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교육학 박사

2018년이 저물어 간다. 지난 한 해를 공교육을 중심으로 되돌아본다. 당황스럽다. 되돌아 볼 것이 없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설마 정부가 직접 책임지는 공교육이니 돌아 볼 것이 없는 이유라도 따져봐야 할 필요는 있겠다. 2018년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다음의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대입 몰입...‘불공정’ 논란 블랙홀에 빠지다
대학입시를 흔히 교육이슈의 ‘블랙홀’이라 한다. 일단 빨려 들어가면 중요한 다른 교육 이슈를 다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대학입시를 바꿔서 교육개혁을 하겠다는 생각은 무모하다. 오히려 교육개혁이 무르익어서 대학입시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충분히 늘어나야 대학입시의 개혁이 가능하다. 

대입제도는 어떻게 바꾸어도 항상 찬성보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기 마련이다. 전체 10% 정도 밖에 안 되는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다투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대뜸 대입제도 논란부터 불을 지폈다. 90%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현행 입시제도에 ‘불공정성’ 논란을 일으키면 당연히 들불처럼 불만의 목소리가 퍼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걸 여론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결국 항상 불만과 논란만 가득할 수밖에 없는 대입 제도 논란에 매몰되어 교육개혁의 골든타임을 고스란히 날려버렸고, 야심차게 임명한 김상곤 장관만 빈손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사실 대입이라는 이슈는 ‘그들만의 리그’다. 실상 우리나라 학생의 2/3 이상은 대입에 관심이 없다. 대학진학률이 7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10%의 명문대학 외에는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 고등학교 교실에서 아무리 대학입시를 가지고 윽박질러도 2/3의 학생들이 의욕 없이 엎드리는 것을 막기 어렵다. 

대입에 모든 이슈가 빨려 들어가면서 이 2/3의 학생들, 그리고 일반고나 특목‧자사고가 아닌 특성화고 학생들은 완전히 소외되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실제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의무교육기관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개선방향은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동력이 빠져버렸다.

비전 부재...유치원‧숙명여고 등 이슈 따라 흔들 
공교육은 국가가 모든 비용을 대서 모든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교육이다. 공교육은 국가가 미래의 국민들에게 이 나라의 국민이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지식과 소양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공교육 과정을 보면 이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어떤 국민을 필요로 하는지가 보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비전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비전은 세 가지 축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첫째, 사회, 국가 등 공동체의 요구다. 민주공화국이 원하는 시민과 절대왕국이 원하는 신민의 교육은 전혀 다를 것이다. 둘째, 학생의 요구다. 사람은 저마다 재능과 기질이 다르며 이는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통해 드러난다. 학생들은 장차 국가가 요구하는 자질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타고난 흥미와 적성을 억압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천박한 용어가 ‘학생중심 교육’으로 바뀐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셋째, 교육방법상의 요구다. 공교육은 국가의 요구와 학생이 요구하는바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억압과 방종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이론을 바탕으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로 교사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의 요청과 학생의 요구 사이에서 교사의 전문성 사이에서 이들 교육 당사자들 간의 다양한 이해관심을 조정하여 공교육이 나아갈 바를 제시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독단으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며, 일반 국민들의 여론으로 정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정부가 이런 공교육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그때 터져 나오는 이슈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렸다. 사립유치원 부패가 문제가 되자 유치원 개혁이 주된 이슈가 되고, 여기에 유치원들이 폐원으로 맞서 신입생이 갈 곳이 없어지자 초등학교 학급을 줄여 유치원을 증설하고, 유명한 고등학교에서 시험 문제 유출사고가 일어나자 ‘학사비리’를 무려 9대 적폐 중 1번으로 거론하는 식이다. 

4차 산업혁명, 창의융합형 인재 등 구호나 다름없는 말들은 난무했지만 이 나라가 학생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란다는 비전은 보이지 않았고, 교사에게 어떤 학생을 길러내라는 요청도 보이지 않았다.

