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제도 따온 국가교육위 "우리 교육과 비교 대상 아냐"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교육과 정치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
국가 관여 최소화 방안 찾아야...초당·초정권적 위원회 되길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 저자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 저자

"제도, 환경 다른 핀란드 교육을 왜 우리 교육과 비교하나"

[에듀인뉴스] 교육 문제를 논하며 외국 사례를 운운하거나 외국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논의되는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제도는 원산지가 외국이기에 외국 이야기로 논의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과 비교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핀란드다. PISA 시험에서 유럽 국가 중에 우리와 경쟁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 이외에 핀란드 교육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핀란드와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나 다르다. 교육 제도가 다르고 교육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민의 태도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던 핀란드 교육계 인사는 핀란드 교육은 “교사와 교장, 학교와 지방정부, 교육제도에 대한 신뢰 등이 있기에 잘 운영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수준에서 똑같은 가치를 주는 것이 핀란드 교육제도의 핵심”이라며, “모든 학교가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설치하려는 국가교육위원회는 바로 핀란드식이다. 핀란드의 The Finish National Agency for Education(EDUFI)이 그것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지방정부와 학교, 교사 그리고 교육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설치될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된다. 교육 담당자와 교육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는 나라 핀란드의 EDUFI는 대통령 산하이거나 독립된 기관이 아니고 교육문화부(Ministry of Education and Culture) 산하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데 충분한 전문성과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

교육문화부 산하이기에 이런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위원회에서 관장하는 국가교육의 장기 방향이나 학제 그리고 국가교육과정 문제는 교육문화부에서 관장하는 보통교육이나 고등교육 그리고 학술이나 문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국가기관이 다른 기관을 권위로 지배하지 않는 모습이다. 기관의 권위는 담당하는 일에 관한 전문성에서 나오지 결코 기관의 법적 지위나 기관장의 직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핀란드는 EDUFI 위원에 고등학생 대표 2명과 기업대표 1명을 포함하는 결정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갈등을 겪지 않았다. 교육에 대한 신뢰가 없는 나라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다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구성안과 출범 일정이 발표되자마자 비판의 목소리가 난무한다.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많이 들린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정치적 중립성' 가질 수 있나

첫 번째 비판은 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긍정적 여론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구성하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원회가 탄생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나 교육감을 뽑듯이 투표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뽑는다는 것을 가정해 보자.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물들로 국가교육위원회가 구성될까. 최근 수차례의 교육감 선거가 보여주듯이 국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국가교육위원회 구성도 현재의 풍토라면 정치화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치와 무관한 듯 보이는 교사나 학부모, 학생들을 다수 참여시키면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까? 세상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은 갓난 아이를 빼고는 없을 것이기에 이 또한 정답은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 언론인, 교육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정치적 중립성’이지만, 그들이 정작 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교육과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는 핀란드는 기본적으로 교육과 정치 사이에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정치가 교육을 이용하려는 야욕으로 시민들이 피곤했던 스웨덴 식민 시절이나 소비에트 예속 시절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교육은 정치적 갈등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치권이 결단을 내리고 실천한 결과이다.

우리는 그런 반성의 역사를 가져보지 못한 채 70년의 현대사를 거쳐 왔고, 이런 반성 없는 역사로 인해 여전히 교육은 정치적 전리품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는 확증과 무관하게 국민들의 심리 상태가 늘 그렇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최근에 벌어졌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이 문제에 관한 국민들의 심리를 악화했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강조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본래 국가 의무이지 교사의 의무는 아니다. 국가가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정신이지 교사들이 정치적으로 침묵하라는 요구를 담은 것은 아니다.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의식을 가르칠 수 없었던 과거로부터, 우리 국민 모두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교사들이 주도하는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건전한 민주시민을 양성하지 못하는 한 우리 교육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민주시민의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논쟁이나 사회적 이슈를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핵심이 되어야 마땅하다. 교사가 특정한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그런 논쟁을 주도하는 것이 금지되어서는 교육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며, 민주시민교육은 어렵다.

