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지난 10일부터 ‘학교폭력 제도개선을 위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은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일 경우 학교장 ‘자체종결제’ 도입 고려다. 이를 위해 전문가·이해관계자 30명으로 구성된 정책 참여단을 구성하고, 최근 일반인 1000여명에 대한 설문조사 진행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듀인뉴스>에서는 학교폭력 담당 교원 및 변호사, 전문가 등에게 ‘학교폭력 숙려제에 바란다’ 릴레이 기고를 기획,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상우 경기 남수원초등학교 교사/실천교육교사모임 교육활동보호팀장 

지난 10일부터 진행 중인 학교폭력 정책숙려제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학교 자체종결) 경미한 학교폭력*에 대해 피해학생‧학부모 모두 자치위원회 미개최를 희망할 시 학교의 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 부여 

* 다음의 조건(①〜④)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 : ①2주 미만의 신체·정신상의 피해 시 ②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된 경우 ③지속적인 사안이 아닐 것 ④보복행위가 아닐 것

❖ (학생부 미기재) 가해학생 조치사항 중 경미한 사항**에 대해서는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음

** 1호(서면사과), 2호(접근금지), 3호(교내 봉사) 

이는 작년 12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학교폭력 대책과 지난 8월 청소년 종합대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2011년 말 심각한 학교폭력으로 인한 대구 중학생 자살이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학교폭력을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4대 사회악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범정부차원에서 학교폭력 정책을 엄벌주의로 강화했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또한 강경 일변도로 개정되었다.

학교폭력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학교폭력대책자치위를 열어야 한다고 법률개정으로 명문화하였고, 교육부 훈련으로 학교폭력 가해사실이 있을 경우 경중에 상관없이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하였다. 가해학생 처분의 경중에 따라 졸업시 즉시 삭제되기도 하지만 학교폭력사실이 생기부에 기재되는 것만으로도 학교폭력의 위험성을 강조하기에 충분했다.

엄벌주의 6년 학교폭력은 나아졌나

엄벌주의 기조로 정책의 방향이 바뀐 뒤 약 6년이 흘렀다. 지금의 학교현장은 어떠한가? 겉으로 눈에 띄는 물리적인 학교폭력은 많이 줄었지만, 신체적 접촉 없이 SNS를 통한 사이버폭력과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폭력은 급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간혹 학교폭력의 저연령화를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학교폭력의 민감성이 증가했다고 봄이 정확할 것이다. 학교현장에서 대부분의 교사들도 2010년대 초반에 비해 학교폭력의 강도와 빈도는 분명 줄어들었다는 시각에 동의한다. 다만 빈부격차의 심화와 가정의 해체로 학교 밖 청소년이 증가하고 돌봄과 보호에 취약한 학생들이 등장하면서 학교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심각한 학교폭력 사례들이 증가 추세인 측면이 있다.

필자는 초등교사다. 초등교사로 약 6년간 계속해서 생활인성부장으로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하며, 관련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해 왔고, 학폭 위원으로 참석했다. 학교 밖에서 무수한 학교폭력 토론회에 참여하고 학폭법 개정에도 참여해왔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정책에도 찬성입장에 가깝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정책은 이해당사자들 간에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학폭 대책에 대한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대립

교육부의 제안은 학교 현장에서도 대부분 환영하는 정책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면 초기조사부터 관련 학생의 학부모에게 결과를 통지하는데 까지 소요시간이 보통 20~30시간 이상 걸린다. 물리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사안조사와 학생 ·학부모상담과정에서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경미한 사안도 현실적으로 학교장 종결제로 다루면, 학교폭력으로 은폐·축소했다는 의심을 받고 끊임없는 민원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모든 사안에 대해 정식으로 학폭위를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나 수업과 생활지도를 우선으로 하는 교사에게 학폭위 개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학교 현장에서 은폐·축소가 아닌,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교육적으로 선도하면서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학교장 종결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학교장 종결제는 학교에서는 찬성하나 보통 학부모들이나 학교폭력 피해자가족들은 걱정이 앞선다. 학교가 또 다시 학교폭력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무마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종결제를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가 학교폭력을 제대로 다루지 않아 사안의 경중에 관련 없이 무조건 학폭위 개최를 의무화한 것인데,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미한 사안에 대한 생기부 미기재 방침도 학교에서 자칫 심각한 학교폭력의 조치를 내리지 않기 위해서 처분을 경미하게 내릴 여지가 크다고 비판한다.

반쪽짜리 학폭 정책숙려제의 한계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연 교육부의 학교폭력 정책숙려제에 기대할 것이 있을까 의심마저 든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이유는 이번에 이해관계자로 참여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한국교총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진보적 교육단체와 대다수 회복적생활연구회에서 정부의 정책숙려제를 거부해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힘들고, 주로 교육계 이익만을 주장한 교총이 학부모를 비롯한 국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교육부가 진보적 교육단체들을 설득하고 교육정책의 동반자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음에도 어떤 화해 제스처나 정책적 협력을 시도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다.

정책숙려제에 관심이 많은 필자도 개인 자격으로 정책숙려제에 참여하기 위해 교육부에 수차례 문의해 참여방법을 알아봤으나 연결이 힘들었고, 교육부 담당자의 응대 태도도 불친절했다. 그저 개인적으로 뉴스를 통해 간간히 학폭 숙려제 진행 과정을 검색해보고 있으나 추가적인 뉴스는 찾을 길이 없다. 베일에 싸인 숙려제의 구체적 과정은 알 길이 없고 이제 결론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최근 학교폭력은 학폭위원회 자체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 학부모들의 끝없는 민원과 불복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과연 교육부가 학교의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기회에 학교폭력예방과 정책 숙려 못지않게, 학교폭력 사안처리과정 때문에 교육본연의 기능마저 상실해 버린

학교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오가길 기대한다.

제도로 훼손된 학교의 교육적 기능 회복에 관심 가져야

교육부가 이번 숙려제에서 제시한 정책 통고에 너무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의 두 가지 정책의 채택과 관련 없이 이미 학교는 그간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느라 교육적 기능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 굳이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한쪽 진영이 무너져서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관련 피해뉴스 못지않게 학폭위원회 자체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 학부모들의 끝없는 민원과 불복소송에 대한 기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과연 교육부가 학교의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기회에 학교폭력예방과 정책 숙려 못지않게, 학교폭력 사안처리과정 때문에 교육본연의 기능마저 상실해 버린 학교의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얘기들이 오가길 기대한다.

아이들이 힘들다면 교사가 힘을 내 이를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학교가 교육할 힘을 상실하다보니 신음하는 학생들과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교육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학교의 현실에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이, 정책 숙려제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