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말하는 '교육혁신'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 입시에 매몰되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여론에 휘둘리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많다. 그러나 비판은 쉽지만 대안은 어렵다. 누구라도 나침반 역할을 하며 먼저 나서야 한다. 설사 그 방향이 틀리더라도 적어도 교육문제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게 된다. ‘교사가 말하는 교육혁신’을 연재함으로써 감히 그 역할을 먼저 자청해 본다.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상임고문

누가 '교육 혁신'을 말한단 말인가

성공한 우리나라 벤처 기업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학교 폄하 발언이다. “학창 시절은 지옥이었어요”라고 말한다거나,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실제로 쓸모가 없는 것들이잖아요”라고 말한다거나, “나에게 필요한 것들은 유치원때 이미 다 배웠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솔론이 크로이소스에게 일깨워 주었듯, 그들이 정말 성공한 사람들인지 판가름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ICT 분야에서 나름 성공했다는 기업가들은 하라는 사업 혁신은 안 하고 엉뚱하게 교육이 이러네, 저러네 하면서 시쳇말로 약을 팔고 다닌다. 정작 우리나라 ICT 산업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ICT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를 자신들의 창조성과 혁신 부족이 아니라

교육에 전가하려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말들이 교사 연수에 자꾸 인용된다는 것이다. 주로 ‘4차 산업혁명’, ‘혁신’, ‘미래’ 등의 화두를 다루는 강사들이 이 한물가기 시작한 ICT 기업가들의 학교 폄하 발언을 부지런히 퍼와서 옮긴다. 이런 강사들을 보면 대체로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멀어진 지 오래인 장학관, 연구관, 교장, 교감 혹은 교수들이다. 이들이 파는 약은 천편일률이라 한 두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공교육이 시대 변화에 뒤떨어져 있으며, (자기들처럼)빨리 혁신하여 미래사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듣는 교사들의 입장은 참으로 착잡하다. 물론 때로는 이런 말들이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고, 거기에 자극받아 다양한 수업혁신 성과를 거둔 교사들도 있다. 하지만 혁신 타령도 한두 번이고 미래 타령도 한두 번이다. 1년에 서너 번씩 불려가서 반강제로 “당신들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니 정신 차려” 류의 말을 들어야 하니, 구태도 이런 구태가 없다.

이런 말을 계속 듣다 보면 교사들은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책무성 대신 혹시 자신이 미래를 개척할 꿈나무들을 질식시켜 그 잠재력을 다 말려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만 가득 채우게 된다. 심지어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오히려 학생들의 미래를 망치고 창의성을 말살시킬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진다. 여기에 일부 진보 교육운동가들까지 가세하여 “아이들은 공부보다 그저 신나게 뛰어놀아야 한다”라며 부채질을 한다. 이쯤 되면 교사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정서는 자기 효능감이 아니라 자기 혐오감이 될 지경이다.

심지어 정부까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교사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이 위원회에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대안이라고 이미 학교에서 10여년 전에 했거나 하고 아직도 하는 ‘발명교육’, ‘코딩교육’이라는 걸 내어놓았다. 이런 분위기면 발명반 같은 거 운영 못 하고, 코딩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들은 모두 구시대의 유몰로 몰려 사표라도 써야 할 분위기다.

교육의 기본 목적은 ‘학생 행복’

그러나 이런 일련의 흐름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교육의 목적은 미래의 생산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학생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의 미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를 위해 있는 것이다.

교육을 미래의 취직, 미래의 경쟁력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행복은 철저히 무시된다.

교육은 배움이라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확장되고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때의 즐거움이 행복의 초석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미래의 일자리, 미래의 생산력을 준비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국가의 목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소간의 비효율을 감수하듯, 민주주의 국가의 교육은 학생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필요는 잠시 내려두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배움의 즐거움과 행복을 아는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도 기꺼이 배울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생산력과 행복을 함께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게 교육이다.

그렇다고 치면 저 ICT 영웅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움의 기쁨, 성장의 즐거움, 행복 같은 것을 성과와 성공에 취해 잊어버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나라 학교가 문제가 많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들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그게 학교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학교가 공교육이 본연의 목적이 아닌 외부의 성과압력에 얼마나 많이 시달려 왔던가?

최근 들어 터져 나오는 스포츠 미투는 훈련을 메달을 따기 위한, 성과를 위한 과정으로 생각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온갖 가혹함과 비인간성의 결정판을 보여준다. 학교라고 다를 수 없다. 만약 교육을 멀게 생산력, 짧게는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 과정에 대한 고민은 사라진다. 그 과정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학생들이 불행해지든지 간에 말이다.

여러 해 전, 대학 잘 보내주는 교사가 학생 및 동료 교사를 성희롱한 사실을 폭로한 학생들이 도리어 다른 학생, 학부모에게 욕을 먹었던 참담한 사건이 있었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저 벤처 사업가들은 저 연수 강사들은 학교의 그런 점을 비판했어야 했다. 어쩌면 그들이 비판해야 할 것을 비판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학교가 그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반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