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경험 "일차적 경험과 이차적 경험으로 분류"

교육계와 교육학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학계에서도 존 듀이(John Dewey)는 누구에게나 이미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알려진 만큼 그의 이론이 잘 이해되고 소개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은 ‘실용주의’, ‘실험주의’, ‘진보주의 교육’, ‘새교육’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되어 왔고, 우리의 교육계와 교육학계는 그를 현대적 교육사상의 근원인양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교육계에서 심도 있게 평가된 수준은 아니었다. 에듀인뉴스는 정치와 교육의 이념적 갈등이 극심하고 특히 자유주의적 전통과 강령적 기조에 대한 이해의 혼란이 심각한 수준에 있는 이 때, 존듀이의 실험주의적 자유주의와 이에 일관된 교육사상을 검토해 보는 ‘왜, 지금 존 듀이를 읽어야 하나’를 연재한다.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경험의 일상성과 지식의 생성

일상적인 삶의 상황과 경험에서 우리는 지식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탐색적 지식은 원천적으로 우리가 매일 같이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험, 즉 우리가 보고 듣고 즐기고 시달리면서 사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 경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물론 탐색적 지식과는 구별되는 관조적 지식에 속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적 삶의 상황과 경험에서 근본적인 자료를 제공받는 것이 보통이다.

단지, 논리학이나 수학과 같은 형식이론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사고의 규칙과 형식을 내용으로 하는 지식이나, 초과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형이상학적 존재이론이나, 초월적 세계를 상정한 계시적 영감에 근원을 둔 신비주의적 신념 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앎 혹은 믿음의 대상이 되는 거의 모든 지식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상황과 경험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관조적 지식들 중에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무관하게 형성된 지식이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있고, 임의의 지식이 진리임을 확인하는 기준은 궁극적으로 대응론적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탐색적 지식과 구별된다.

지식은 일상적 삶에서 서로 공유해 생성된다

물론 탐색적 지식의 경우에도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관련이 있는가를 의심케 하는 것들이 있다. 고도의 전문적 지식은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것이고 나와 무관한 지식이며, 그것이 설명하고 밝히는 세계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할 만한 것이 있다.

그러한 지식은 개인적으로 나와 무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은 일상적 생활 속에서 다 같이 나와 함께 태양, 대지, 식물, 동물 등의 자연적 환경 그리고 전통, 제도, 관습, 유행 등의 사회적 환경을 함께 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산한 지식은 내가 추구하는 세계의 이해에 관련이 있거나, 모두가 함께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은 나만의 고립된 삶의 경험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일상적 삶을 같이 하는 공동체적 삶의 경험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도 나와 함께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고, 내가 특정 분야에 관하여 잘 모르는 것은 구성원의 역할에 있어서 분업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의사가 될 수는 없으므로 의학적 지식을 반드시 나도 소유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우리는 모두,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든 아니든, 적어도 일차적 경험은 일상적으로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혹시는 생활의 환경과 추구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으면, 어떤 사람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차이는 우연적인 기회의 차이일 따름이다.

지식을 생산하는 원초적 경험은, 나의 일상적 삶과 경험을 초월한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누구나 함께 가지는 일상적 경험에서 전문적이든 비전문적이든 지식이 생산된다. 우리가 여기서 검토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 같이 평범한 경험, 즉 반성적 사고가 개입되지 않는 ‘일차적 경험’에서 ‘이차적 경험’으로 이어지면서 지식이 만들어지는 원리에 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일차적 경험 '불확실, 유동적, 우연적', 이차적 경험 '변화 예측 가능, 안정적, 규칙적'

