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 이집트 고고학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7일 "유치원이라는 명칭은 일제잔재 용어이므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아학교로 바꾸는 것이 상징성이 있다"면서 명칭 변경에 대한 뜻을 밝혔다. 

만약 조희연이 유아교육의 의무교육-공교육 체제 편입을 위해서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고만 말했다면, 명칭 변경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조희연의 견해는 충분히 고려해 봄직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잔재'와 관련된 부분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청산해야 할 일본 식민지 시절의 잔재가 우리 주변에는 분명히 남아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청산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이 만들거나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이던 시절,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이자 군국주의 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적극 권장하던 제도나 습관 같은 것들 가운데는 파쇼적인 것들이 다분했다. 

그리고 그 파쇼적인 것들은, 식민지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제도와 습관으로 한국사회에 그대로 남아서 우리 시대의 가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말하는 '일제의 잔재'가 저항의 대상이 되고, 철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만약 일본과 관련이 있는 것이 모조리 다 철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번역어에 대한 사용도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교육감'이라는 조희연의 직위 명칭부터 변경되어야 한다. 

또 일본 제국에 의해서 직접 세워진 '경성 제국 대학'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도 문을 닫아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이유도 전혀 없다. 무엇인가가 일제의 잔재라 철폐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렇게 억지스러운 면을 갖고 있다.

유치원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유치원 幼稚園은 '어린이 공원'이라는 뜻의 독일어 kindergarten을 그대로 번역한 말이다. 이 번역어가 '일본식 조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하는데, 일본식 조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지를 나는 전혀 모르겠다. 설령 일본어를 토대로 이루어진 번역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오래도록 한국사회에서 사용되어 왔다면,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감안할 때 그것은 이미 '한국어'다.

kindergarten은 유아교육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 프뢰벨(Friedrich Fröbel)이 자신이 1830년대에 만든 어린이 대상 교육기관에 직접 붙인 이름이다. 1830년대의 독일은 '제 3제국'은 물론이고 '제 2 제국'도 형성되기 이전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거나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니, kindergarten이라는 단어는 '제 3제국',

즉 나치와 히틀러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즉각 사용을 중지하고 명칭을 kinderschule 같은 것으로 새롭게 바꿔야 한다. 

라고 말하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현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시민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일제시대', 즉 식민지 시대와 그 시대가 남겨 놓은 잔존물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져야하는 것은, 그것이 '일본'에게 식민화 되었던 경험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식민화의 주체인 일본 제국이 당시 '파시즘 국가'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저항과 척결의 대상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제도적-습관적으로 남아 있는 '파쇼적 행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