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준교육과정 개정 "교과 이기주의 매몰"
"현장교사 의견 반영하는 개정체계 만들어야"

설진성 서울 휘봉초 교사(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원)
설진성 서울 휘봉초 교사(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

국가수준교육과정 집중이수제(이하 집중이수제)를 둘러싸고 교육현장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애초에 집중이수제는 교과군제와 학년군제를 통하여 학습자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학습의 적정화와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등장하였지만,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아 현장에서는 ‘짬짜미 교육과정’, ‘누더기 교육과정’으로 불린다.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현장과 괴리가 큰 교육과정은 많은 문제점을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중등교육에서는 교과군제를 통하여 1년 동안 배울 교과목 수를 제한하려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였고, 초등에서는 학년군제 때문에 오히려 혼선만 야기하고 있지, 애초에 목표하였던 학습자의 학습 부담 경감 효과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지금부터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국가수준교육과정에 대해 부르는 별명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내용체계의 흥정..."짬짜미 교육과정"

교과 이기주의에 갇혀 정도를 벗어나는 교육과정 개정이 나타나고 있다.

한 교과 영역 전문가들 사이에 내용체계를 두고 정치적 흥정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과에서는 정치, 경제, 역사 영역의 삼파전이 고스란히 교육과정 내용체계에 반영되었다. 역사가 초등 5학년에 있다가 6학년으로 올라갔었고, 다시 5학년으로 내려오면서 한 학기 분량으로 축소되었다. 국어과에서는 언어, 문학, 문법 영역 전공자들이 이수 시간을 두고 경쟁하고, 과학과에서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영역 전공자들이 이수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 것의 이 부분을 몇 학년에 넣어주면, 너희 것 어느 부분을 몇 학년에 넣어줄게”

와 같은 ‘짬짜미’가 벌어진다.

이런 결과 때문에 단원 단위의 내용이 승강기 타듯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결국 초·중등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데 매우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쓸모 없어진 학년군제..."누더기 교육과정"

초등 급에서는 집중이수제로서 학년군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말 학년군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한 담임교사가 2년 동안 연임해야 한다. 학년군 별로 제시된 성취기준에 맞게 긴 호흡을 가지고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무실하게도 학급 담임도, 평가도, 교과서 개발도 모두 1년 단위로 운영되고 있어 학년군별 성취기준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2019학년도에 6학년이 가르칠 국정교과서가 느지막이 배포되면서 사회교과서의 경우에는 방대한 참고서 수준의 책이 되었다. 국정교과서 발행과 학년군제가 맞물리며 새롭게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학년에서는 교육과정과 국정교과서가 어긋나는 문제를 겪게 되었다. 더욱이 올해 6학년 사회를 담임하는 교사는 진도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껴가며 보충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새 학년을 맞아 내 교실에서 교육혁신을 꿈꾸는 많은 교사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폭력적 교육과정이다.

초등 급에서 각 교과교육은 그 내용이 최첨단이라기보다는 기본생활습관을 형성하고 기초 기능을 습득하는 것이므로 항상성이 작동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수시 개정 체제를 핑계로 교과별로, 영역별로 각양각색의 소재나 자료가 들어왔다 나간다. 이에 따라 전국 수십만의 초등교사들은 지속 주기가 매우 짧은 소재나 자료를 익혀야 한다.

이것이 과연 국가수준교육과정 단계에서 결정할 일인가?

내용체계와 법정시수를 국가수준교육과정에?..."밴댕이 교육과정"

전국의 많은 교육청에서의 진보교육 물결이 교육계를 변화하고 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은 배움이 곧 삶이 되는 교육을 위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한다. 특히, 교과들을 통합하여 지도하는 프로젝트 형태의 수업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교과 분과주의는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은 내용체계뿐만 아니라 법정시수까지 못 박아 놓고 있어 우리 속담의 '밴댕이 소갈딱지'같다.

