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걸어온 길을 스스로 정리하고 미래 이야기 해야
제1의 길 해방이후, 제2의 길 5.16쿠데타 이후, 제3의 길 5.31 교육개혁 이후
한국 교육 제4의 길은?..."과거로부터 교훈 얻어 교사 중심으로 나가야"

“왜 '제4의 길'이냐고요?"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다’를 펴낸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첫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앤디 하그리브스와 데니스 셜 리가 쓴 ‘The Fourth Way’(학교 교육 제4의 길)에서 세계 학교교육의 역사를 제1, 제2, 제3의 길로 분석하고 있어요. 21세기 세계 교육이 추구해야 할 새 방향을 제4의 길로 설명한 것이지요.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가 이미 제4의 길 혹은 제3.5의 길에 들어섰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제2의 길 수준에 와 있다'고 번역자가 해석을 했어요. 그 해석이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이 교수는 번역자의 해석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동의를 거부하며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왜 저들이 걸어온 길과 우리가 걸어온 길이 질적으로 다른지, 왜 저들이 걸어온 길을 기준으로 과거·현재·미래를 판단하는지, 우리는 왜 스스로 우리가 걸어온 길을 교육적으로 정리하고 미래의 길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지 분노와 부끄러움의 감정을 담아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다'를 펴낸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지성배 기자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다'를 펴낸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책을 펴낸 이유와 책에 담고자 한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지준호 기자

이 교수는 이 책의 재료로 지난 2015년 10월부터 월간 새교육에 연재한 ‘이길상의 새교육으로 본 교육사’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 교육민주화 운동까지 우리 교육 70년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선배 교육자들이 새교육에 남긴 글을 모두 읽었다.

한국교육이 지나온 길을 더듬어 찾아가는 중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 교육혁신의 실패와 입시전쟁이 만든 공교육 붕괴현상이 '안타까움'이요,

국가권력의 지배 욕구와 일부 교육자들의 획일화라는 욕망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분노'요,

분단과 군부독재, 그리고 전쟁과 가난속에서도 교육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선생님들의 신념은 '고마움'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나 온 한국 교육을 3개의 길로 나눈다. 1945년 해방부터 1960년 초반까지는 ‘민주주의 교육을 만난 제1의 길’로, 1960년대 초반부터 1995년 5.31 교육개혁이전까지를 ‘국가권력이 만든 두 개의 교육이라는 이름의 제2의 길’로,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현재까지를 ‘시장이 지배하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제3의 길’로 구분한 것.

민주주의 교육 만난 제1의 길..."가장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시기"

제1의 길은 미 군정으로 시작해 정부수립과 전쟁, 그리고 전후복구를 거쳐 4.19 학생혁명을 지나 5.16쿠데타에 이르는 약 15년의 기간이다.

“이 시기는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도전이라는 시대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 역사 70년 중 가장 역동적이었으며,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교육자들의 신념이 강했고 용기 있게 도전했던 시대지요.”

얼핏 갸우뚱해지는 이야기지만 이 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국식 이론의 승리?..."승전국들의 합체인 서양 교육이론일 뿐"

“이 시기 교육자들은 사회주의 계열의 진보적 민주주의 교육론자와 민족주의 교육론자,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론자들로 나뉘어 집니다. 이들은 일제 잔재 정리 방식을 놓고 갈등했습니다. 사회주의 계열 교육론자들은 교육 이념의 전체주의적, 자본주의적 성격과 친일 교사집단의 영향력을 일제 잔재의 핵심으로 규정해 교육이념의 재정립과 친일 교사 정리에 몰두했으며, 민족주의 교육론자들은 교육 내용의 친일성향과 반민족성에 주목해 교육과정에서 친일적 요소 제거와 민족주의적 내용 강화를 하려 했지요. 반면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론자들은 일본식 교육의 핵심을 획일적이고 강압적 교육법에서 찾고 새로운 방식 도입을 통해 일본식 교육의 흔적을 지우려 했습니다.”

계열별 갈등 속에 결국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생활중심, 아동중심, 경험중심 교수법이 미국을 통해 수입됐다. 이 교수는 "당시 교육자들의 선택을 맹목적 혹은 무비판적이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식 이론이라기보다는 승전국들의 합체인 서양의 교육이론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또 당시 교육계에는 한글 간소화 파동, 1차 국가교육과정 탄생, 교육자치제 폐지 운동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 교수는 특히 ‘서적중심에서 생활중심 학교로 바꾸는 커리큘럼 개조운동’을 제1의 길이 지닌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상징성 있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의식있는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육 내용을 우리 민족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혁하기 위해 연구하고 정책제안을 해 의욕적으로 실현까지 한 사례일 겁니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은 제1, 제2, 제3의 길로 나누고, 지나온 길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제4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지준호기자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을 제1, 제2, 제3의 길로 나누고, 지나온 길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제4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지준호 기자

민주교육의 암흑기 제2의 길..."두 개의 길로 나누어지는 교직 단체"

제2의 길은 5.16쿠데타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를 민주교육의 암흑기라고 정의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의 시간동안 획일성과 목표지상주의, 경제우선주의를 내세운 유신독재와 군부독재에 의해 교육이 지배되고 어떤 종류의 비판이나 자율도 허용되지 않은 어두운 시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제1의 길을 지배한 국가권력이 미숙한 초범이라면 제2의 길을 지배한 국가권력은 ‘노련한 상습범’이었습니다. 정치적 이념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변화하면서 교육 주체여야 할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객체화 혹은 타자화하면서 교사의 자율성은 무너지고 지식 전달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교육자치제 폐지로 교육행정권한이 일반 행정가들에게 넘어갔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행정가들의 판단에 따라 지역 교원 대상 학력시험을 실시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무시험 중학입시제, 대학입학 예비고사제, 고교 평준화제 등 모든 학생 선발을 국가권력이 관장하는 체제로 변화됐다. 이 교수는 이러한 제도가 바탕이 된 국가권력의 입시 독점이 제2의 길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1968년에 공포된 국민교육헌장은 제2의 길을 떠받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지만

