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문화평론가

정지우 문화평론가
정지우 문화평론가

서울대학교 시설관리직(청소, 경비, 전기, 기계, 소방) 노동자 파업에 대해 논란이 되었던 서울대학교 학생회의 입장이라는 걸 살펴보았다. 학생회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학생들이 이용하는 도서관 등을 제외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현재는 비판 여론에 못 이긴 듯, 혹은 반성을 한 듯 이러한 입장을 철회하고 노동자들과 뜻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비판은 대체로 청소노동자들이 생존을 걸고 투쟁을 하는데, 학생회가 문제의 본질인 대학 본부에 함께 항의를 못 할 망정, 오히려 파업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었다. 학생회의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처를 지적하는 그런 비판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묘하게 20대 때의 기억, 대학생 때의 기억 같은 것이 기어 올라왔다. 나는 아직 대학을 졸업한 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았고, 대학원까지 머물렀던 걸 생각하면 더 얼마 안 되었다. 그런데 대학생 때를 생각해보면, 사실 노동자의 입장이라든지, 노동문제라든지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던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령 그게 교내 문제라 하더라도, 대부분 학생은 학생회 활동이라든지, 어떤 정치적인 문제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나 자신도 그리 그런 쪽으로 관심이 풍성한 편은 아니었고, 약간의 의무적 관심 정도만 가지고 있던 터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생이라고 해봐야,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이라고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일이었다. 가까운 친구조차 짓밟고 이겨야 했고, 자기 공부, 자기 성적에만 신경 쓰도록 전방위적으로 강요받았다. 교육이란 나의 인식 범위를 확장해 타자에 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내 안으로 모든 시간과 노력을 수렴시키는 것이었다.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할 것, 나의 공부, 나의 스케줄, 나의 미래만을 생각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기면,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것만을 배운 채 대학교에 입학했을 따름이다.

그나마 학생회라고 하면, 어느 정도 사회문제 등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인다. 하지만 서울대학교라고 해서, 일반 학생들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철저히 자기에게 집중하여 경쟁에 이기는 데만 몰두했을 가능성이 높다. 딱히 ‘청소노동자가 무슨 일을 하는데’ 반대까지는 안 할지라도, 자기에게 집중해야 하는 그 시간과 노력을 방해하는 일에 관해, 자기 입장 이상을 생각할 가능성이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회는 아마 그런 학생들의 여론이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대학생 때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번뜩 그런 생각이 들고, 몇 년이나 지난 지금에는 그런 분위기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묘하게 느끼는 것은 나 자신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사회 문제에 여러모로 관심도 많아졌고, 칼럼이나 책도 쓰고, 대학교 바깥에서 학교를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다. 그리고 주변의 대다수 사람도 그런 입장에서 청년들, 대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 내가 학교 안에 있었을 적에, 한 명의 청년으로서,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화가 났던 건 ‘20대 개새끼론’이었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청년들을 규탄하는 것, 대의에 관심없고 정의롭지 않으며, 자기 앞가림에만 집중하는 20대에 대한 각종 기성 지식인들의 공격 같은 것들에 이를 갈았다. 우리에겐 그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시야를 돌릴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했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은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그래도 우리 때는 나름 신입생 때의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도 않아, 현실이 들이닥쳤다. 해야 할 건 너무 많았다. 1학년 때 놀았던 애들은 모두 후회하며 재수강을 하며 학점을 챙겼다. 술 마시지 말걸, 게임을 하지 말걸, 당구 치지 말걸, 선배들 따라디니지 말걸, 하면서 스터디나 학원 다니기에 바빴다. 학교 앞의 술집들은 거의 다 카페로 바뀌었고, 언제 어디를 가나 수험서에 얼굴 처박고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사회문제? 인권? 노동문제? 그런 건 아마 언론을 준비하는 '언시생'들이나 취업을 위해 몰두했던 주제였을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아무래도 학생회의 입장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들이 더 현명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대처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재 대학생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얼마 전, 아내 친정 주변의 도서관에 갔는데, 연휴에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열람실 수백 자리가 모두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이 대학생 혹은 청년들이었다. 나는 그냥 발걸음을 돌려 카페로 갔다. 그런데 카페에도 청년들이 잔뜩 앉아서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 지방 고향으로 돌아온 학생들이 모두 집 앞 도서관과 카페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듯했다. 학교 도서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년들을 규탄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청소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을 배려하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그 정도로 노동자들이나 청년들을 내모는 사회가, 대학이 어딘지 역겨울 뿐이다. 왜 그들이 서로 상처받게 하는가? 왜 이렇게 타자에 관해 아주 작은 공감과 상상조차 할 만한 여력까지 빼앗아버렸는가? 왜 인간을 점점 더 왜소하고 초라한 짐승 비슷하게 만들어가는가? 내가 이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저 그런 생각이 들 뿐이다. 분명한 건 이 모습들이 온당함이나 온전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것뿐이다.

 

#이 글은 정지우 문화평론가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에 함께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