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성’이라는 용어의 뜻

듀이의 자연주의적 사상과 이론을 이해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있을 수 있지만, 그의 교육사상의 이해를 위한 기본적 개념들로는 ‘경험’과 ‘사고’와 ‘성장’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지름길을 제공하는 것은 ‘질성’과 ‘질성적 사고’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질성(質性)’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말이 아니다. 이 단어는 영어의 ‘Quality’를 한자의 뜻에 따라 우리 글자로 표기한 번역어이다. 물론 흔히 문맥에 따라서 ‘질’, ‘품질’, ‘성질’, ‘특성’, ‘속성’, ‘자질’ 등으로도 번역되는 말이다. 이러한 번역어를 사용하지 않고 왜 반드시 ‘질성’이라는 표현을 우리말의 번역어로 사용해야 하는가?

그 원어인 ‘Qquality’는 일상적 의미를 지닌 영어의 한 단어가 아니라, 듀이(John Dewey)를 비롯한 프래그마티즘 철학자들이 독특한 개념을 담은 이론적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일상적인 우리말에서 적절한 번역어를 선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한자의 뜻을 반영하고 다른 번역어와의 유사성을 고려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문맥에 따라 그 말이 사용되면서 나타내는 어감(語感)의 어색함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예컨대, ‘소리의 질이 다르다’라고 하면 소리의 좋고 나쁨을 말하는 ‘평가적’ 의미일 수도 있고, 소리의 구별되는 특성을 말하는 ‘서술적’ 의미일 수도 있다.

서술적 의미의 '질성'을 논의하자

이 글에서 나는 주로 서술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고 평가적 의미를 피하려는 의도로 ‘질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내용(질)을 문맥에 따라 다른 단어로 사용하면 표현의 일관성이 없고 그것이 여기서 사용하는 ‘Quality’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질성’이라는 말로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어떤 맥락에서는 ‘질성’이라는 표현 그 자체가 어색하거나 모호함을 나타내는 수도 있어서 이 경우에는 ‘특성’, ‘특징’ 등의 표현을 덧붙이기로 한다. 주제와 관련한 우리 학계의 이론적 연구물에서는 ‘질성’이라는 용어가 이미 일반화된 표현이기도 하다.

영어의 ‘Quality’를 그냥 ‘질(質)’이라고 하면, 이 말은 쉽게 대조적으로 ‘양(量)’을 뜻하는 ‘Quantity’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흔히 ‘Quantitative’를 ‘정량적(定量的)’이라고 번역하고 ‘Qualitative’를 ‘정성적(定性的)’이라고도 하는 데, 이러한 번역 역시 양과 질의 대조적 ‘차별’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질성적’이라는 개념을 함의하기는 어렵다.

질성의 개념은 ‘양’ 혹은 ‘정량’에 반대되는 ‘질’ 혹은 ‘정성’이 의미하는바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것이다. 양 혹은 질량은 계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것을 의미하지만, ‘질성’은 문맥에 따라서 ‘특징’, ‘특성’ 혹은 ‘특질’ 등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우선 듀이의 용어로서 이해할 때, 직접적이고 즉시적으로 지각하는 대상 혹은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표현 자체보다도 그것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듀이가 질성적 사고의 성격을 언급한 부분을 여기에 옮겨 본다.

상황의 개념과 편재적 질성

‘한개’, ‘두벌’, ‘3g’, ‘8km’ 등의 계량적 표현과는 다른 ‘붉은’, ‘뜨거운’, ‘쓰라린’ 등과 같이 직접적으로 감각의 대상이 되는 특징, 성질, 특성 등을 기본적인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질적인(Qualitative)’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적 소재들은 그 자체로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즉 예컨대 인과관계를 밝히는 설명의 직접적인 내용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소재들이 포함된 지각 혹은 인식의 대상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자면 일종의 통일성을 지닌 ‘상황’(Situation)과 그 통일성을 가능하게 하는 별도의 ‘무엇’(특징, 성질, 형태, 양상 등, 즉 통칭하여 ‘질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요란한 소리가 나고 무엇이 보이고 냄새도 맡아지고 나를 움직이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고 해서 내가 그 각각에 반응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소리와 움직임과 힘의 여러 가지에서 우리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위험하다든가 안전하다든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든가를 생각하고,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진행이 있을 것이며,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의 선택과 대응이 필요한가를 판단할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어떤 상황에 있게 되고 그 상황에 대응하며 그 상황과 나의 마음이 서로 작용하는 상태에 있게 된다. 그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것들로써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 내게 다가온 것이다.