1980년대 들어서며 철옹성처럼 견고할 것만 같았던 제2의 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이때는 학원 자율화가 시작되고 두발과 교복 자율화, 해직교수 복직과 제적학생 복교, 대학에서의 공권력 철수 등이 시행됐다. 이 교수는 이러한 움직임을 민주교육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했다.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과 1987년 ‘교육의 자율화를 위한 교육선언’이 발표됐다.

이는 한국 교육이 두 갈래의 길로 나누어지게 된 결정적 기제로 작동하게 됐다.

1986년 발표된 교육민주화선언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교사·학생·학부모의 교육권 보장, 교육자치제 실현, 자주적인 교원단체 설립 및 활동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고, 1987년 교육의 자율화를 위한 교육선언에는 ‘우리 민족의 탁월한 저력을 발휘해 민족 화합과 국가 융성이라는 공동 목표를 성취’가 담겼다.

“이 선언으로 인해 교직 단체는 교사·학생·학부모의 교육권을 중시하는 부류와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두 개의 갈림길로 갈라지게 됐지요.”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제3의 길을 5.31 교육 개혁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정했다. 그는 이 기간을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시장경제가 교육을 지배한 시대로 인식하고, 이는 선택, 경쟁, 시장의 개념이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사진=지준호기자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제3의 길을 5.31 교육개혁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정했다. 그는 이 기간을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시장경제가 교육을 지배한 시대로 인식하고 이는 선택, 경쟁, 시장의 개념이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사진=지준호 기자

시장이 교육을 지배한 제3의 길..."신자유주의의 망령 5.31 교육개혁"

제3의 길은 1995년 발표한 5.31 교육개혁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고, 국내총생산과 수출 등에 있어서도 세계 상위권을 달성하는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이뤘다. 또 K-pop이라 불리는 문화는 전 세계로 퍼져 한국에 열광하고 있고 김치와 불고기는 세계인이 선호하는 음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20여년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우리 교육 역시 PISA 최상위권을 달성하며 많은 국가가 부러워하는 높은 학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교육 피로감에 따른 고통 호소가 시작된 시기이도 하지요.”

이 교수가 바라본 제3의 길은 ‘국가 교육경쟁력 상승과 국민 교육 피로감 극대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면서 제3의 길을 이끈 굳건한 신념을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하며 이는 국가기획의 결과물이라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신념으로 인해 교육계에는 선택과 경쟁, 그리고 시장의 개념이 확립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비판을 쏟아냈다.

소득 불평등이 가져오는 삶의 양극화 현상을 자유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이는 비인간적 정신으로 이미 앞서 있는 국가나 시민에게는 유리하고 뒤처진 자들에게는 고통을 선사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원리이다.

결국 교육에 적용되던 여러 가지 평등 지향적 원리와 구조의 변화나 포기를 요구했고, 우리 교육도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결국 국가는 생존을 위한 효율성 증진에 매달렸고 개인들은 끝없는 스펙 쌓기 경쟁에 매달리면서 학교는 붕괴했고 공공성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으로 부실 대학이 양산됐고, 관제적 하향식 개혁 관행을 교사의 자율권을 축소했으며, 교사와 학생의 갈등은 점차 심해져 학교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 조기유학 열풍으로 국내 교육은 엉망이 되었고 1998년 폐지된 일제고사는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결국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다시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제3의 길에서 벗어나 질적으로 전혀 다른 제4의 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과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학교들이 양보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공공재로써의 교육이 되어 교사·학부모·학생의 고통을 완화해야 합니다."

권력, 권위, 시장이 파괴한 교육 복권을 위한 제4의 길..."인간은 온전히 인간답게"

그렇다면 이길상 교수가 말하는 제4의 길은 무엇일까? 질적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르면서 교사 학부모 학생의 고통이 완화하는 길이 될까?

이 교수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1, 제2, 제3의 길 모두 우리가 설계했거나 우리 의지로 선택한 길은 아니었기에

공포에 가까운 교육 피로감을 느꼈다.

이제는 스스로 새로운 길을 설계하고 그 앞의 장애물을 치우면서 함께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제4의 길이다.

그는 지난 3개의 길을 보며 국가권력이 만들어낸 교육 특권, 교육을 지배하려는 국가권력, 교육을 오염시키는 시장주의, 교육을 이용하려는 학부모의 사적 욕망은 버리거나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규정했다. 그중에서도 교육 특권의 폐지가 가장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교육 특권 해소와 함께 교육에 대한 국가권력의 관여 수준이 낮아지면 시장주의는 교육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권력과 시장을 대신하여 교사들이 교육의 중심에 설 것입니다. 교사들의 전문성은 살아나고 인정받아야 비로소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 권위가 지배하는 세상,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을 극복해야 교육이 되살아난다"며 "교육이 살아나야 민주주의와 인도주의적 가치 또한 되살아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한국 교육 제4의 길'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펴내고 기자에게 선물로 준 책 '학교 교육 제4의 길을 찾다' 표지. 사진=지준호기자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책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다' 표지. 사진=지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