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과장

지난 9월 영국 교육정책 변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교육서라는 찬사를 받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이 국내에 출판되면서 지식 교육과 역량 교육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개정 교육과정에 창의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6대 핵심역량을 제시하며 역량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황이라 이러한 논쟁은 더욱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지식 교육과 역량 교육은 무엇이며, 양분될 수밖에 없는 개념인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상황인 지 등에 관한 교육 전문가의 의견을 담고자 한다.

권영민 교육부 학교교육정책과 과장
권영민 교육부 학교교육정책과 과장

세계적 추세, '역량 교육'

바야흐로 역량 교육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0년대 말, OECD DeCeCo 프로젝트에서 핵심역량(Key Competency)을 함양하도록 학교교육을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지금의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듯싶다. 그러나 이십 여 년이 흐른 지금, 호주 등 많은 국가에서 역량 개념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제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를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실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세계적인 교육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일찌감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중심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역량의 개념을 반영하기 위한 기초 연구와 논의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지난 2015년에 개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여섯 가지 핵심역량(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많은 국가가 미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을 역량 또는 핵심역량을 함양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식 암기 중심 학교교육 반성해야"

이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간 우리가 해왔던 학교교육에 대한 반성적 사고에서 그 논의의 출발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간의 교육 발전사는 끊임없이 시대상을 학교교육에 반영하는 작업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컫는 최근의 세계는 급속도로 빠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식의 재생산을 넘어서 기존 우리가 알던 지식의 수정도 요구받고 있다. 또한 AI, IoT 등 새로운 개념이 실생활에 파고들고 있으며, 특히 혜성같이 등장한 AI의 능력은 바둑, 의료 행위 등 특정 영역에서 이미 인간의 능력을 앞선다는 평가다.

그런데 우리 학교교육은 앨빈토플러가 그의 저작 ‘부의 미래(2006)’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기적 변화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주된 평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전통적 학문 중심의 지식 전달, 암기 중심의 교육이 여전하며, 미래에 살아갈 학생들에게 이러한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수많은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인간이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지식 중에 필요한 내용을 잘 찾아내고, 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역량교육으로 학교 수업 변화...평가 전환은 당연

이렇듯 시대사적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가 학교교육의 설계도인 교육과정에 핵심역량을 제시한 것은 적어도 시대적 변화에 일정 수준 잘 적응하고 있으며, 나름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을 선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혹자는 교육의 트랜드, 유행을 따라간 것일 뿐이라고 폄훼하는 이도 있지만, 대학 입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한국 교육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핵심역량의 제시는 학교교육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단순 지식 전달 및 암기 수업, 문제풀이 수업, 선다형 평가 등 우리교육의 특징으로 대변될 수 있는 수업방법을 토론, 토의, 실험, 탐구활동, 협력활동 등 학생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방식으로 교실수업을 바꾸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에게도 유의미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잠자는 교실, 교사만 열심히 하는 수업에서 깨어있는 교실,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수업으로의 변화를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또한, 수업이 바뀌면 당연히 평가의 방식도 같이 바뀔 수밖에 없다. 기존 지식 암기 중심 수업에서는 교사는 지식을 알고 있는가 만을 물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지식을 찾고, 친구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는 등 수업활동 전반이 바뀌게 되는데 평가 역시 수업에서 학생들이 활동한 전반의 내용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역량 교육의 시작을 통해 변화되는 학교교육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