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폰 지급 아닌 교사 사생활 보호 차원 '공용 번호' 지급 방식 유력
교사들 "학부모 민원 담임 아닌 학교 통하게 하는 문화 정착이 우선"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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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한치원 기자] # 서울 A초 ㄱ교사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에 신경쇠약이 걸릴 지경이다. 어떨 때는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는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한 학부모가 일주일에 5~6일을 전화해 한 시간 이상 상담한 이후 생긴 현상이다.

# 서울 B중 ㄴ교사는 학부모에게 SNS 스토킹을 당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카카오톡 게임 친구신청을 보내기도 하고, 페이스북 사진 등을 보고 여자친구가 생겼냐는 등을 묻기도 해 ‘사생활 침해’가 도가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교사들이 업무시간 외에 걸려오는 학부모들의 휴대전화 민원에 시달리는 등 사생활 침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자 서울시교육청이 교사에게 업무용 공용폰 보급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검토하고 있는 안은 교사의 교육권 보호를 위해 모든 교사에게 업무시간에만 사용이 가능한 공용폰을 지급해 교사의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안은 예산이 많이 드는 공용폰 별도 지급이 아니라 업무용으로 쓸 수 있는 공용번호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공용번호 방식은 개인 휴대전화에 번호를 하나 더 서비스 받는 형태로 통신사들이 부가서비스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기본의 경우 4~5000원 내외다.

교육청은 근무시간 중 학부모와 통화할 때는 공용번호를 이용하고 업무가 종료된 이후에는 착발신 및 문자와 SNS 접속을 차단, 교사의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공용폰 지급 검토에 대해 교사들은 ‘환영’과 ‘우려’라는 극과 극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의뢰 교육활동 보호방안 연구팀 일원으로 공용폰 지급을 제안한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대변인은 “요즘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학부모의 민원전화, 항의전화, 과도한 요구, 카톡“이라며 ”전화를 받지 않거나 카톡에 바로 응답을 하지 않으면 거칠게 항의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나온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용 휴대폰 지급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밝힌 한 교사는 "요즘 저경력 교사들 중 일부는 실제로 개인적으로 폰을 추가로 구입해 그 폰으로만 학부모와 소통한다”며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현실을 감안한 정책으로 충분히 시도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의 업무와 비업무 경계가 모호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이 조퇴를 했는데 아픈지 안 아픈지, 혹은 학교 밖에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교사를 찾는데 일과 후니 연락을 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이 교사는 “담임제도가 있는 한 개인번호를 결국 공개해야만 현실적으로 긴급사태에 대응이 가능하다”며 “일과후 긴급사태 이외에 연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학부모에게 교육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교육청이 우선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근무시간에는 학교 전화로 받고, 기타 상담은 학교 전화에 문자 수신 기능을 넣거나 어플을 활용해 전화나 상담 신청을 걸어 놓으면 이에 응답하는 시스템이 더 낫다는 제안도 나왔다.  

학교에 담임이 아닌 교무실을 통해 의견을 전달한다는 이미지를 갖도록 하고, 민원처리 절차나 신청은 담임에게 다이렉트로 문제화 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등에서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통해서만 교사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교사의 개인번호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차원에서 교사 전체의 개인 전화번호를 공지하지 않고 있는 학교도 있다. 서울 C초등교 ㄷ교사는 “연락이 필요한 경우 교무실을 통해 하도록 했더니 확실히 업무시간 외 연락이 줄었다”면서 “시간이 지나니 학부모들의 불만 제기도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용폰 지급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사회적 인식개선 노력”이라며 "우리가 아이들의 담임이지 학부모의 담임은 아니지 않냐"고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용폰 도입에 대한 실무적 검토를 거쳐 내년에 시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