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핵심역량을 명문화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성찰하는 ‘현장교원 중심 교육과정 2차 포럼’이 지난 17일 서울고 강당에서 열렸다. ‘새로운 학력, 현장의 사례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6대 핵심역량(자기관리역량, 지식정보처리역량, 창의적사고역량, 심미적 감성역량, 의사소통역량, 공동체역량)과 새로운 학력을 중심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심층적으로 논의해 지원 방안을 탐색·제안하기 위한 자리였다. <에듀인뉴스>에서는 이날 발표된 내용을 독자에게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자 발제자들이 직접 요약한 발제문을 싣는다. 세 번째는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의 '혁신학교에서의 새로운 학력 실험, 그 성과와 과제'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

2015 개정교육과정인 역량중심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는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방향이자 구성에서 중점사항이다. 하지만 일체화는 과정적 가치만을 갖기 때문에 그 형식이 완결되어도 ‘창의·융합형 인재의 양성’과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에 기여할 것이라고 확증할 수 없다. 그 측면에서 지난 몇 년 동안 혁신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혁신학교에서 교육과정은 국가교육과정의 교과별 성취기준을 따르지만 학교의 특성과 학생들의 욕구나 흥미에 맞게 다 학문적 통합방식의 ‘교과 내 재구성(통합)’과 간학문적인 기능중심의 범 교과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교과 간 재구성(통합)’으로 교육내용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재구성은 긍정과 부정의 양가성을 갖는다. 2015 개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창의적 사고역량'을 기를 수 있는 형식적 토대이지만 그 과정이 각 교과 영역에서 '주제-핵심개념–일반적 결론–세부내용–기능'을 따라 유기적으로 재구성되지 못했으며 ‘기능에 치우친 교과통합'은 2015 개정교육과정이 상정하는 비전, 인간상, 6대 핵심역량을 함양한다고 볼 수 없었다.

더구나 학력관으로 새로운 학력이 지향하는 ‘지성(지식)’, ‘감성(정서)’, ‘시민성(공동체적 민주성)’이 조화를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구체적으로 수업과 평가에서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정도는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토론과 개선이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기능에 치우친 교과통합...차시배분 불균형 심각 

첫째, 각 교과에서 수업목표로 정한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차시배분의 불균형이 심각했다. 즉 학생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지식, 기술인 내용기준(Content Standard)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인 수행기준(Performance Standard)이 유기적으로 일관되게 이루어지도록 수업시수가 조화롭게 배분되어 있어야 했는데 수행기준에 편중된 수업형태가 지배적이었다.

가령 A중학교의 경우에 국어교과 영역에서 성취기준은 시에 나타난 표현법(운율, 비유법, 상징)을 이해하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며, (그 표현법이 담긴) 시를 쓸 수 있다.”로 되어 있는데 전체 13차시로 교과 내 통합 8차시, 교과 간 통합 2차시, 수행평가 관련 3차시로 구성되어있지만 그 중에 직접적으로 ‘표현법을 이해하고 표현하기’와 관련된 차시는 2차시였으며 수행평가 및 교과 간 통합 수업 2차시를 제외하면 6차시는 시를 감상하거나 쓰는 활동으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수업시수를 수행으로 편중하여 학생들에게 시 형식의 글을 쓰게 했다고 그 글이 시인처럼 사고했거나 시적인 글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정보(지식)의 저장 및 사용에 대한 인지과학을 부정하고 있다. 시인은 장기기억 속에 엄청난 어휘력, 조어능력, 시적 구성력 등을 갖고 있지만 학생들을 그러지 못한다. 그럼에도 수행에 치우친 차시배분은 과학적 사실을 무시한 방식이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시에 필요한 것들을 사전에 충분하게 학습하지 않고 수업에서 지나치게 시적 활동을 강행하는 하는 행태가 실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의 의도처럼 시인만큼의 탁월한 언어적 인지능력을 갖지 못해도 그 누구라도 실생활에서 시를 심미적으로 즐기는 것은 당연히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이 아니지만 시를 심미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어휘를 쓰고 어떤 구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즉 시의 형식이나 관련된 지식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시를 쓰는 과정에서 활용한 것이다. 그 점에서 시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학생들은 형식미를 갖춘 시적인 글을 쓰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학생들은 모둠활동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겠지만 인지와 관련된 한정된 작업 기억인 단기기억은 과부하가 걸린다. 무엇보다도 교사가 시에 대한 지식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이 모둠활동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은 부족한 지식을 매울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적고 지식의 빈곤화 및 사회적 차별에 직면하게 된다.

