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혜 수원 매탄초 교사

지난 9월 영국 교육정책 변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교육서라는 찬사를 받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이 국내에 출판되면서 지식 교육과 역량 교육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개정 교육과정에 창의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6대 핵심역량을 제시하며 역량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황이라 이러한 논쟁은 더욱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지식 교육과 역량 교육은 무엇이며, 양분될 수밖에 없는 개념인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지, 현장에서는 어떠한 상황인 지 등에 관한 교육 전문가의 의견을 담고자 한다.

손은혜 수원 매탄초 교사
손은혜 수원 매탄초 교사

2015년 9월 2015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이후, 학교 현장에는 어느덧 ‘역량’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아 현재 현장 곳곳에서 ‘역량’이라는 용어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정을 작성할 때, 수업을 고민할 때,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할 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자 할 때. 교육을 고민하는 그 중점에 어떤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인지,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역량중심교육, 현장의 교육방식을 흔들다

기존 전달중심, 교과서 중심, 교사 중심의 교육에 대한 반성과 회의는 현장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고, ‘주제 중심 교육과정’, ‘교육과정 재구성’, ‘프로젝트학습’, ‘창의융합 수업’ 등과 같은 교과별, 교과 내용 중심이 아닌 하나의 큰 주제 속에서 총체적인 배움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수업 방식, 즉 교과 뛰어 넘어서기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교사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용’이 아닌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는 ‘역량 중심, 학생 참여형 수업, 적성과 진로에 따른 선택학습, 학생 성장과 수업 개선을 위한 과정 중시 평가’ 등의 강조는 교사들에게 보다 자율적으로 수업 주제를 학생 삶과 가깝고, 학생들에게 유의미하도록 창의적으로 재구성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확대하였다. 아울러 지식 중심 평가보다는 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를 강조함에 따라, 교사의 수업에 대한 관점을 ‘내용’ 그 자체보다는 학생의 ‘활동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현장 변화의 가능성과 폭을 넓혀주었다.

교과 넘어선 새로운 배움의 도전, ‘프로젝트 학습’

최근 혁신학교를 비롯한 많은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하나의 큰 주제를 선정해 학년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에는 2015개정 이전부터 사용해온 통합교과가 그 자체로 프로젝트학습으로 운영될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을 중심으로 음악, 미술, 체육 등 교과로 구분되지 않은 다양한 활동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학생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지식, 기능, 태도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부분을 통합적으로 배우게 된다.

반면 초등학교 중·고학년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교과별로 구분하여 학습이 이루어지는 데,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 강조되면서 교과를 넘어서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한 문제 중심, 주제 중심 수업이 시도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프로젝트학습이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학습은 문제해결학습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큰 주제를 중심으로 그 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여러 교과 수업을 연계해 진행한다.

일례로 ‘세계시민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선정하고, 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영어, 사회, 미술, 음악 등 다양한 교과 시간을 활용하여 활동을 구성한다. 이렇게 프로젝트학습을 계획할 때에는 ‘그 목표를 무엇에 둘 것인가’에서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시민 프로젝트’의 경우, 일반적으로 내용적 측면에서는 ‘세계시민의식, 다양성 존중, 정의와 공정’ 등의 개념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활동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문제를 선정하고 해결하는 능력,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 의사소통과 협력하는 기술’ 등의 ‘역량’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프로젝트 학습 “동료 교사와 협업 필요”...교사 혼자하기엔 역부족

학교 현장에서 모든 교육내용을 재구성하여 프로젝트학습으로 진행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교과별 성취기준이 있고, 학생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교과별 핵심 개념이 존재하고 있으며, 교과에 따라서는 프로젝트학습보다 교사 주도형 수업이 효과적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과별 지도내용을 학생들이 충분히 익히는 데만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이 시간을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하거나 또 다른 형태의 다양한 시도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어 수학과 같은 교과는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에 활용되는 만큼 어쩌면 재구성해 운영할 다양한 소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적 개념을 지도하고 그것을 적용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학생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 재구성하는 데는 교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동료 교사 또는 동학년의 자체적 협력이 필수적인데 학생 개별 수준 차이를 극복해야 하고, 학습 결과가 불투명한 학습 방식을 함께 시도하자고 제안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성장중심평가, 오히려 평가가 수업 방해할 수도

최근 초등학교에서는 ‘성장중심평가’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현장 교육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도입된 가장 큰 변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수업 방식은 여전히 교사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평가 방식은 교사 개인이 선택하기 힘든 정책으로 추진해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보니 사실 기존 평가 방식에 익숙한 교사들에게 있어 ‘평가의 변화’만큼 두렵고 어려운 것도 없다.

교과에 따라 기초적인 학습 수준의 판단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현장에서 ‘성장중심평가’는 이제 교사별 평가, 상시 평가와 함께 모든 교과에 적용해야 할 것처럼 거칠게 도입되고 있다. 평가 방식의 변화는 수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중심평가가 과연 학생들의 개별 성장 과정을 제대로 평가해줄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 많다. 평가 문제 작성, 개별 피드백의 과정 등 이론적으로 너무나 친절해 보이는 평가가 교사 1인당 감당해야 할 교과별 평가영역의 수에 학생 수까지 겹쳐 무시하지 못할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식과 역량, 균형 만들어 가는 과정

최근 10년간 국내 교육과정은 수시로 개정하며 변해왔다. 이 변화가 어쩌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맞추려는 교육적 노력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변화의 시도가 어떤 결과로,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유행에 따라 맞춰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역량중심’ 교육도 이제 걸음마 단계이지만 현장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보다 학생들의 삶에 더욱 의미가 있도록 ‘지식’에 치우쳐있던 현장 교육을 ‘실천적 지식’ 교육으로 변화시키려는 과정으로 이해가 필요하다. ‘역량중심교육’은 ‘지식’과 ‘역량’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지금의 교육현장에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