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들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조윤희 부산 금정고 교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를 출제 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습지도를 하느라 두 바퀴째 도는 동안도 그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엎드려 자는 것도 아니면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꼿꼿하게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볍게 흔들어 봤다.

“OO야, 자냐?”

“아니요. 안 자요. 선생님”

“근데 왜 눈은 감고? 자습하려고 남았으면 공부를 하든지.”

“싫어요. 담임이 남으라 해서 남았지만 공부는 절대! 안 할 거예요.”

분노가 절절했다. 담임교사가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 권위로 자신을 억압했다고 믿고 있었다. 담임교사를 향한 분노 탓에, 자신이 혹여 공부한다면 담임에게 굴복하는 것이 될 테니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듯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사회제도를 배우는 시간. 가족 간의 유대 이야기도 나오고 하는 장면이었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칼만 있다면”

잘못 들었나 했지만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또 P학생이었다. 담임교사를 용서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번엔 서슬 퍼런 독기의 날을 자신의 가족 특히 아버지를 향해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의 눈엔 정말 살기가 느껴졌고 차라리 잘못 들었길 바랐지만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짧은 문장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K는 ‘에너자이저’ 같은 교사다. 교직 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아이들의 감정도 나름 잘 이해해서 코드도 잘 맞추고 수업시간을 떠들썩한 공연장으로도 만드는 분이었다. P학생은 그 K교사 반의 학생이었다. 늘 지각이 잦고 야간자율학습을 말도 없이 빠지기 일쑤여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잦았다. K교사는 P학생을 교무실에 불러 큰소리로 꾸지람을 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P학생은 입을 꽉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하던 터였다.

몇 번인가의 지각을 참다가 어머니와 통화를 했지만 개선이 되지 않자 K교사는 학생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 후 지각과 무단이탈이 반복될 때마다 K교사는 아버지와 통화를 했고, P학생은 담임교사와 아버지가 통화를 한 날이면 여지없이 두들겨 맞고 그다음날 등교를 하곤 했던 모양이다.

열정적인 K교사는 학급의 모든 학생에게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길 바랐다. 인문계고교인 만큼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해주고 싶은 넘치는 사랑 덕분에 P학생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횟수는 늘어갔다. 그 상황을 P학생은 교사를 향한 ‘적개심’으로, K교사는 교사 지도에도 불응하는 막무가내 학생이란 ‘낙인’으로 서로의 평행선을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P학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러나 운명이었는지 P학생이 필자의 반이 되었다. 고3이 되기 직전 상담 시간. 자습시간마다 뻗대며 담임에게 복수하기 위해 공부는 하지 않는 행동부터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공부는 누굴 위한 거냐?”

“잘 모르겠어요.”

“그래? 나도 모르겠다. 아는 데 그런 행동을 했다면 한 대 맞아야(?) 하는데 몰랐다고 하니 배워야 할 것 같고... 솔직해서 좋구나.”

‘맞자’는 이야길 하면서도 빙긋이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가니 아이는 의아해하면서도 필자와 평소 수업을 2년간이나 해왔던 터라 불편함 없이 대화는 술술 잘 진행되었다.

P학생은 자습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면서 K교사가 본인의 자율적 의사를 무조건 묵살했다는 생각, 어머니는 거르고 아버지와 직접 통화하는 K교사의 행동이 자신의 어머니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 게다가 K교사의 고자질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만 끓고, 복수하고 싶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너희 어머니 ‘새엄마’시냐?”

“?”

아이는 ‘뜨악’한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봤다. 느닷없이 던져진 돌직구 앞에 당황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어떻게 너를 배 아파 나으신 네 엄마 말씀을 그렇게나 안 들었더냐. 너부터 엄마 말씀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었느냐. 오죽하면 선생님께서 아버지께 전화를 하였겠느냐. 너부터 어머니를 존중해 드리지 않으면서 타인의 존중을 바라느냐. 게다가 선생님은 널 공부시켜야겠다는 절실함 때문에 선택한 ‘차선’이었지 싶다. 네가 어머니 말씀을 잘 들어 선생님이 어머니와 소통이 잘되었다면 아버지께 전화가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차분히 이야기가 이어졌다. 선생님을 향한 분노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향한 적개심은 여전해 보였다. 아버지는 지나치다 싶게 엄격하여 아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잘못하는 것이 하나라도 눈에 띄면 무조건 엄하게 체벌부터 하시려 들었다고 했다. 늘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메신저는 어머니였고, 잘못한 일들도 적당히 엄마가 상쇄시켜 전달하거나 기쁜 일도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에게 전달되곤 했었던 것 같았다.

두 분의 부모님을 모두 모셨다. 아무리 바쁘셔도 꼭 오셔야 한다고 청하고 셋이서 만났다. 아버지는 아들 사랑이 지극했으나 전혀 아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는 아버지셨고, 어머니는 가족 간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메신저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의 장벽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계셨다.

 

담임재량으로 5일간 방학을 드리겠다고 했다. 단, ‘방학숙제’가 있는데, 제주도를 다녀오시든, 설악산 등산을 다녀오시든 부자지간에만 여행을 다녀오시라는 부탁이었다. 꼭 둘이서만 가셔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엄격하게만 사랑했고, 아들은 아버지가 그냥 어렵고 무섭기만 해, 자상하고 친한 아버지가 그립고 그런 아버지 사랑이 고픈 상태였다. 어떻게든 물꼬를 터야 했고, 어머니라는 ‘매개변인’없이 아버지와 아들만의 직접 소통이 절실해 보였다.

약속은 잘 지켜졌고, 그렇게 봄방학을 보내고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P학생의 게으름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살기 어렸던 표정도, 부모님 특히 아버지를 향한 적개심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지각하거나 몰래 자습을 빠지면 어머니와 아버지께 동시에 문자가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죽어도 자습을 하기 싫은 날은 당당하게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괴로우니 못하겠다면 당당하게 빠지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과 교사에게 당당하게 지낸 아이와의 1년이 지났고, P학생은 수시로 모 대학의 경호학과로 진학을 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만면에 미소를 짓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모든 교사는 모든 학생의 페스탈로치가 아니다

K교사. 물론 지금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학생들과 부대끼며 최선을 다하고 계시지만 그 때의 그 P학생이 얼마나 선생님을 향해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신다.

교사들은 대체로 학창시절 모범생들이다.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약속을 어기는 일이 드물다. 그러니 열정이 넘치고 성격이 급한 편이셨던 K선생님도 자신의 방식대로 학생을 사랑하고 이끌고 싶으셔서 일어났던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좀 더 공부를 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으로 다 보내고 싶은 교사로서의 책임감이 가끔은 도리어 독이 되어 마음을 다치게 하기도 함을 우린 가끔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친구도 자신과 잘 맞는 친구가 있듯, 모든 교사가 모든 학생의 페스탈로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