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교 감사 결과 다음 달 21일까지 실명 공개 예정
서울교육청 감사 처분기준 개정...'학사' 관련만 15개 신설
공문·규칙·매뉴얼로 움직이는 학교,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사진=청와대
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 3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에듀인뉴스=한치원 기자]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국민의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학교와 내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없이는 공교육 정상화 등 제도개선이 불가능하므로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며 한 발언을 두고 교육계 등의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좀처럼 교육 문제를 언급하지 않던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사실상 처음 ‘교육’ 관련 발언을 했지만, 그것이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은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국민의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라며 “학교와 내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없이는 공교육 정상화 등 제도개선이 불가능하므로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현 정부의 기본 정책 방향인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 진보적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수능비중 축소, 내신·학생부종합전형 비율 확대 등 정책 추진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그 저변에는 학사비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딩이 애매한 부분이 있어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공약과 반대로 ‘수능을 확대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수능을 확대하자’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대입정책 기조가 ▲수능 비중 축소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라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해석하자면 “수능 확대가 국민 대다수 의견이므로 이를 고려해야 하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이나 내신전형을 확대하려 해도 숙명여고 등 학사비리 문제가 불거져 있어 수능비중 축소, 학생부 전형 확대를 지금은 추진하기 어렵다. 따라서 비상한 각오로 학사비리 등을 없애기 위한 공교육 정상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작 우려되는 부분은 ‘비상한 각오’로 학사비리 등을 없애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한 교원단체는 이른바 9대 생활적폐 중 하나로 ‘학사비리’를 언급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교육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 언급이 고교학점제 등 대선 공약실현이 아닌 반부패협의회 자리에서 나온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과거 ‘불량식품 척결’처럼 '학사비리 척결'이라는 현수막이 거리마다 붙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상컨대 이 단체의 걱정처럼 대통령이 학사 비리를 언급했으니 근절대책이 나올 것이다. 이미 다음 달 21일까지 전국 초중고교의 감사결과 실명공개가 예정돼 있다. 언론은 최근 불거진 서울 숙명여고나 광주 수피아여고 등과 유사한 사례가 없는 지, 얼마나 많은 학사관련 ‘비리’가 있는 지를 살필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소위 가짜뉴스도 확산될 것이다.

이 발언의 '나비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감사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학교에는 감사 대비 관련 자료를 체크해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 올 것이다. 학교는 오해를 받거나 민원 발생 소지가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대비하고, 조심하고, 이를 위해 행정적으로 움직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지난달 12일 감사결과 지적사항 처분기준을 개정했다. 그 가운데 학사관련 감사 부분에 대한 기준 변화가 가장 크다. 종전 72개였던 감사 처분기준은 92개로 늘었다. 징계 강화 등 15건이 신설되고 문구수정 9건, 4건은 폐지됐다.

교사들은 대통령의 발언 이후 “또 공문과 매뉴얼 등 서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다. 업무 경감을 위해 그것을 위한 계획 실적 증빙자료 매뉴얼 관리 등등을 만들던 것처럼.” “수행평가 자료도 모두 보관해야 할지도”라는 걱정과 함께 “관료는 그대로다. 안 움직인다는 말에 기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학부모 민원에 좋은게 좋은 건 없다. 규칙대로 교육은 없이" 등의 자조 섞인 한탄을 하고 있다.

공문과 지침, 매뉴얼이 늘어나고 강화될수록 공교육은 망가진다. 지침과 규정, 절차에 짓눌린 학교와 교사는 교육기관을 포기하고 행정기관으로 변질된다.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침과 매뉴얼에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 해야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생활적폐로 학사비리를 언급한 것에 대해 현장이 우려하는 포인트가 여기에 있음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