전체를 하나로 지각하는 '편재적 질성'

그 상황에는 하나의 특징적인 것이 있어서, 어쩌면 여러 가지의 특징들이 서로 융합하여 하나를 이룬 통일체로서 내게 직면한다. 그 통일의 원리가 되는 특징(질성)은 그 상황 속에 있는 모든 구성요소들에 ‘스며들여(퍼져) 있으면서 전체를 하나로 지각하게 하는 질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래서 ‘편재적 질성’(Pervasive Quality)이라고 일컫게 하는 것이다. 그 편재적(遍在的) 질성으로 인하여 그 상황에 이름이 붙으면 그 상황(사태)은 ‘폭풍’일 수도 있고 요란스런 ‘축제’일 수도 있다. 그 편재적 질성과 상황은 보고 듣고 하는 낱개의 감각과 유사하게 직접 지각하면서도 이론적 추리처럼 우리의 사고, 말하자면 ‘질성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축구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가 코치의 지시나 동료의 언질을 따라 움직이는 경우처럼 기호나 언어의 도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상황의 독자적 지각과 판단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상황에서 주어진 질성적 요소들로써 조직적인 사고의 경지에 있게 된다. 질성적 요소들이라고 해서 현장의 사고가 반드시 감정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가 어느 친구라는 것을 즉시에 안다면, 전화 목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내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지닌 편재적 질성에 (습관으로)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았던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그것을 듣는 상황에서 저것은 베토벤의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고 분별한다면, 베토벤의 음악이 지닌 편재적 질성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된장찌개를 첫 숟가락으로 엄마가 끓인 것임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동양인이라고 구별하고, 험상궂은 사람을 피하는 것도 피해야 할 대상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재적 질성은 때때로 이름이 붙여져서 언어로 표현되거나 이론적 체제 속에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유행하는 복장이 어떤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거주하는 집을 한옥이니 양옥이니 구별하는 것, 날씨가 추워져서 섭씨 온도계의 수은주가 ‘0의 도’ 아래로 내려갔을 때 ‘영하의 기온’이라고 한다든가, 연주의 형식에 따라서 독주, 이중주, 심포니, 합창이라고 한다든가는 모두 편재적 질성으로 인하여 구별되는 것의 명칭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언어들, 특히 대부분의 이론적 언어들은 사물이나 행위나 사건이나 현상이나 법칙이나 이론이나 경향성을 일종의 ‘상황’으로 보고 거기에 붙여진 이름인 경우이다. 보수적이다, 유창하다, 내성적이다, 활달하다, 개방적이다 등의 표현들도 편재적 질성의 이름들이다.

언어나 기호로 편재적 질성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질성으로 표현되거나 나타난 것을 언어나 기호로써 이름붙일 수 없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이름 붙이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경험하는 대상에 매우 한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어느 연주회에 갔다 온 사람이 자기가 듣고 온 모든 것(질성들)을 말로써 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비싼 연주회에 꼭 가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갔다 온 사람의 말로써 전해 주는 것만으로 감상은 충분할 수가 있다.

우리의 언어는 매우 복잡하고 잘 발달되어 있지만 생활에서 경험하는 극히 제한된 부분의 질성들을 표현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써 전개되고 이론적 차원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인간을 두고 말할 때 쓰는 합리적 존재라는 특징의 매우 작은 부분을 언급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주로 언어를 매체로 하는 이론적 지식을 위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질성적 사고의 예를 들면

한 미술 학도가 봄날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는 잔디밭에서 수채화를 그리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목적하는 바는 한 폭의 잔디밭 그림이지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식의 화풍과 비숫한 인상파 작품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적당한 잔디밭과 적절한 시간대,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재료인 물감, 붓, 약간의 물, 또한 앉을 의자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약간의 간식 등은 직접적인 수단이다. 이런 것들이 그림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완성된 그림에 구성요소로서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림은 색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품을 완성하되 아무렇게나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고흐적 화풍의 인상파 작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흐를 전적으로 모방한 것보다는 학생의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독특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생각을 의중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의중에 지닌 자신의 창의적 생각은 그림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완성되는 순간까지 마음의 긴장과 함께 작업의 과정을 지배하고 있는 방법에 해당한다. 그것은 질성적인 것이고 수단과 목적을 연결하는 방법이며 작품의 전체에 그 방법의 기법적 원리가 미치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 방법은 그림을 하나의 상황(Situation)으로 특징짓게 될 편재적 질성이며, 이 편재적 질성은 그림을 완성하는 동안 학생 화가의 지력에 의해서 발상되고 유지되고 그림의 완성에 작용한다. 그 편재적 질성으로 인하여 그 작품은 다른 모든 작품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게 되고 그 특징(질성)과 함께 작품이 평가받고 감상될 것이다.

스포츠 선수, 기계적 생산과정을 다루는 기술자, 각종의 정교한 실험을 진행하는 과학자, 어려운 수술 혹은 진단을 통하여 질병을 관리하는 의사 등은 전문적으로 질성적 사고를 하는 직업인들이다.

이러한 전문적-기술적 수준에서만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관리하는 교사의 생활, 적군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지휘관,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 정치적 대결에서 이기기 위하여 전략을 관철하는 정치가 등도 매우 포괄적인 수준의 질성적 사고를 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인격을 관리하고 생애를 계획하면서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 자체도 매우 추상적인 차원의 질성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