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 민주주의 이룬 우리나라...'인간의 존엄성' 이룰 차례

"20대 때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수용할 만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은 나의 삶과 정책적 철학을 바탕으로 주관적 관점으로 이루어진다. 내 시선이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나름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주관적이고 관찰적인 시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되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객관적 지식 및 데이터는 최소화 할 것이다. 정책가는 좌우 이념의 대립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게 내 신념이다." 젊은이의 눈에 비친 세계. 직접 경험하고 공부하며 깨달은 철학은 무엇일까. <에듀인뉴스>는 새해 첫 연재로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과 함께 떠나는 '옥승철의 세계 정책여행’을 기획했다.

평소 덴마크의 행복 지수가 세계 1위인 이유가 궁금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덴마크 친구들에게 너희가 왜 행복한지 묻고는 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에 한 친구가 해준 말이 내 뇌리에 꽂혔다.

덴마크에서는 거지가 되어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덴마크에서는 미혼모가 되어도, 실직되어도, 갑자기 몸을 다쳐 장애인이 되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갑자기 청소년이 가장이 되어도 모두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복지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예전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이병헌은 자신이 노비였음을 밝히며 김태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 땅에는 누가 살 수 있는 것인가? 미혼모는 살 수 있는 건가? 장애인들과 갑자기 실직된 가장과 그의 가족들은 살 수 있는 건가? 1평짜리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 독거노인들, 청소년 가장들 그리고 가족과 직업, 삶의 희망까지 잃은 노숙인들은 살 수 있는 것인가?

내 대답은 “살 수 없다”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쟁력이 없거나 잃은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가 없다. 사회적 편견도 그렇고 그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힘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나라는 일반인들조차 제대로 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덴마크 친구에게 거지가 되어도, 가진 것을 다 잃어도,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거나 장애인이 되어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 덴마크의 근본 국가 철학으로

덴마크의 복지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철학 위에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노숙인이 되어도 다시 사회에 기여하는 하나의 일원으로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국가와 사회는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개개인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해준다. 그래서 노인들, 미혼모들, 청소년 가장들 등의 일반적인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덴마크 사회에서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다.

이처럼 덴마크의 복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철학 위에 세워졌다. 또한 덴마크는 이 철학을 모든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즉 국가를 구성하는 원대한 기초이다. 그만큼 한 국가가 가지고 있는 철학은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다.

덴마크 사회에 대해서는 ‘남녀평등’, ‘교수의 의견에 No를 외치는 덴마크 시험’, ‘공동체를 생각하는 자연보호 철학’, ‘나와 님, 나와 너가 없는 인간관계’ 등의 칼럼을 통해 소개했다.

이 주제들을 하나의 틀에 담는다면 ‘인간과 자연에 대한 동일한 존엄성’이다. 여기서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이 주제들은 인간의 사회적 평등과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존엄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독거노인들, 미혼모들, 청소년 가장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청소부와 경비원과 같이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천시하는 직업들과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간에 사회적 차별이 없으며, 높은 직급과 낮은 직급 간의 인간 관계적 차별과 갑질 또한 없다. 그리고 남녀의 의무와 권리가 동등하며 평등하다. 덴마크에서는 개개인 모두 동일한 양의 인간 존엄성을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갑질, 미투, 남녀차별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인간관계는 주자학의 ‘나와 놈’, ‘나와 님’이 아직도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래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갑질을, 회사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갑질과 언어폭력을, 대기업 재벌 자녀들이 일반인들을 아래로 보며 갑질을 한다. 또한 일반인들조차 마찬가지이다. 뉴스에서는 심심치 않게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과 청소부들에게 갑질을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미혼모, 청소년 가장, 고아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얼굴을 들 공간조차 없다. 또한 성희롱, 성추행이 난무한다.

지난 2년간의 뉴스를 분석해보면 각종 유형의 갑질, 미투 운동, 성추행(폭행), 남녀차별, 사내 언어 및 신체폭력 등이 많이 나왔다. 잘 생각해보면 2~3년 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러한 이슈들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갈구하고 그것을 찾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도의 경제성장기에는 무조건 상사의 욕을 먹으면서도 열심히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바빴다. 사내의 성희롱도 꾹 참아야 했다. 남녀평등을 이해할 여유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대기업의 하청업체 갑질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는 눈감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대기업 자녀들은 고도 성장기에는 높으신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경제발전,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옥스퍼드에서 일깨운 국가의 시대적 사명

내가 다니던 옥스퍼드의 공공정책 학과에는 120명의 학생이 75개국에서 유학을 왔다. 나는 쉬는 시간 마다 서로의 나라에 대해 대화했다. 그리고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먹으며 최대한 그들 나라의 사명과 이슈를 들으려 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무엇인가 내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국가의 3가지 시대적 사명이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저개발 국가에서는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명이다. 그들은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우러 옥스퍼드에 왔다. 나는 가끔 한국 발전경험에 대한 책을 사서 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학생이라 책을 구입하기에 부담이 되었지만 한국 경제발전 경험의 공유는 인류라는 공동체에 속한 내 의무라고 느꼈다. 이처럼 이들 국가의 시대적 사명은 ‘경제발전’이었다.