교사의 선의를 잘 알고 있고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교사는 기존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시 수업행태를 바꾸고자 한다. 시 학습의 본질 보다는 부차적인 시의 표현법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데 그치는 습속처럼 굳어버린 우상을 타파하고자 한다. 하지만 시가 문학이며 그 형식이 미적 감수성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학생이 표현법과 관련된 지식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시적인 글쓰기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길이다.

그런데 수업에서 그 수단과 경로는 사전과 사전을 찾아 활동지에 쓰는 활동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일상에서 시의 운율, 비유, 상징과 같은 형식적 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또한 2015 개정교육과정의 핵심역량, 교사의 수업에서의 세 가지 성취기준에 대한 차시의 배분, 교과서에 실린 시에 대한 태도, 수업자료(국어사전 및 활용)를 고려할 경우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기르려는 능력은 ‘인지적 영역’보다는 ‘정의적 영역’에 치우쳐 있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즉 ‘심미적 역량’에 치우쳐 있으며 광의적인 측면에서 ‘지식정보처리역량’을 소홀하게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심미적 역량을 구현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심미적 역량은 통상적인 생활방식(문화)이 아닌 세련성을 바탕으로 한다.

“즉 2015개정교육과정 총론해설서에 의하면 광의적인 문화적 역량이기보다는 예술과 관련된 교양 있고 세련된 삶을 사는 좁은 의미의 문화적 역량이다.”

수행활동 치우쳐 교과의 학문적 특성 따른 교과역량 무시

둘째, 수행(활동)에 치우쳐서 각 교과의 학문적 특성에 따른 교과역량을 무시한다.

가령 B중학교의 수학수업 사례이다. 다른 학교나 교과처럼 교사는 수업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모둠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며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즉 교사는 영역(단원)에서 다루는 수학적 정의나 관련된 공식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모둠을 구성하여 활동지로 실생활 문제를 들어 귀납적으로 접근하면서 정답에 개의치 않고 학생들에게 흥미를 주는데 집중한다.

교사가 꿈꾸는 삶에 대해 공감한다. 어떤 교사도 즐거운 수업, 행복한 교실을 꿈꾼다. 그렇지만 지금의 수업양상이 그 교사의 꿈이자 모든 교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상을 실현할 지는 의문이다. 교사가 꿈꾸는 학생이 수학적 논리성을 갖고 삶을 사는 것은 일상에서 문자를 몰라도 말을 따라하면 가능해지듯이 자연스럽게 얻어지지 않는다.

수학의 대수와 기하영역은 고도로 복잡하고 추상적인 문화적 축적물이다. 비록 처음부터 모둠활동으로 수학에 대한 흥미가 생겼어도 그 영역에 대한 깊은 경험이 없으면 영역(함수)에서 다루는 (함수의)정의, (함수에서의)공리, 정의와 공리가 도출되는 증명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수학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즉 그 단원에 대한 배움은 불완전하고 점차 학습에서 누적적인 손실이 이루어진다. 수학적 지식은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대응되지 않는 추상적 도구 그 자체이다. 그래서 학생이 수학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업시간에서의 사고활동의 즐거움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교사의 의도처럼 ‘수학의 속성인 ’논리성’을 이해하여 삶을 꾸리기를 원하는 목표는 이룰 수 없다.

지식 경시...성취기준 부합하는 내용, 수행 측정하는 평가 어려워 

셋째, 주제중심프로젝트 수업에서 주제가 수행으로만 해석되어 지식을 경시한다.

C중학교의 사례이다. 주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실천하는 사회정의’로 국어, 도덕, 수학, 일본어, 과학, 역사, 영어, 기술가정의 8개 교과가 통합수업을 했다.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의식을 활동중심으로 학생의 삶에서 구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참여했던 수학교사 조차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듯이 오히려 학생들은 주제 및 활동으로부터 모호한 개념(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교과 간 통합과정에서 지식과 개별교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행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을 각 교과에서 다루는 과제에 공통적으로 적용시킬 수 없다. 사회적 약자는 다른 집단과 신체적이거나 문화적인 차이를 보여야 하며, 사회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하며, 사회의 주류집단에게 차별받으며, 차별받는 사람들끼리 연대의식이나 집단의식이 있어야 한다. 즉 이런 조건을 갖출 때만이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수업에서 적용했던 대상은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겨서 장애를 갖는 사람으로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그 수업이 수학교과와 연결되어 활동수업으로 진행되었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에 대한 탐구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일본어 교과에서 다뤘던 ‘오체불만족’ 책 수업도 마찬가지이다. ‘오체 불만족’은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의지와 용기로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사는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장애와 행복이 무관한 점을 보여준다. 즉 사회적 약자와 무관하다.

