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교재 외우는 교실, 영어 아닌 한글암기 논란 사라질까

며칠 전 유투브에 한국의 수능영어시험 문제를 풀지 못해 고전하는 영국 명문대 학생의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이 학생은 “이해를 못 하겠다. 제가 쓰는 영어가 아닌 것 같다”며 난감해 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영어단어와 표현을 출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이 학생은 “이해를 못 하겠다. 제가 쓰는 영어가 아닌 것 같다.”며 난감해 했다. 사진=JTBC 방송화면 갈무리

그런데 우리 수험생들은 이런 영어문제를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 지난해 수능영어 만점자는 응시생의 3.37%(1만9654명)였기 때문이다. 영어공부를 잘한 결과일까? 아니다. ‘수능EBS연계정책’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10년부터 시행된 이 정책의 시작은 '사(私)교육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수능문제 70%를 EBS 지문에서 출제하면 학원에 가지 않으리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하다’는 입시정책에 걸맞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EBS교재 지문을 통째로 암기하는 현상이었다. 더 나아가 지문의 한글번역본을 달달 외우는 어이없는 일도 생겨났다. 영어 공부가 한글암기 공부로 탈바꿈한 것이다.

작년의 경우, 수능영어 읽기 28문제 가운데 19개 문항이 EBS 교재에 나온 지문 그대로 출제됐다. 지문의 주제·주장을 찾으라거나 지문과 일치하는 세부 내용을 찾으라고 질문해, EBS 교재의 한글 해석본만 외워도 풀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평가원은 올해 수능영어 출제에 대해 “EBS 지문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BS 교재와의 연계율은 73.3%로 전 영역 중에서 가장 높았지만, 수능에서 EBS 교재 지문을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조금씩 변형한 것이다. EBS 지문이 그대로 출제될 것으로 예상했던 수험생들은 변형된 지문에 당황하면서 체감 난도(難度)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입시사이트에는 “EBS 문제집을 8회 정독했는데 체감 연계율은 거의 0”라든가 “차라리 EBS 안 보고 그냥 영어 공부할 걸 후회된다”는 반응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교협 상담교사단에서도 “지문을 그대로 갖다 쓴 문제는 읽기 28문항 중 9문제로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면서 “EBS 문제집만 달달 외운 학생들의 경우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이 끝나면, ‘어려웠네, 쉬웠네’ 말들이 많다. 사실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는 이야기는  언론이 만들어낸 말장난일 뿐이다. ‘쉬운’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그 기준도 모호하다. 어떤 수험생에는 쉽게, 어떤 수험생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문제를 꼬고 비틀어 ‘너 이건 몰랐지’하는 식으로 장난해서는 안 된다.

이번 수능 영어를 두고도 “쉽게 낸다더니…”라고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적어도 EBS 지문을 그대로 출제하지 않은 것은 잘 한 것 같다. 내년엔 문법과 독해 위주, 아니 EBS 교재만 달달 외우는 고교 교실의 모순된 모습은 지금보다 줄어들 테니까.... . 어쨌든, 수능 ‘EBS 교재 연계율’ 점진적 축소를 검토해 온 교육부에게, 이번 평가원의 지문 변형 출제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