동시에 ‘경제발전’을 이루거나 이루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온 학생들의 이슈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망이었다. 미얀마, 베네수엘라와 온두라스를 포함한 남미 및 중진국인 중동의 몇 국가들 그리고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중국에게 종속되어있는 홍콩 같은 국가들이었다. 법치는 절대 독재국가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나라의 학생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배우길 원했고 옥스퍼드의 정치 수업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수업이 따로 있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을 학생들과 공유했다. 모두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왔었다. 때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주기도 하고 영화도 보여주었다. 이처럼 내가 찾은 두 번째 국가의 시대적 사명은 ‘민주주의’이다.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미국이나 기타 선진국들도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한 길이다. 나는 그 힌트를 북유럽을 포함한 덴마크에서 찾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하고 나서 시대적 역사를 살펴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경제발전’과 ‘민주화’이다. 나는 이 두 개 중 하나를 이루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리고 희생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민주화로 인해 오히려 시리아처럼 국가가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필리핀은 자국 여자들을 전 세계의 보모로 보내고 남자들을 노동자로 보내면서도 경제발전은 요원하다. 민주주의 또한 그렇다. 민주주의는 피로서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민중혁명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운동을 보더라도 대규모 시민의 피를 땅에 적셔야 이루어진다. 그래도 성공 확률이 낮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를 거의 다 이루었다. 경제성장은 이제 규모의 경제에 어느 정도 도달한 것 같다. 민주주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법치가 거의 뿌리를 내렸다. 중국은 정부를 비판하면 공안에 끌려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고 정부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에 서술한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이제야 수면 밖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은 거의 전무하다.

'인간의 존엄성' 우리나라의 새 시대적 사명

그래서 우리나라의 세 번째 시대적 사명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국가와 시민은 이제부터 함께 이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제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지금의 복지 시스템은 해외의 좋아 보이는 것들만 이것저것 가져와 덕지덕지 붙여놔서 어디에 무엇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또 어느 곳은 쓰지 말아야 하는지 기준조차 없다. 이러한 기준이 없는 이유는 바로 국가의 복지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지 철학을 ‘인간의 존엄성’에 맞춘다면, 덴마크처럼 많은 돈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먼저 세우면 된다.

우리나라의 현실상 모두 복지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스스로 설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이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게끔 먼저 지원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현실상 부자들까지 포함한 보편적인 복지는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한정된 자원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이것이 복지의 첫 단계이다.

또한 사회적 평등을 위해 우리나라 사회에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철학을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시민교육 또한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장사꾼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진정한 자본가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윤리의식 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철학과 함께 뿌리내려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혁신을 불러온다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면 자연적으로 ‘혁신’이 찾아온다. 사회적으로 평등해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창의가 생기고 혁신이 생긴다. 대기업에서는 직급을 없애지 않아도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절대 지위 높은 꼰대라도 청년 신입사원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은 하청업체를 쥐어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남녀의 의견 교환 또한 활발해진다. 모든 시민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창의와 혁신은 강화된다. 이로인해 위계질서의 바탕으로 이끌어온 한계규모에 부딪힌 경제는 혁신으로 또 한번 성장할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개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코이카 인턴으로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일했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공공정책 석사를 공부하였다. 졸업 후 싱가포르의 북한 관련 NGO Choson Exchange에서 북한에 대해 연구했고, 미얀마의 US AID 소속 NDI(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미얀마의 소수민족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연구했다. 현재는 덴마크 비즈니스 스쿨 석사를 다시 하면서 덴마크 복지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과학원대학에서도 중국에 대해 배우고 있다. 2016년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한국청년정책학회를 세워 청년정책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부이사장으로서 정당 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개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코이카 인턴으로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일했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공공정책 석사를 공부하였다. 졸업 후 싱가포르의 북한 관련 NGO Choson Exchange에서 북한에 대해 연구했고, 미얀마의 US AID 소속 NDI(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미얀마의 소수민족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연구했다. 현재는 덴마크 비즈니스 스쿨 석사를 다시 하면서 덴마크 복지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과학원대학에서도 중국에 대해 배우고 있다. 2016년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한국청년정책학회를 세워 청년정책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부이사장으로서 정당 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