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서울 서일중 교사·변호사

박종훈 강남 서일중 교사, 전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팀장, 변호사
박종훈 서울 서일중 교사‧변호사/전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사무관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불과 1년도 안 되었지만), 교육청 내부와 자주 부딪힌 문제는 의외로 ‘학생의 두발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②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

아니, 그 말 많은 ‘화장’이나 ‘휴대폰’도 아니고, ‘두발자유화’라니, 이 얼마나 케케묵은 주제인가.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것이 2012년, 6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일까?

실상은 이렇다. 현황을 파악해보면, 곽노현, 조희연 소위 진보교육감을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공립학교에서 ‘두발의 길이를 제한’하는 규정은 사라졌다. 일부 학교는 공청회나 대토론회 등을 통해서 ‘염색’과 ‘펌’을 완전히 허용하는 학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반면 많은 사립학교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두발 제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서울의 고등학교 중 사립학교의 비율은 무려 62.9%나 된다.

이것을 단순히 ‘사립학교의 자율성’이나 ‘버티기’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공립학교가 학생들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보장하려 할수록 상대적으로 사립학교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생들을 잘 잡아주는 학교’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교가 소위 ‘지역명문’으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청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를 준수하지 않는 학교,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학칙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좁혀졌다. 현황 파악을 위해 학칙들을 조사해보니 공립학교의 경우 ‘길이’는 제한하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규제는 대부분 하고 있었고, 사립학교의 경우는 ‘길이’부터 규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두발’의 문제는 신체의 자유 중 핵심적인 부분이다. 자신의 신체 중 자신의 의지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부위는 몇 군데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두발은 개성을 실현할 권리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독재정권 시절, 장발금지령을 생각해보면 쉽다.

나의 생각은 단명했다. ‘두발자유화’는 이미 흘러간 시대의 아젠다이다. 인간의 기본권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 ‘체벌’도 ‘학교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논의의 대상이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닌 것처럼, 두발에 관한 부분은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도록 안내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플랜만 짜서 집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다. 먼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했고, 두번째로는 설사 학교들이 지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육청이 이것을 가지고 어디까지 제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이야기했고, 마지막으로는 이것이 곧 있을 '선거'에서 ‘마이너스표’가 될 수 있음을 걱정했다.

이렇게 부서마다 의견이 다를 경우 결국 ‘장’이 결정하면 된다. 당시 교육청을 그만두겠다는 나에게, 조 교육감은 “박변, 재선만 되면 그때는 드라이브를 걸 테니 믿어 달라”고 당부하며 퇴직을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그 ‘드라이브’를 교육청에서 보지 못하고 현장에서 보고 있지만...

오늘 기사를 보니, 원칙은 정하되 결국 ‘공론화’로서 접근하는 것 같다. 그 결정마저도 참 ‘조감스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조희연 교육감은 태생이 ‘갈등은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조율할 수 있다’라고 믿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권의 영역도 ‘공론화’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인품으로는 참 존경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교육감으로서의 결단이라고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다.

그렇다고 오늘 ‘쇼’같은 기자회견이 의미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당장 오늘 학교 점심시간에 들린 선생님들 간의 대화에서부터 느꼈으니까.

“차라리 교복까지 폐지하라고 하지. 왜 두발만 그런데요?”, “이제 곧 화장도 말이 나오겠죠?”, “학교에서 선도는 이제 필요 없겠어”, “앞으로는 불필요한 걸로 학생들과 충돌하지 말라는 거지 뭐”, “교문지도 할 필요가 없겠네. 교실에서 지각만 체크하면 되겠구만”

물론 그 사이에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두발’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 이제는 시대가 확실히 바뀌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교육감 저서 중에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라는 책이 있다. 다니는 학교는 달라도 보장되는 인권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정착되었으면 한다. 조희연 교육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