일상적 경험의 성격에 관한 듀이의 견해를 요약해서 말하면 두 가지 차원의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에는 이런저런 잡다한 사물들이 있고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며 우연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적 특징에 있어서 변화의 예측이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서 우리가 통제하거나 관여할 수도 있을 만큼,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전자는 ‘일차적 경험’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이차적 경험’의 내용이라고 구별할 수 있다. 일차적 경험의 대상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세계에서 즐기거나 시달리거나 간에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겪게 된 것들이며, 각기 그 자체의 독특한 질성(특징)만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전체적 양상은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다듬어진 것이 아니며 그냥 한갓 복잡하고 거대한 덩어리째로 발생한 것으로서 우리가 즉시에 직접 대하는 경험이다. 물론 거기에는 반성적 사고를 거쳐 이론화된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차적 경험은 그러한 덩어리째의 일차적 대상에 반성적 사고가 개입되어 구조화 혹은 개념화된 것을 말하며, ‘이론’은 바로 이차적 경험의 대표적인 소산이다.

우리가 지식으로 언급하는 경험은 대개 이차적 경험에서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개념, 구조, 체제, 인과관계 등의 형식으로 다듬어진 것을 의미하지만, 일차적 경험은 비록 다듬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삶 그 자체에서 크고 작은 가치를 추구하기도 하고, 그 가치들을 실현하는 원천적 바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차적 경험에서 형성되는 질성적 상황은 심미적 감식을 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하며, 또한 여러 가지의 문제 상황도 발생케 하여 반성적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차적 경험에 소요되는 최초의 자료는 이러한 일차적 경험에서 제공받는다. 이차적 경험은 감각적인 접촉의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비롯한 인식의 틀을 구성하여 일차적 경험의 대상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의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이차적 경험에 의한 결과를 검증한다는 것은 일차적 경험에로 되돌아 다시 검토함을 의미하고, 되돌아 본 경험은 일차적 대상에 대한 더욱 체계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그 의미를 더욱 풍요하게 만든다.

듀이, "이차적 경험의 기능이 중요하다"

이차적 경험의 기능과 중요성을 듀이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직접 접촉하는 일차적 경험의 대상, 예컨대 굳기, 색깔, 냄새 등은 이차적 경험의 대상으로도 그 특징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대상을 이차적 경험에서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검토해 본래 직접적 경험에로 되돌려 보면, 그 대상이 지닌 질성들은 더 이상 고립되어 있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낱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여러 대상들과 함께 하나의 전체적 체계 속에 포함되어 있게 된다. 즉, 그것들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다른 부분과 연계되어 있고 또한 그 연계된 사물들의 의미를 드러낸다.

듀이는 예를 들어 일식(日蝕)에서 관찰된 현상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질량에 의한 빛의 굴절을 설명한 이론을 검증하고 확정시키기까지 한다고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이차적 경험의 대상이 된 현상 그 자체는 그 이전보다 훨씬 더 폭넓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아마도 만약 그 이론이 새로운 관찰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았더라면, 그 현상은 거의 알려지기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 현상이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마치 우리가 거의 머리를 써서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넘기는 자질구레한 일들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놓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실제적인 빛의 굴절 현상 자체도, 이론이라는 수단에 의해 접근되면 빛의 굴절을 경험하게 하는 혁명적인 이론의 중요성 못지않게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이차적 경험 요구 없으면 일차적 경험은 방치

이차적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러하지만, 우리가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새로운 경험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원초적 자료로서 제공된 부분이 바로 일차적 경험인 셈이다. 위에서 빛의 굴절에 관한 (이차적)이론은 이미 일식에서 관찰된 (일차적)경험을 애초의 자료에 포함하고 있었고, 일식의 현상 그 자체도 원천적으로 볼 때 그 이전의 경험에 대한 반성적 작용을 거쳐서 성립된 지식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이차적 경험의 구분은 특정한 상황에서 새로운 반성적 검토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으로 구분되는 서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만약에 이차적 경험의 필요와 요구가 나타나지 않으면, 일차적 수준에 머문 경험과 지식은 거기서 방치되어 성장이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적 관계는 이전의 경험에서 새로운 경험이 형성되는 과정, 즉 바로 경험의 성장과정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