민주시민교육을 포기한 교육에서 남는 것은 학생들을 국·영·수 점수에 따라 줄 세우는 일밖에 없다. ‘국·영·수 점수’보다 ‘민주시민의 자질’이 우대받는 교육이 되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은 언제나 정치적 논쟁의 대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정치적 중립성, 국가 의지에 달려

국가권력이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욕구를 내려놓는 것, 교육자들에게 강요되어온 정치적 침묵의 문화를 해소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교육에 대한 관여가 말 그대로 최소화해야 한다. 관여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고, 관여하다 보면 이용한다는 오해를 사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구성은 어떻게 하여도 ‘정치적’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 정부의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의 건전성 수준이다. 만일 현 정부가 교육을 정치에서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대통령이나 여당이 임명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을 온전한 교육전문가 중에서 선정하여야 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활동을 조금 했다고 교육전문가는 아니다. 교육부 고위공무원을 잠시 했다고 전문가는 아니다. 낙하산을 타고 교육관련 기관의 장을 해봤다고 교육전문가는 결코 아니다. 대학교수 몇 년을 했다고, 교사생활 십수 년 했다고 무조건 교육전문가가 될 수도 없다. 하물며 학부모로 아이 좀 키워봤다고 교육전문가는 아니다.

교육에 관한 전문적 식견과 경험이 명료한 사람들이 전문가이며 이 땅에는 그런 인물들이 충분히 넘친다. 누가 봐도 명백한 교육전문가들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그만그만한 주변 지인 중에서 맘에 드는 인물만을 선발하는 것이 바로 교육을 망치는 행위이며 교육을 정치화하는 오래된 적폐인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구성의 정치적 중립성은 제도의 문제나 법의 문제가 아니고 현 정부의 의지 문제인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 기관과의 업무 조정은 어떻게?

위원회의 구성만큼 중요한 것은 위원회 신설에 따른 국가 기구 사이의 업무조정 문제이다. 유·초·중등 교육 관련 업무의 시도 교육청 이관 문제는 교육자치제의 완성을 위해 늦은 감은 있으나 당연해 보이는 방안이다.

고등교육 및 평생·직업교육 업무에 대한 교육부의 역할 강화에 대해서도 논쟁이 많지는 않다. 문제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관여 수준과 방식에 대한 재조정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업무의 고등교육 부문으로의 집중이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관여 확대로 이어져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학평가 등을 통한 관여의 수준은 지금도 넘친다. 대학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확대하는 것이 헌법정신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교육과정 연구, 개발, 고시 업무를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담당하게 하는 문제이다. 이것 또한 핀란드의 EDUFI의 사례를 따른 듯이 보인다. 국가의 장기 교육구상이 추상적 문서라면 일정한 주기로 개편되는 국가교육과정은 이 추상적 문서를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학교교육에서 어떤 내용을 가르치느냐 하는 것보다 더 정치적인 질문은 없다. 교육 내용이 교육방법과 평가 방향을 결정한다는 차원에서도 교육의 모든 영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과정이다.

최근 수년간 혼란을 일으켰던 국가교육과정 수시개편 체제를 지양하고 10년 내외의 일정한 주기별 개편체제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이를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전담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국가교육과정의 전문성에 비추어 이에 관한 업무 추진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파트너 기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학제에 관한 연구는 한국교육개발원과의 협업이 효율적일 것이다. 다른 교육관련 국가 기관들의 과감한 역할 재조정도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대한 제언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와 관련하여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교육위원회 설치가 교육에 대한 국가의 관여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우리 국민들은 국회의원 정수의 확대만큼이나 교육부의 권한 확대를 반대하며 두려워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21세기에 접어들며 시대의 변화가 빠를 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를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것을 교육 부문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능력이다.

셋째,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한민국 교육의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위원회 자체의 민주적 운영이 필요하다. 위원회에 장관급 1명, 차관급 2명 등의 구상은 이미 이 위원회의 관료적 운영을 예상하게 만든다.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에 관한 전문가들의 참여 조직으로서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통해 국가교육의 장기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측면에서 평등한 위원 19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매년 호선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넷째, 대학입시제도는 국가교육위원회 의제에서 제외할 것을 제안한다. 학벌사회와 이별하지 않는 한 대학입시제도는 어떻게 개편해도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현행 국가교육회의의 짧은 역사가 충분히 보여주었다. 더 이상의 동일 경험은 사회적 낭비일 뿐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원만하게 출범함으로써 유은혜 부총리의 뜻대로 ‘초당파적 합의에 의한 정책결정을 통해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일관된 교육정책’이 만들어지고, 학생, 부모, 교사들이 모두 편안한 꿈같은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