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재일 경기 용인 백봉초 교사

지난 연말에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생도 정책을 쉽게 알 수 있는 ‘정책 1교시’ 촬영을 추진해 보고 싶다고 교육부 담당 PD로부터 전화가 왔다. 바쁜 연말 학사일정도 많은 시기에 갑작스러운 제안이 불청객 같기도 했지만, 그동안 아이들이 해 온 교육활동이 결국 정책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평소 체감했던 나는 이번 기회야 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정책이란 얼마나 좋은 것이고 힘이 되는지 알려 주고 싶었다.

<교단일기>는 선생님들의 교실 속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행복했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기분 좋은 일, 곤란했던 일...선생님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주세요.

아이들과 지난 한해 돌아본 교육부 '정책 1교시' 촬영

‘찰나의 생각이 미래를 정한다’ 했던가. 허언증처럼 동의해 버린 나는 전화 수화기를 ‘찰칵’ 내려놓는 순간 심장이 ‘철컥’했다. '무슨 교육활동으로 교육부에서 오는 촬영을 감당하지'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12월 27일 정책 1교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4학년 국어(나) 8단원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서 학생들이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발표하는 학습주제로 정책 1교시 수업을 디자인했다. 수업 장면을 앞, 뒤, 옆에서 밀착해서 찍는 카메라에 아이들은 사뭇 경직되고 긴장한 듯했으나, 수업 주제와 맞는 핵심 질문에 몰입하며 아이들은 어느새 집중하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행복했던 교육활동은 무엇이었는지 발표해 봅시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이나 감동적인 것을 발표해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말했다.

“저는 마을의 꿈멘토를 만나 진로 탐색과 인터뷰를 하고 마을의 소외계층을 도왔던 금빛 승부차기 챌린저가 기억이 나요!”, “저도 드림버스 타면서 마을 소외계층을 도왔던 드림샤워 활동이 가장 인상 깊어요.”

아이들에게 그동안 해 온 진로교육, 봉사교육, 영화동아리 교육 그리고 주도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을 가능하게 했던 자율활동교육 등이 모두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중심이 되었던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은 알 듯하면서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이런 기회로 한 걸음 더 정책에 다가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교육부 정책1교시 촬영후 피디와 작가님 직업 인터뷰를 즉흥적으로 시도하는 백봉초 영화반 학생들. 사진=임재일 교사
교육부의 '정책 1교시' 촬영후 피디님과 작가님 직업 인터뷰를 즉흥적으로 시도하는 백봉초 영화반 학생들. 사진=임재일 교사

드림샤워 활동에 대해 작가와 피디가 아이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반장 희영 학생은 “드림샤워는 ‘꿈꾸는 소나기’라는 뜻인데, 소나기는 소통, 나눔, 기쁨의 약자로 마을의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함께 나누면 기뻐지는 행복한 교육활동”이라고 잘 설명해 주었다. 이어 부반장 민규 학생은 “그래서 자신이 꿈꾸는 것을 교육활동을 통해 마치 마을의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 주는 단비가 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아이는 인터뷰에서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책이란 말이 무엇인지 어려웠지만 우리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정책이라 생각했어요. 우리는 작은 영웅이에요. 영웅은 나라를 구하거나 무언가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었을 때 영웅이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아직 작으니까 그래서 작은 영웅이라고 생각했어요.”

알아서 '척척', 피디와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하는 아이들

그렇게 그날 ’정책 1교시‘는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아이들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즉흥적으로 피디와 작가들에게 역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교육활동 하러 오는 외부강사님이나 직업인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진로교육을 해 오고 있었다.

이는 진로 탐색을 하기 위한 자료가 되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저를 벤치마킹하여 ‘금빛 승부차기 챌린저’를 통해 꿈멘토가 골인을 시키면 가상으로 만원이 적립되는 앞서 말한 드림샤워 활동을 늘 해 왔다. 영화반이었던 4학년 학생들은 이번이 52번째임을 강조하며 가상으로 적립되었던 골인 영상을 마을에 있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소외계층에게 이불, 쌀, 고무장갑, 김치 등을 전해 주는 일을 지난 수년 간 실천해 왔다.

