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올해는 입시 한파가 없다니. 날씨가 추우면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더 긴장되고 불편할텐데 예년 기온을 웃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

학교도 초긴장 상태구나.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기에 다소 느긋할 수도 있지만 수능만큼은 그럴수가 없구나. 이 시험 하나를 보고 무려 12년 가까이 달려온 수험생들을 생각한다면 티끌만큼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한창 부풀어 오르는 청춘들을 낚시 바늘에 미끼를 걸어 끝없이 먹이 주변을 서성거리게 했던 야간자율학습도 오늘 저녁까지면 마무리되는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어둠의 블랙홀같던 그 야간자율학습도 결국은 꼬리를 드러내니, 세월이란 이름 앞에는 모든 것이 공평함을 새삼 깨닫는구나.

오늘 저녁 마지막 야자를 끝내고 내일 예비소집을 마치면 드디어 결전의 순간을 앞둔 긴장의 밤을 맞이할 것이다. 글쎄,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결해야할 그 치열한 경쟁의 무대를 앞두고 외롭고 불안한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도 걱정일게다.

대사를 앞두고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마음을 통제하는 것일 게다. 자꾸 시험과 관련된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꼬리를 물며 불안감으로 변해 나의 연약한 마음을 공격할 것이다. 그래서 수능 전날이라도 그냥 평소처럼 공부하며 생각의 여백을 만들지 말고 늘 잠자리에 들었던 시간에 맞춰 일과를 마무리하자.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수능에 대비하여 갖가지 팁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관심을 갖는 것에도 눈을 감고 그저 나 자신만의 자연스런 흐름속에 맡겨두자.

이곳저곳에서 난무하는 대박이라는 말의 달콤한 유혹에도 그저 무덤덤해지자. 시험을 앞두고 마치 불로소득을 얻는 것이 큰 행운이라도 되는 듯한 세태는 적어도 정정당당한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그저 내가 준비해 온 만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욕심부리지 말자. 내 실력만 제대로 발휘하면 그것이 대박일 게다.

아쉬움도 있다. 수업 시간에 조는 모습을 보고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하고 다그쳤던 무정(無情)이, 왜 풀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냐며 더 세심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버럭 화부터 냈던 비정(非情)이, 저 냉정한 대결의 장에 서게 될 너희들에게 힘이 되지 못함을 알기에, 더 안타깝고 민구스럽구나.

이제 곧 결전의 장으로 떠날 너희들에게 몇 가지만 당부할게.

불안하면 안된다. 내가 모르는 문제부터 나오면 어떡할까, 혹시 마킹을 잘못해서 밀려 쓰면 어떡하나, 다 풀지 못했는데 종이 나면 어떡할까, 주변 수험생이 나에게 엉뚱한 요구를 하면 어떡할까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안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자연스럽게 밀려드는 불안을 통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게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자꾸나. 학교에서 치르던 모의고사보다도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주변분들이 도와준다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잠시 제쳐놓고, 답안은 문항번호와 정답을 짚어가며 차분하게 마킹하고, 아는 문제부터 풀되 짬짬이 시간을 체크하며, 감독관 선생님이 앞뒤로 수호신처럼 보호하기에 매우 든든하다고.

조급하면 안된다. 수능을 치르는 시간은 어차피 길어야 8시간 이란다. 그 시간에 네 과목 또는 다섯 과목을 치러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단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소 여유있게 생각하고 시험에 임하렴. 행여 시간이 짧다고 서두른다면 시험을 그르칠 수 있단다. 짧다고 느끼면 마음속에 불안이 엄습하고 그러다보면 성급하게 문제를 풀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실수의 시작이란다.

차분해야 한다. 아마도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이 가장 긴장감이 높을 것이다. 문제를 풀다 보면 어떻게 시간이 지나 갔는지 모를 게다. 혹시 1교시 시험을 치르고 나서 각자 느끼는 감(感)이 있겠지만 ‘좋았어’라는 느낌이 들면 다행이지만 ‘아쉽다’라고 한다면 그대로 무시하고 다음 시간만 생각하렴. 만에 하나 국어시험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면 다른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추슬러야 한단다. 그래서 해당 시간 시험이 끝나면 일단 복도로 나가서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시렴. 그리고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짧지만 가벼운 명상을 통하여 차분하게 마음을 비워보렴.

물론 수능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이번 주말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학별 논술고사와 적성고사가 기다리고 있단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말고사도 있고. 가채점 결과를 놓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주어질 거다. 마지막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받을 때까지 그 이전의 모든 과정은 단순히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할 따름이란다.

물론 수능성적이 좋으면 대학으로 가는 문을 좀 더 유리하게 열 수 있지. 그래서 수능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너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두렴. 수능 성적과 관련없이 수시에 합격할 수도 있고, 최저는 충족했지만 논술이나 적성에서 떨어질 수도 있으니. 그저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기에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란다.

이제 이틀 후면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시험장으로 들어설 게다.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밑천이 있는데 시험지가 나를 외면하지는 않을 거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 여름의 그 무더위에도 책상을 떠나지 않았던 그 끈기와 열정이 남아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시험지도 너의 내공속에 담긴 에너지를 알아채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답안지로 고스란히 전달해 줄 게다.

오늘 아침 쓰는 이 작은 편지가 대사(大事)를 앞둔 너희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만에 하나 너희들의 어깨에 드리워진 그 막중한 무게를 털끝만큼이라도 더는데 일조한다면 그건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내게 있어 가장 큰 훈장일 게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시험을 치르는 내내 너희들을 낳아 지금까지 길러주신 부모님의 그 간절한 염원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희들을 향해 응원의 기도를 보내고 있을 게.

대한민국 수능 수험생 파이팅!

 

대한민국 수능 수험생 화이팅!

 

최진규 충남서령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