그렇다면 이 수업은 통합교과적인 가치를 실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교과 간 통합이 지향하는 기능적 취지에 부합하여 활동을 강조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약자 중에 장애인이 있을 수 있지만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라는 직관적으로 치우친 잘못된 관념이 학생들에게 심어질 경우 그 지식은 유용하다고 할 수 없다. 나아가 사회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태도에 대한 배움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과학, 수학, 일본어, 영어에서 정한 세부목표는 그 기능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내용적 유사개념을 바탕으로 한 주제로는 적합하지 않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주제를 도출하는 유비추론으로 볼 수 있는데, 적절하지 않다.

넷째, 교육과정이 정한 성취기준에 부합하는 내용(지식, 기능)과 수행을 측정하는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령 A중학교의 지리수업에서 이루어진 평가 풍경이다.

「교사는 지도에 나타난 축적의 원리를 학습하는 수업을 마친 후에 다음 차시에 수행평가를 실시했다. 학생들에게 간단한 양식의 평가지를 나눠 준 후에 그 동안 진행했던 학습 활동지를 변형한 문항을 각자 출제하라고 지시하였다. 교사는 학생들이 출제한 문항을 모두 걷고 무작위로 다시 학생들에게 나눠 준 후에 받은 문항 중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몇 명의 학생이 문제가 이상하다고 하자 그 학생들에게 다가가 문항을 수정해 주었다. 학생들은 약 10분 동안 각자 받은 문항에 대해 답안을 작성했고 먼저 푼 순서대로 제출했다. 교사는 학생들의 답안을 받아 바로 채점에 들어갔고 먼저 답안을 제출한 학생들에게는 자습할 것을 지시했다. 교사는 제출한 답안에 대해 즉시 채점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전반적인 피드백을 해주었다. 이어 틀린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다시 답안을 작성하도록 했다. 교사는 이 학생들의 답안을 모두 확인한 후 이제 모든 학생이 성취기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가 이루어진 이상적인 평가양상이다. ‘수업과 연계된 평가’, ‘교사별 평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독려하는 평가’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중학교 수준에서 학습을 통해 갖춰야 할 성취기준에서 정한 학습능력에 실질적으로 도달했다고 할 수 없다. 2015 개정교육과정과 연결시켜보면 영역은 ‘내가 사는 세계’이며 성취기준은 “지도의 기본 요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지역 지도에 나타난 지리 정보를 실제 생활에 활용한다.”이다.[4사03-01] 성취기준과 관련된 핵심개념은 ‘축척’, ‘방위’, ‘기호’, ‘등고선’이다.

가령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낼 수 있다. “1:25,000 지도라고 가정하고 지도상의 1cm는, 실제 거리로 얼마인가?”를 묻는 문제를 출제할 수 있다. 정답은 25,000cm(250m)이다. 또는 미리 자 등의 도구를 준비하게 한 후에 평가지에 축척과 관련된 간단한 지도를 그린 후에 그 지도에 사용된 축척의 유형과 실제 거리를 묻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평가를 질적으로 좋은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교사의 평가시점이다. 성취기준은 지리정보를 실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지도의 다양한 정보를 이해함으로써 실생활에서 지도를 읽게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도에 나타난 중요한 정보인 ‘축척’, ‘방위’, ‘기호’, ‘등고선’을 모두 학습하게 한 후에 평가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지도를 읽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이 평가는 무의미하다. 지식의 활용에 있어 단편적이고 성취기준에서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측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학교 수준의 성취기준과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 학제의 상단인 중학교에서 그 개념을 반복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기본적인 성취수준에 도달했다면 이런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게 성장과 발달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초중고 전체 교육과정에서 학생이 성장과 발달을 이루었으면 그 교육과정의 풍경은 가치 있지만 적합하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단계적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제도는 그 제도가 추구하는 인간 존엄의 비전을 말하기 전에 먼저 객관적인 상황과 주체적인 동력을 고려하여 그 제도가 지향하는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는가에 달려있다. 더구나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여러 정보를 학습하게 한 후에 평가가 이루어질 경우에 장기기억에 저장되지 않는다면 그 평가가 지금 말하는 것처럼 모든 학생들이 기본적인 성취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학생 한 명 한 명을 줄을 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를 교조적으로 활동 중심적으로만 구성하는 추진할 경우에 가져오는 인지적 역량의 빈약성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강의식 수업과 활동형 수업, 조화와 균형 이루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몇 가지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교사 중심의 강의식 교수법’, ‘성취기준에 해당하는 지식’, ‘지식 일반에 대한 기억(암기)’, ‘평가방식의 정밀성’을 낡음으로 규정하고 도외시하면서 ‘학생중심의 모둠활동’, ‘지식일반(이론)을 경시하는 태도’, ‘개방형 평가에 대한 일방적인 정당성’, ‘학생의 지적 수준과 학제를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는 형식에 치우친 다 학문적이거나 간 학문적인 융합’에 대한 지나친 추종하는 교수학습관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이유는 실증적으로 후자가 전자보다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문제해결적인 역량을 키운다는 교육적 목표에 더 기여한다는 확실하고 뒤집을 수 없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증거가 없다.