이렇게 아이들은 많은 직업인을 탐구하여 나(Me)와 타인(nam)과의 관계를 제법 잘 맺어가는 우리 학교가 추진하는 미남(Me-nam) 교육을 실천해 왔다. 그리고 자신의 흥미, 적성, 소질, 취향, 능력 등을 알아가면서 내(Me) 안(in)의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미인(Me-in) 교육도 왕성하게 해 왔다. 이런 다양한 분야의 교육활동을 묶어 하나의 융합적인 교육활동을 탄생하게 한 것은 이 학교의 창의융합형 교육과정 플랫폼 덕분이다.

지난 4년 간 드림샤워 활동으로 모은 성금을 마을 소외계층에게 기부하기 위해 영화반 학생들이 단위별로 성금을 집계하고 있다. 사진=임재일 교사
지난 4년 간 드림샤워 활동으로 모은 성금을 마을 소외계층에게 기부하기 위해 영화반 학생들이 단위별로 성금을 집계하고 있다. 사진=임재일 교사

스스로 활동 결과를 찾아가는 아이들

다음 날이 되었다. 아이들은 정책 1교시가 일회성의 쇼가 아니라 진지한 교육활동임을 증명해 보였다. 지난 4년 간 미남(Me-nam) 교육인 금빛 승부차기 활동으로 모은 가상 성금 52만원과 꿈멘토 분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성금 등을 실제로 공개하고 이를 마을의 소외계층에게 유익하게 사용하자고 국어 시간에 의견을 제안한 것이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눈빛이 어제와 사뭇 달랐다. 여러 의견을 수렴한 끝에 마을의 경로당 두 곳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모은 기간이 4년이고, 뜻하지 않게 도와주신 도움의 손길을 이제 다시 세상에 환원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반장이 성금액을 단위별로 적었다. 짤랑짤랑 50원짜리까지 긁어모아 꼼꼼히 덧셈을 하니 316,950원이었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면 좋을지 의견을 또 물었다. 성금을 직접 건네는 방법과 생필품을 사서 건네는 방법 아니면 반반! 아이들은 역시 반반을 좋아한다. 반 정도는 직접 드리고, 나머지는 필요한 물건을 사 드리자고 한다. 의견 내용이 제법 현실적이다. 담요, 파스, 핫팩, 장갑, 목도리, 털모자 등을 샀다.

이튿날 나는 어제 학생들에게 배부했던 드림샤워 체험학습 동의서를 받고 학생들과 함께 생필품을 사서 마을의 경로당 두 곳을 찾아갔다. 20만원 성금 봉투와 전기담요 2개, 쌍화탕 2개와 롤케이크 2개 그리고 우유를 각각 역할을 나누어 전하기로 하였다. 할아버지들이 계신 경로당에 도착한 우리는 어르신 24분을 만나 뵙고 우리의 교육활동을 알려 드렸고, 준비한 물품을 전달하였다. 기해년 새해를 맞아 어르신들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배를 드렸다. 갑자기 경로당 어르신들께서 우리를 위해 검은 봉지에 과일과 과자를 미리 담아 둔 것을 건네주셨다. 우리는 깜짝 놀라 이것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손수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그분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은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마을 경로당을 다녀 온 후 학생들이 행복함을 표현하는 모습. 사진=임재일 교사
마을 경로당을 다녀 온 후 학생들이 행복함을 표현하는 모습. 사진=임재일 교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할머니들이 계신 경로당을 찾았다. 날씨도 춥고 다리도 아플 정도로 걸었지만, 맞이해 주시는 할머니들께서 미소는 물론 포옹까지 해 주셔서 피로가 싹 가셨다. 이런저런 마을 이야기, 학교공부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 한 분께서 적극적으로 과일을 직접 까서 주시기도 하였다. 교장 선생님의 진심 어린 인사로 자리를 일어나 최종 인사를 모두 드렸다. 교실에 들어와 우리는 소감을 이야기 하고 최종 인터뷰를 하면서 행복한 포즈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먹은 점심! 2년간 고마웠다, 얘들아! 사랑한다!