비전도 목표도 없는 가운데 ‘공정성’이라는 단어만 난무했다. 그런데 ‘공정성’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 중에서도 일부분인 ‘선발’에 필요한 가치이지 그 자체가 교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교사 패싱...잘못 짚은 ‘적폐청산’, 무너진 정부에의 신뢰 
적폐 청산은 이 정부의 핵심구호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군사독재, 개발독재 시절 교육을 독재에 순응하는 병사와 이른바 산업역군으로 키우고자 했던 병영교육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 

1차시 단위로 촘촘하게 짜인 교육과정과 이것을 교육 관료의 지시감독을 통해 내리먹이는 체제, 이것이야 말로 가장 먼저 청산되어야 할 적폐다. 자유가 없는 교사가 무슨 민주시민교육을 길러내며, 촘촘한 교육과정 그물망에서 시수 맞추기에 바쁜 교사가 무슨 창의융합인재를 길러내겠는가? 

촛불혁명으로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뜻있는 교사들이 기대했던 것이 바로 교육 관료들의 간섭과 동료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을 했던 자신들의 노력이 빛을 보는 것이었다. 교육적폐 세력에 맞설 힘은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실질적인 힘을 가질 때의 일이다. 교사회 법제화가 그 첫째며, 교장선출보직제가 그 둘째다. 이것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중장기과제로 거론되던 것들이다. 10년이면 충분히 중장기가 지난 셈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육부의 권력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으며, 생활기록부에 점 하나까지 지적하는 관료들의 통제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고, 초중등교육법의 대부분의 조항은 주어가 장관, 교육감, 학교장으로 남아있다. 교사와 학생은 실종되었다. 

특히 교사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참여정부가 전교조와 조율이 잘 되지 않았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현 정부는 교사와는 아예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 교사가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은 국가교육회의가 논란거리가 되자 그 산하 전문위원에 몇 명 집어넣었을 뿐이다. 교사와 대화 하려 하지 않는 대신 질책만 한다. 학사비리 때문에 ‘교육신뢰’가 떨어져서 혁신의 걸림돌이라고 한다. 교사의 목소리는 대통령에게 가서 닿지 않는데, 대통령의 질책은 곧 수많은 공문이 되어 교사들에게 던져질 판이다. 이 정권의 교육화두는 한 마디로 ‘교사 패싱’인 것이다. 

교사가 교육 주체가 아니라 이렇게 패싱이나 당하는 맥없는 존재라는 것이 알려지자 교권 붕괴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제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가장 만만한 민원대상으로 전락했다. 분노가 가득 찬 사회에서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교사 때리기가 국민 스포츠라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나돌아 다니고 있다. 학부모는 교육의 동반자가 아니라 ‘진상 고객’, ‘진상 민원인’이 되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수당 한 푼 안 나와도, 승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도 묵묵히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교사들이 많이 있었다. 학사비리를 저지르는 교사보다 수 십배, 수 백배 많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들의 헌신과 연구와 실천을 정책으로 끌어올리고 뒷받침하기는커녕 그들마저 싸잡아 교사 전체를 비난하고 ‘패싱’함으로써 그들의 심장을 깨뜨렸다. 

현 정부가 올바른 방향에 서서 실천하는 교사들의 편일 것이라 생각했던 신뢰가 무너졌다. 교육혁신이 안 되는 이유가 신뢰 문제인건 맞다.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교육자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지금 교단을 지배하는 정서는 거대한 우울과 냉소다. 

사실 국민이 공교육을 믿지 못한다는 말을 믿어선 안 된다. 학부모들은 저도 모르게 공정한 교육, 공정한 입시라고 말하고 ‘내 아이에게 유리한 교육, 내 아이에게 유리한 입시’를 생각하기 쉽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 역시 “훌륭한 선생님은 왜 꼭 다른 학교에 계시느냐?”는 우스개 속에 함축되어 있다.

공교육 전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내 아이의 성적’이 불만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정말 학부모 전체를 대변하는지 혹은 몇몇 목소리 큰 계층만을 대변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20%의 목소리가 그들의 영향력 때문에 100%로 확대되어 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 쓰고 나니 너무 박한 평가를 내린 것이나 아닐까 살짝 걱정도 된다. 하지만 아예 할 말이 전혀 없는 것 보다는 박한 평가가 났다. 적어도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믿음은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아무리 못 미더워도 교육에 대해서는 교사가 제일 잘 안다. 화재에 대해 소방관이, 치안에 대해 경찰관이 가장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디 2019년에는 정부가 교사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단기적인 대증요법, 인기몰이 정책에 휘둘리지 말고 공교육의 먼 비전을 차곡차곡 세워 나갔으면 한다. 

권재원 서울 성원중학교 교사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