둘째, 강의식 수업과 활동형 수업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의식 수업에 대한 제고가 뒤따라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실적 지식(내용지식)인 핵심개념을 분명하게 확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곧 특정내용을 주입하는 암기학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도식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활동수업의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교과별 특성에 따라 교사가 정확하게 개념을 전달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데는 강의식 수업이 효과적이다 그 점에서 교사활동을 배제하는 교사의 수업이 좋다고만 할 수 없다. 그 보다는 교사 강의에서 습득한 지식이 단순한 상태로 머물지 않도록 다양한 수업지도 방식을 찾고 적용함으로서 내실화해야 한다.

박남기는 <최고의 교수법(2018)>에서 학생이 원하지 않더라도 꼭 배워야 할 내용이라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하면서 학생의 배움의 정도나 심리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하는 상황적 교수법을 소개한다. 가령 ‘놀이형(관계 지향형) 교수법’, ‘학생 주도형(위임형) 교수법’, ‘교사 주도형(지도형) 교수법’이 그것이다. 나아가 의욕과 능력이 더 낮은 학생을 위해 ‘허시와 블랜챠드’를 인용하여 지시형 지도성을 적용하는 변혁적 교수법을 말한다.(321쪽)

또한 교수법을 게리 보이크의 <효과적인 교수법>을 인용하여 ‘직접교수법’과 ‘간접교수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직접교수법은 교사주도의 ‘강의형 교수법’으로 주요정보를 주도적으로 학생들에게 전해준다. 간접교수법은 학생활동 중심의 교수법으로 탐구활동, 문제해결, 발견학습 등이 그 예이다. 직접교수법의 유용성은 ‘사실’, ‘규칙’, ‘행동계열’을 가르칠 때 유리하며 간접교수법은 ‘개념’, ‘패턴’, ‘추상화’를 가르치는데 적합하다고 본다.(326쪽) 그렇게 보면 수학은 추상적인 개념을 규칙적으로 공리를 활용해 증명하고 활용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공리나 규칙(논리성)에는 직접적인 교수법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사고활동을 지속하거나 더 높은 단계로 가려면 간접교수법인 학생활동중심으로 수업을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두 교수법의 조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직접교수법과 간접교수법을 동시에 활용하며 수업할 경우에 교사가 지향하는 새로운 교실풍경을 그릴 수 있고 수학자처럼 사고하는 학생들의 세상을 만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

셋째, 평가에 대한 계몽적이고 신념적인 사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육과정에서 평가는 수업에서 채운 학습을 수업목표로 정한 성취기준에 이르렀는가를 검증하고 피드백 하는 과정이다.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실재의 삶에서 평가는 서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권력, 명예, 지위, 부)가 희소하기에 공동체적인 삶에서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평가는 자연스럽다. 고립된 무인도에서 홀로 산다면 평가라는 개념은 없거나 존재할 수 있지만 무가치하다. 교육의 내적본질과 관련된 평가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그 차이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사고배양이 학교교육이 할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체적 인간으로 각자의 존엄한 삶을 위해 그 서열을 극복하고 줄이려고 애써야 하며 당연한 몫이고 그 과정에 지금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새로운 학력의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평가=줄세우기’라는 등식으로 평가를 환원시켜 버리면 실재의 삶을 설명하거나 개선하려는 단초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개인적 신념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현실을 바꾸는가는 현실의 삶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과의 변증법적이고 단계적인 이행과정에 있다.

초·중·고 보통학교가 혁신학교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교사들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를 통해 국민의 더 나은 삶과 학생들의 행복한 교육 미래를 고민한다면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지만 이론 없는 실천 또한 맹목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론의 합리성 및 논리성, 그것을 갖추기 위한 실질적인 힘인 이성적이고 반성적인 사유능력에 대한 학습은 경험적 활동만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