국 1년 이상 쓸 데 없는 공론에 비용과 노력을 허비했다.

‘공정’ ‘단순’ 대통령 말씀 따라 공약은 사라지고...수능·정시 확대로 선회

‘수능 개편’ 문제를 1년 더 끌고 가면서, 유예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였는지, 문재인 정부는 과제를 더 키웠다. ‘수능’ 개편 의제를 ‘대입제도’ 개편 의제로 확대했다. 당시 보도자료에서 교육부는 “대입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확인했다면서, “새 정부의 교육철학을 담은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유예 기간 1년 가까운 “논의와 정책연구”를 바탕으로, 교육부는 정책 의제를 새롭게 구성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전형 간 적정 비율”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의제는 ‘국가교육회의’에 이송돼서 “학생부위주전형과 수능위주전형 비율” 문제로 낙착됐고, 최종 ‘숙의’를 위한 ‘시나리오’에서 중추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학생부위주전형과 수능위주전형의 비율’을 주요 의제로 삼는 데 문재인 정부의 어떤 ‘교육철학’이 반영됐는지 확실하게 파악할 길은 없다. 대선 공약이나 ‘100대 국정과제’에는 그런 의제가 명시적으로 들어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계속 표방해왔던 바,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라는 정책 슬로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될 만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대통령이 특정하게 내린 ‘말씀’을 반영했으리라고 짐작하는 게 적절할지 모른다.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를 출범시키면서, ‘대입입시제도’는 모름지기 ‘공정’하고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상황에 맞춰 직접 내린 지침을 교육부가 정책 과정에서 외면할 리는 없다. 핵심 의제로 그 지침을 수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실지로 교육부는 대입제도를 개편해야 하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 ‘대통령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침이 ‘학생부-수능 전형 비율’ 의제에 반영됐다고 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입제도 개편에는 매우 확정적인 아이디어가 이미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대입제도를 공정하고 단순하게 바꾸려면, 수능위주전형 비율을 더 이상 줄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있는 셈이 된다. 학생부위주전형과 수능위주전형의 비율을 의제에 올렸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수능위주전형 비율을 줄이지 말아야 하다는 대안을 전제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다만, 최근 몇 년 이어져온 ‘수시-정시 비율’ 논란의 흐름을 감안하면, 그 전제를 충분히 수긍하게 된다. 그 논란은 정시(수능위주전형) 비율이 줄고 있는 추세에 대해 꾸준히 이의를 제기하는 양상으로 일어났던 바,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 대해 수용적인 입장을 보인 적이 없다.

따라서 이번에 예기치 않게 그 비율 의제를 채택했다는 사실은 문재인 정부가 입장을 바꾸었다는 걸 시사한다. 정시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를 재고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 된다. 실지로 수능위주전형의 비율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숙의’가 마무리돼가는 현재, 대입제도 개편의 모든 시나리오는 그 비율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대입제도 개편 1년...文정부 교육철학 “매우 박약”

문재인 정부가 갑작스럽게 채택한 ‘수능 중시’ 철학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의아스럽다. 수능 점수로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게 도덕적으로 마땅하다는 뜻인가? 흔쾌히 수긍하기 어렵다. 수능이 수험생들을 차별한다는 점은 두루 실증돼 있다. 예컨대 사교육이 수능 점수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데, 수능은 그만큼 차별적이다.

수능이 모든 수험생에게 하나의 규칙을 일관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객관적인 결과를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정하고 단순하기까지 하다는 뜻인가? 그런 미덕이라면,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는 방식도 갖추고 있다. 수능이 자체로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것을 일관되고 투명하게 적용한다고 해서 공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익히 알려졌듯이, 수능은 수많은 학생의 공부를 무의미하게(입시위주로) 만들고, 결국 동기를 갖기보다 포기하게 한다. 수능위주전형이 확대될수록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더욱 말라갈 수 있다.

대입제도 개편에 1년 넘게 매달리면서 문재인 정부가 드러낸 교육철학은 매우 박약한 것이었다. 교육정책은 계속 부박(浮薄)하고 부유(浮遊)할 터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라도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별할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