지난 4년...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제 이 학교에 적을 둔 지 만 10년이 되어 떠나게 되니 그동안 일구어 온 교육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적지 않게 섭섭할 거 같아 마음이 한 편으로 무겁다. 새 학기가 되면 나는 이제 여기에 없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계속 이끌어 가길 바란다. 이런 경험으로 무엇인가 배우고 성장하여 배움의 중심에 서기를 바랬던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좋아서 몸이 움직였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말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지난 4년을 숨 가쁘게 사랑으로 채워왔다. 매주 월요일 저녁 영어야학으로 마을의 초·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 왔고, 영화를 찍기 위해 매주 화요일 방과 후 시간을 할애했다. 목요일 또한 강사를 채용해 콜라보레이션 영화촬영을 하였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에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방학 때는 펜션을 빌려 1박 2일 숙박형 캠프도 하고, 저녁이나 밤을 이용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 활동도 두 시즌 정도 운영했다.

미래 역량 중 자기관리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진로교육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꿈의학교를 통해 13개의 초·중학교 출신 34명이 영어로 된 영상을 만들어 서울 청소년 창작 영화제에서 대상, 촬영상, 지도자상 등 3관왕을 타 보기도 했고, 서울구로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경기도 김포영화제 대상, 교육부 3분 인문학 교육부장관상 등 여러 굵직한 대회와 공모전에 입상했다. 학생들에게 심리적 감수성과 공동체 역량 그리고 자신의 상상 나래를 펼치는 창의적 사고 역량까지 신장시키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드러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노력과 나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의 만족할 만한 성과들로 인해 아이들과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성장했다.

2년 연임제라는 정책, 마을교육공동체 정책, 학생 주도성 프로젝트 정책, 꿈의학교와 같이 학생의 꿈과 끼를 구현하는 진로교육 정책, 학교의 중점사업과 학생 중심의 학교 교육과정 정책 등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려 하지 마라. 믿어라"

누가 알아주든 말든 지난 4년 동안 백봉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일으키는 교육과정과 교육다운 교육을 구현하고자 노력해 봤다. 첫해 때 받았던 온몸의 화살이 아직도 아프기도 하지만, 성장통이라 생각하고, 2년 차 때는 심기일전 보다 나은 모습으로 학생들과 행복한 교육과정 문화를 만들어 봤다. 학부모님들의 참여가 늘었고, 동료 교사들의 신뢰가 깊어졌다. 관리자 분들의 응원과 교육지원청의 지지도 해가 거듭될수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과다. 동기가 아니다. 동기가 하나 있다면, 믿어 주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잠재성과 가능성을 온전히 믿고,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 어른친구로서의 파트너가 되어 주는 것이다.

행복은 삶에서 찾을 수 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삶 속에 표정과 소통이 있고, 웃음과 재미도 있다. 때론 슬픔과 실패도 있지만, 다시 웃으려고, 성공하려고 손을 잡게 되는 삶이 있었다. 아이들끼리, 나와 아이들 사이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신뢰로운 관계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는 대한민국 교사다. 학생을 가르치는 전문가다. 학생이라는 사람과 삶을 마주하면서 행복을 갈구하는 로맨틱한 교사이면서, 내가 하는 교육의 전경을 든든하게 지원해 주는 정책적 배경을 소상히 꿰뚫고 조망하고자 하는 단단한 교사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지난 작은 학교 10년의 길이 한눈에 읽힌다. 그것은 내 교육의 무늬, 내 수업의 질감, 내 정책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