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치 위해 교과서 검인정제 도입해야
검인정제, 출판사 노력 촉진해 좋은 교과서 개발
교육과정 구현한 다양한 텍스트 필요

임재일 (사)교육디자인네트워크 정책위원장
임재일 (사)교육정책디자인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교육부가 3일 발표한 ‘교과용도서 다양화 및 자유발행제 추진 계획’에 의하면 초등 3~6학년은 국어와 도덕의 경우 현행 국정교과서 체제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검정 체제 방식으로 전환한다. 초등 3, 4학년의 경우 현재 국어, 도덕, 수학, 사회, 과학은 국정, 체육, 음악, 미술, 영어는 검정 체제이다.

2022년 3월부터 검정교과서에 수학, 사회, 과학이 추가되고, 초등 5, 6학년은 2023년 3월부터 수학, 사회, 과학을 검정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저작권을 갖는 국정교과서와 달리 검정 체제의 교과서는 출판사와 집필진이 저작권을 갖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심사하는 방식이다.

국가중심 교육과정 체제를 유지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국정교과서가 당연히 필요하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많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도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으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교육자치를 넘어 학교자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적절한 교과서를 선택하는 권리의 보장은 매우 필요하다.

검인정제도의 도입은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을 촉진하고, 교육주체들은 좋은 교과서를 선택하는 권한을 갖게 한다. 이미 2017 대선 과정에서 국정교과서(역사교과서)에 대해 국민의 심판이 있었다. 국가는 하나의 사상을 학생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보수든 진보든 위험한 방식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토의·토론하는 과정은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데 이런 맥락에서 국정교과서 체제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검인정제도의 도입은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을 촉진하고,

교육주체는 좋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한다.

중등학교는 이미 7차교육과정 이후부터 검인정 교과서를 도입하고 있고, 인정교과서까지 활용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검인정 교과서 제도 도입 이후에, 오히려 교과서의 질이 좋아졌고, 수업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고등학교에서 아무 문제 없는 시스템을 초등교육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이념적 관점으로 국정교과서 체제를 옹호하는 일각의 주장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존재이고,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잘 구현한 좋은 텍스트의 하나로 인식해야지 교과서를 절대적 위치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을 구현한 다양한 텍스트가 필요하다.

교육과정은 연구와 심의 과정을 거치며, 검인정 교과서 체제 역시 심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념적인 문제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검인정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교과서의 다양하고 과감한 실험을 충분히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쟁점이 되거나 가치 판단이 필요한 주제는 교육과정을 토대로 교과서에서 균형을 가지고 토의·토론·탐구로 풀어 가면 된다.

초등교과서 자료사진.
초등교과서 자료사진.

교육과정과 교과서...교육부에 세 가지를 제안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교육부에게 세 가지를 추가로 요구한다.

첫째, 교육과정에 대한 권한을 단계적으로 국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위임해야 한다.

국가는 큰 수준에서 교육과정의 비전과 철학,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교육청과 단위학교에서 만들어가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다. 교육과정의 형태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교과서 형태만 바꾸는 것은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다. 미래교육과 지방자치(학교자치)를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지역교육과정에 대한 담론과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교육과정에 관한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미래형 교육과정을 구상해야 한다.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든지 지나치게 많은 지식이 나열된 교과서는 기존의 교육과정과 교과서 운영 시스템의 병폐이다. 자신들의 교과 영역을 무조건 고수하려는 교과전문가 중심으로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기가 어렵다.

교과서 집필의 주도권을 이제는 교수가 아니라 현장 교원에게 넘겨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만들 때 교과분야의 교수그룹이나 관련 학회의 입장을 절대적으로 중시했다. 그러나 이들은 학교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을 등한시 했다는 비판을 현장 교원들에게 받고 있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교원들이 대단히 많다. 이들이 집필을 주도하고, 교수들이 검토를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교과서와 교육과정 검토 과정에서 시민사회관계자, 학부모나 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교과 이기주의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

역량중심 교육과정과 새로운 교과서 체계를 함께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현장 전문가와 교과 밖 전문가(발달심리학 등), 학생과 학부모의 시각이 결합된 교육과정 거버넌스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과정 적정화가 가능해지고, 교과서가 바뀐다.

셋째, 심의 기준 완화가 필요하고,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당장 전면 도입은 쉽지 않다.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 자유발행제의 단계적, 부분적 도입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에 대한 적극적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심의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의 심의기준이 지나치게 높고 까다롭고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심의기준을 통과하면 결과적으로 출판사마다 교과서가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검인정다운 검인정, 내지는 자유발행제 같은 검인정 체제로 갈 수 있도록 심의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지금이 미래교육 좌우할 터닝포인트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미래교육은 교육 시스템의 중요한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될 것이다. 그것이 위기일지 기회일지는 현 시점부터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생각할 시점에서 맞춤형 교육은 꼭 필요하며, 그에 따른 교사의 재량권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교과서 자유발행제나 교과서 없는 수업을 상상할 수는 없는가?

교사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교육과정을 잘 반영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교육회의와 교육부는 구시대의 유물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미래사회와 혁신교육의 관점에서 교과서와 교육과정 정책을 새롭게 설정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