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펼쳐지는 '촌극'...승진 점수 쌓기

정재석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장
정재석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장

한의사인 친구가 한방병원을 개원하였다. 한의사인 친구의 일과를 살펴보면 아침 9시에 병실 회진을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료실에 가서 환자 진료를 보고 침구실에 수시로 가서 침을 놓는다. 심지어 일요일에도 입원 환자들에게 약침을 놓아주려고 온다. 실재적인 일을 하면서 병원 경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는 병원장 자격증이 없다. 검사장도 자격증이 없다. 대법원장도 자격증이 없다.

교사와 비슷한 일을 수행하는 대학교수도 총장이 될 때 자격증이 필요 없다. 그런데 유독 교사에게만 교장자격증을 요구한다.

교장자격증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만 소수의 교사지원 가능 내부형·개방형교장공모제 학교 외에는

교사자격증으로는 학교장이 될 수 없다.

교무, 교감, 교장의 얽히고 섥힌 '권력 피라미드'

교장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교육행정전문직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장들이 교육행정전문직으로 역량발휘를 하고 있을까? 물론 독일이나 미국의 교장처럼 열심히 일하는 교장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교장은 결재의 전문가가 되고 있다.

인사는 교장의 고유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인사업무를 교감이 하고 교무 관리를 해야 할 교감 대신 교무부장이 교무를 관리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학교 풍경이다. 왜냐하면 교장, 교감, 교무는 먹이피라미드처럼 권력의 피라미드 관계이기 때문이다. 교무가 승진하기 위해서는 승진하기 전에 1등 수1)가 3년이 필요하다.

1) 교감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근무평가 점수가 필요하다. 교감 후보가 되기 전 5년간 중에 3년의 근무평가 점수 중에서 높은 점수를 선택한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1등 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교감, 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교감의 근무평가권은 교장과 교육지원청이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감도 교육적 소신을 펼칠 수가 없다.

결국 학교라는 조직은 경직되었고, 승진이라는 관점에서 충성경쟁의 장이 되었다.

흔히들 교장은 책임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주로 결재만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실제로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면 뒷짐 지는 교장이 많다. 왜냐하면 학부모가 교육지원청에 민원을 넣으면 자신의 교장 중임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교육지원청에 나쁜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명백히 학부모가 교권침해를 하는 경우에도 학부모편을 드는 비합리적인 교장이 있기도 하다.

마일리지승진제는 왜 계속되는가?

행정실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책임도 잘 지려하지 않는 이러한 마일리지승진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피업무와 기피지역근무 배정 시 승진제가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기피업무인 교무부장은 승진을 앞둔 근평이 필요한 교사로 충원할 수 있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학교폭력업무와 행정업무양이 비대한 방과후업무도 부장점수가 필요한 교사가 지원할 수 있다.

기피지역도 가산점을 부여해 점수 경쟁을 하는 교사들은 벽지학교나 섬학교로 간다. 이렇듯 승진점수는 기피업무배정과 기피지역 근무자 배치에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쓰인다. 그렇다면 과연 기피업무를 했다고 해서 그리고 기피지역 근무를 했다고 해서 교장 자질이 있는 걸일까?

교장을 '교육행정전문직'으로...'내부형교장공모제'

교사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장은 행정실무를 감당하면서 민주적인 교장이다. 이러한 교장을 뽑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장제도가 필요하다. 그나마 법적으로 인정하는 교장제도 중에서 행정실무를 하는 민주적인 교장을 뽑는 제도는 교사지원가능 내부형교장공모제이다. 내부형교장공모제는 15년 경력 이상 교사 자격증 소지자 중에서 교장을 뽑는 제도이다. 내부형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와 학교경영계획서를 제출한다. 보통 내부형교장공모제에 공모하는 교사 자격증 소유자들은 자신이 교장이 되면 행정실무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학교경영계획서에 쓰고 실제로 교장이 되어서 학생상담, 공모사업, 지역사회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러한 내부형교장공모교장 후보자는 심층면접을 본다. 심층면접을 통해서 면접관들은 이 교장 후보가 민주적인 교장이 될 수 있는지 면밀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후보 중에서 그나마 민주적인 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교장이 될 확률이 높다.

내부형교장공모제가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교장 자리를 승진이 아닌 보직 개념으로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기를 4년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현행 자율학교에서 교사지원 가능 내부형교장공모제를 신청하면 50%만 교사지원 가능학교로 선정된다. 이러한 제한에서 벗어나 일반 학교까지 전면 확대해야한다. 그리고 공모제 교장인 개방형, 초빙형, 내부형 공모 교장 기간도 정규 교장의 임기(중임 포함 8년)에 포함하여 공모제가 교장 임기의 연장이라는 비판을 상쇄해야 한다.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보이는 기피업무와 기피지역 배정에서는 승진점수가 아닌 보직교사 수당 인상이나 농어촌수당 신설 등을 통해서 교사들을 지원해야 하며 승진 점수가 아닌 이동 점수로 전환해야 한다. 금전적 보상이나 전보 점수를 넘어 더 좋은 대안을 연구해야 한다.

마일리지승진제가 지속하는 한 교사들은 권력에 있어 수동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승진의 유혹에 빠져 수업보다는 행정업무에 치중하는 교사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교육과정의 창의성도 발휘하기 힘들게 만든다. 즉, 마일리지승진제는 교사들과 학생들의 민주성과 창의성을 유예하게 된다. 마일리지승진제의 조속한 폐지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