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IB(국제 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e) 도입을 추진해 온 대구·제주교육감과 관련자 10여명은 26일 현재 싱가포르에서 IBO 회장단과 만나 IB 한글화 관련 최종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이 또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날이 될지도 모른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IBDP(세계표준 고교교육과정)를 국내 고교에 첫 도입한 이력을 가진 충남 삼성과 박하식 교장을 만나 IB가 무엇이며, 왜 우리나라에 도입이 필요한지, 도입 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 지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국내에 IB 도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을 통해 (1)일본의 교육혁명 (2)교육혁신으로서의 IB (3) IB 도입 시범학교의 과제 ⑷ 국내 도입에의 제언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일본의 IB 도입..."공교육 혁신 롤모델로 접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의 주입식·획일식 교육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속에, 2013년 1월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 후 한 달 만에 ‘경제회생’과 ‘교육재생’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면서, 신메이지 유신과 같은 국가 재건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교육개혁이 추진되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월 총리실 산하에 ‘국가교육재생회의’를 신설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들이 눈을 뜨고 그 교육기회를 갖는 것’을 목표로 국가교육재건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2013년 6월에 2020년 수능(센터시험) 폐지를 선언했고, 동시에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을 자국어로 번역, 공교육에 도입하여 교육대개혁의 모델로 확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문부과학성(교육부) 결정이 아니라 각의(국무회의) 결정이라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일본은 교육개혁을 단순히 교육계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 차원의 미래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IB는 1968년부터 비영리교육재단인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에서 개발·운영해온 국제인증 교육과정 및 시험으로 전세계 150개 국 이상 5천여 개의 학교에서 도입하고 있고, 전과목 논·서술 대입 시험 체제임에도 2천여 개의 세계적 수준의 대학에서 신뢰하고 선호하고 있다.

사진=ebs 방송화면 캡처
사진=ebs 방송화면 캡처

일본 공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는 학습자 주도(Active Learning)의 꺼내는 교육(Inquiry-based Learning)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공교육에 IB 인증학교를 2018년까지 200개 교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국내에 IB 학교는 12개 교가 있는데, 11개 교가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이고, 공교육 분야에서는 경기외고의 한 반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모두 영어로만 운영된다.)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IB는 연간 수천만 원씩 학비를 내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에서만 운영되던 교육과정이었으나, 일본 정부는 “경제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면서 이 교육과정 전체를 자국어로 번역하여 공교육에 무상으로 확산하고 있다.

2017년 5월 문부과학성에서 공식 발표한 ‘IB를 통한 글로벌인재 육성방안 전문가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의 IB 도입의 첫째 목적은 ‘초·중·고 공교육 개혁의 롤모델’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 목적이 그렇게 개혁된 ‘일본형 교육 모델을 해외에 역수출’하는 것이다. 셋째는 ‘글로벌 역량의 인재 개발’이고, 넷째가 일시적 붐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개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공교육 개혁을 위한 롤모델로 IB를 전략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일본의 궁극적인 최종 목적은 IB 학교의 양적 확산이 아니라 국가 공교육 시스템의 본질적 개혁이다. 일본 공교육에는 약 20,000개의 초등학교, 10,000개의 중학교, 5,000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이 중에서 200개 교에 IB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47개 시도교육청 권역별로 초, 중, 고, 한 두 세트씩을 만드는 개념이다.

도입 학교 숫자 중요하지 않아..."교사들이 IB 퍼뜨릴 것"

IB 인증을 받은 시범학교가 관할 내에 생기면 주변 학교들은 이 시범학교로부터 배우면 된다. IB 학교에서 4~5년을 근무한 베테랑 교사가 다른 학교에 가서 IB 교육을 퍼뜨리고 수정·보완할 수도 있다. IB 교육은 기존의 주입식 교육보다 선진적이기 때문에 한번 IB 교육에 익숙한 교사가 되면 다시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 일본의 공립학교 IB 교사들도 기존 교사가 IB 교사로 변할 수는 있어도 IB 교사가 다시 기존의 주입식 교사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증언한다.

일본은 이처럼 IB 시범학교 주변 학교에서 IB 시범학교 교육을 참관하고 연수를 받으면 IB 인증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도 IB 방식의 교육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즉, 궁극적 목적이 일본 공교육 전체의 개혁이기 때문에, 일본 공교육의 IB 도입은 일본 공립학교 전체를 IB 인증학교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200여 개의 IB 인증학교를 일본 공교육 전체 개혁을 위한 모델 학교의 역할로서 전략적 도입하겠다는 취지이다.

사진=ebs 방송화면 캡처
사진=ebs 방송화면 캡처

IB 이해에는 시간 걸리지만...이해 후엔 반응 긍정적

IB 도입은 일본 교육 대개혁의 큰 그림 중 한 전략이다. 문부과학성에서는 우선 (1) IBO(IB 본부)와 제휴를 맺고 (2) 초‧중‧고 전 교육과정 번역 (3) 교사연수 (4) 채점관 양성 (5) IB 인증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입학 허용 (6) IB 교과를 국가교육과정의 교과로 인정 등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IB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에는 우려하는 국민들도 있었지만, 일단 IB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매우 긍정적인 호응으로 바뀌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IB 교육을 하기 위한 인증을 신청하면 완료될 때까지 2~3년이 걸리는데, ‘IB 인증관심학교 → IB 인증후보학교 → IB 인증완료학교’ 이렇게 3단계 과정을 거친다. IB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증이 완료되기 전의 후보학교나 관심학교는 발표하지 않는다. 2018년 8월 현재 일본 내에서 인증을 완료한 학교는 84개 교(초28+중17+고39=84개 교: 한 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둘 다 운영하는 경우 1개 교로 간주되어 총 59개 교로 보고되나 우리 공교육처럼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따로 계산하면 84개 교임), 인증을 기다리는 대기 학교까지 포함하면 140여 개 교이다. 이는 140여 개의 학교에서 이미 교육체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2020년부터 바뀌는 대입시험에 논·서술 문항을 포함하고 영어도 문법, 독해 위주를 넘어 말하기, 쓰기를 포함하기로 하는 등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교육대개혁의 과정일 뿐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일본은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시대에 맞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개혁을 계속 진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