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나 법률적 규칙은 구체적 상황에서 때때로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강한 애국심이 때로는 독선적 행동을 낳고 나라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곤경에 빠진 절친한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일상적 상황에서 도덕적-사회적 문제들은 단지 관습적 규범이나 제도적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게는 어느 규범이나 규칙을 선택하여 충실하게만 지키고자 할 때 발생하기도 한다.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중요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여 갈등과 고뇌를 생산하기도 한다.

나만의 양심으로 국민의 의무 이행하지 않을 수 있나

최근에 발생한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로, 국민에게 요구되는 국방의 의무가 살인을 전제로 하는 집총(執銃-총을 쥐거나 지님)을 명령한다는 것이다. 소위 ‘양심적인 집총거부’로 인한 병역의무에 관한 법원의 판결이 문제로 부상하였다.

‘양심’이란 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성격의 가치적 명령인가? 비록 양심은 구체적으로 내가 내심에 소유한 도덕적 기준이지만, 그 기준이 의미하는 바는 그야말로 자아의 존재론적 실체를 유지하고 방어하는 절대적 보루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누구도 그것이 침해당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고, 또한 거부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 양심은 나만의 양심, 즉 나에게만 해당되는 양심,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어도 좋은,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규정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양심은 동료 인간에게도 도덕적 명령의 의미를 지니는 보편적 가치라야 양심 그 자체의 본연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나의 양심을 동료가 자신의 양심과 동일시하든 않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양심적인 집총거부, 과연 양심적인가?

나의 양심은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이라고 하는 내심의 생각과 주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만의 양심을 위한 나만의 집총거부는 양심의 본연적 의미가 아니다.

양심은 그와 같은 이기심을 내포한 개념이 아니다.

집총은 나만의 양심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에게 나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을 아무런 저항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래야만 하는 것이 양심의 명령이라면, 나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은 적의 선의에 맡기는 길 이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런 한이 있더라도 양심을 위하여 살인을 전제로 하는 집총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양심이란 우리의 생존 자체만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존재론적 가치보다도 더욱 상위에 두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집총은 나만의 양심으로 거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나만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하는 양심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살인의 무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나의 그러한 주장이 국민과 동료를 설득할 수 없다면 집총을 거부할 자격이 없다. 그 양심은 오직 나에게만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부해야 한다면, 다른 동료가 생명까지를 담보하는 국방의 의무, 그것에 상당하는 만큼의 부담 혹은 불이익을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특정한 신앙적 양심은 비록 특정한 사람들의 신앙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신앙은 나만의 신앙일 따름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인류의 모두에게 함께 지니기를 바라는 신앙의 의미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제가 없으면 나는 나의 이웃과 나의 국가와 인류에 대하여 삶을 함께 하는 것과 무관한 단순히 외톨의 존재일 뿐이다.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선교도 하고 포교도 하면서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역정에 동참하기를 호소하기도 한다.

양심적 집총거부 인정 판결..."국민 의무 성찰에 있어 졸속한 판단"

물론 집총만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집총과 그 사용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필요악이다. 필요악도 악이므로 나만은 그 악에서 벗어나고, 생명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그 악을 면하기 위하여 동료의 생명을 재물로 바치고 나는 거기에서 자유로우면 된다는 사상은 신앙적 양심의 속성에 없는 요소이다.

물론 모든 국민의 양심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민주적 자유국가에서 국민이 양심을 보호받지 못하면, 그 국민에게 그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악법이나 불합리한 국법은 폐기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입법과 준법은 특정한 세력의 위세나 특수한 집단에의 동정적 배려에 의해서 좌우되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국가구성원의 지력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체제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의 운영에 최선을 기해야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제정된 규칙에 대한 법리적 해석도 그것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혜택과 피해에 대한 정의롭고 균형 있는 성찰을 국가적 수준에서 폭넓게 효율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양심적 집총거부’에 관련된 국방의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양심의 개념과 국민의 의무에 대한 성찰에 있어서 졸속한 판단이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