따라서 혁신교육을 추구하는 각 교사는 교과통합 수업 활동을 하고도 문서상 이수시수를 맞추기 위해 시수를 역산하여 짜 맞추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여야 한다. 교사들은 너무 많은 교과내용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교육혁신의 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대강화와 분권화의 움직임은 너무나 더디고, 교육과정 학계가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교육의 진정성을 망각한 개탄스러운 행동이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또한 지속할 수 있을까?

교과군제는 왜 기능을 멈췄나?..."현장 소외 개편 논의"

학교 현장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학년군제를 2개 학년씩 묶었으면, 5학년은 2018학년도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했어야 하고, 6학년은 2019학년도에 그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 애초에 초등 급에서 학년군제를 도입한 의의도 찾을 수 없다. 선택교과가 없고 국정교과서가 발행되는 초등 급 상황에서 학년군제를 적용하여 학습량을 낮추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학교의 사정도 초등의 사정과 비슷하다.

애초에 교육부가 바라던 교과군제를 통한 교과 수 감축은 제 기능을 멈춘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과 유리된 교육과정 개편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며,

현장 교사들은 기능이 멈춘 학년군제가 야기한 문제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교과중심주의와 분과주의 극복해야

교과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는 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짬짜미 교육과정’과 ‘누더기 교육과정’, ‘밴댕이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있는 주된 원인이다. 교육과정 개정 패권을 갖는 주체들이 편협한 분과주의를 극복한다면 혁신교육을 뒷받침할 가능성이 열린다. 국어에서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 단계의 1학년 학생이 수학 교과서의 문장을 줄줄 읽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적어도 막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변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각 교과 교육과정 전문가들 손에 밥그릇 싸움을 맡기기 때문이다.

각 교과의 입장에서 주당 한 시간이라는 것은 처절한 투쟁을 부른다.

초·중등학생의 입장이나 수업을 실현하는 교사의 입장이 아니라 많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교과이기주의를 초월한다면 1/3 수준으로 성취기준과 내용체계, 이수시수를 줄이고 통합교과로 배정하여 교육혁신을 추동하는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다.

'엽관제(躐官制)'로 물든 교육계

엽관제는 정권을 잡은 선출직이 자신의 사람들로 정부를 채우는 것을 말한다. 물론 교육부의 보도 자료를 보면 현재 교육과정을 개편할 때는 연구진의 40%를 현직 교원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그러나 연구진에 참가하는 교원들이 대부분 지도교수 밑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 중인 교사연구자이거나 관료의 보고체제를 통한 인선이라는 점에서 실제로는 90% 이상 교과교육 교수가 패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과정각론조정위원회(이하 각론위원회)’에도 어떤 교원들이 참여하는지 의문이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의 연구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구에 직접 민주주의 기제를 적용하면 된다. 더 구체적으로 대안을 세워보자면 아래와 같다.

국가수준교육과정 연구진은 교원단체 추천으로 50%를 구성하자

실천교육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등조합, 교원단체총연합회 등 1000명 이상의 실질적 교원단체에서 추천하는 교사들을 연구진에 참여시켜야 한다. 이러한 단체들은 지속해서 교육과정의 문제를 지적해 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노력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단체가 동수로 추천하여 연구진의 50%를 구성하면 ‘짬짜미’, ‘누더기’, ‘밴댕이’라는 오명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각론위원회는 교원단체 추천으로 50%를 구성하자

연구진과 마찬가지로 교원단체의 추천을 받은 현장교사는 각 교과와 영역들을 초월하여 의사결정할 가능성이 커진다. 일정 요건을 갖춘 교원단체에서 동수의 추천을 받아 50%를 구성하여 각론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 각론위원회 내부에서 현장교사는 교과 이기주의를 초월하여 중립적인 위치에서 각 교과의 내용체제와 이수시수를 결정할 수 있다.

각 교과의 내용체계와 이수시수를 1/3로 줄이고 통합교과를 신설하자

학교 현장의 혁신교육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 혁신교육의 통합적 성격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하다. 각 교과의 형식논리를 내세우며 방어하던 내용체계와 이수시수를 변혁적으로 줄여서 혁신교육을 교사들이 마음 놓고 실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글=설진성 서울 휘봉초등학교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