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자율화?..."현장 책임 전가로 인한 부담만 증가"
교육과정의 주인은 교사...교사 중심 교육과정 설계 필요

[에듀인뉴스-실천교육교사모임 공동기획: 흔들리는 교육, 그리고 교사]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싶고, 학생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만,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에듀인뉴스>는 신학기를 맞아 교육이 흔들리는 원인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따른 각종 법령의 등장, 교사를 패싱하는 교육정책 등 현안을 집중 조명하고 교사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10부작 신학기 기획을 마련했다.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 내지. 사진=민천홍
초등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 내지. 사진제공=민천홍 교사

교사 소외시킨 교육과정이 부른 참사...'초등 6학년 사회' 중복·누락 불러

2019년은 2015년에 고시된 개정교육과정이 2017년 1, 2학년군, 2018년 3, 4학년군에 이어 5, 6학년군에 적용되는 해이다. 그런데 올해 6학년 학생들이 사용할 사회 교과에서 내용의 대량 중복과 누락이 발생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5학년 2학기와 6학년 1학기, 총 2학기에 걸쳐 배우도록 편성되어 있던 한국사 영역의 내용이 이번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5학년 2학기에 배우도록 편성되면서 현 6학년 학생들은 한국사의 나머지 부분을 배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새 교과서에는 이 부분이 누락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이에 대한 대처로 새로 개정된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 한국사를 한 단원 첨부한 임시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했지만 2월 말이 되어서야 이 교과서를 받은 교육 현장에서는 학기 초 시수 운영 계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사회과의 한국사 영역은 2009 개정교육과정이 5, 6학년에 처음 적용되던 시기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었기에 이번 사태에 현장교사들은 더욱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교사들을 비롯한 학교 현장이 개정교육과정 적용 관련 의사결정에 소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사실 과거에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개발에 있어서 교사는 단순히 교육과정을 사용하여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기대받았기에 교사가 교육과정에 개입할 틈이 매우 적었다.

교육과정을 바람직한 목적 혹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을 포함하는 활동계획 또는 문서로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과정은 학습자가 밟아야 할 단계로 계열화되어 제시되며, 처음에서 끝까지 순차적으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기존의 교과서에 의한 진도 나가기와 수업 후 평가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러한 ‘짜인 활동계획으로서의 교육과정’이 교실 현장까지 획일적으로 세밀하게 반영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육과정을 주어진 절차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는 관점이 갖는 한계를 넘고자 해석의 방향을 학습자에게 두면서 교육과정의 의미가 ‘학습자가 교사의 지도하에 가지게 되는 모든 경험’, 더 나아가 ‘학습자가 겪는 체험 모두’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개발 방향이 1996년 제6차 교육과정의 시작과 함께 국가 및 지역, 학교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 분담 체제가 마련되어 분권화의 시작을 알리고 1997년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교육과정의 자율화 및 다양화, 전문화, 개방화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2015 개정교육과정까지 꾸준히 시도교육청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과 학교 단위에서의 교육과정 수립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렇게 학교 차원의 교육과정, 더 나아가 교사 차원의 교육과정이 중요해지는 이유 역시 학습자의 학습 경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학교’와 ‘교사’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자율화의 이면

하지만 이러한 권한 이양을 통한 학교 교육과정 강화가 기대만큼 긍정적 효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변화의 방향 현장으로 떠넘기기

교육과정 편성권의 학교 현장으로 이양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상 학교 현장에서는 변화를 끌어내야 할 동력들이 여러 이해 집단 사이의 갈등 속에서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좌초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핵심적인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추진된 자율권 이양이 초래한 결과로 ‘자율화’ 과정이 여러 쟁점의 해결을 각각 학교 현장에 떠넘기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에 대한 기본 관점 차이로 운영 방향에 대한 합의가 어려워 갈등이 지속하거나 본질적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오히려 입시 중심 운영을 통해 과거로 회귀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핀란드가 2014년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서 지역 수준의 교육과정이 갖는 의미와 역량 중심 발달 교육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을 명확히 하면서도 교과 내용과 역량의 조합을 통한 수업 목표 진술과 구성과 관련한 교사들의 재량권을 교육과정 문서에 정확히 안내하며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에 진정한 자율권을 부여한 것과는 대조되는 사례다.

▲자율화된 것과 아닌 것 찾기

학교 차원의 교육과정 운영에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취지에 걸맞지 않은 규제들이 변화를 저해하고 있다. 한 예로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교과 당 20%의 시수 증감을 허용한다고 하였지만 이와 관련해 적용되는 교과와 적용되지 않는 교과가 있는 등 제한을 두었고, 이를 NEIS 시간표에 오차가 없도록 배치하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시수 운영에 제한을 두어 교사는 시수 운영 자율성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게 했다.

초등의 경우 과정중심평가를 통한 교사의 평가 자율화를 지향하면서도 NEIS 활용은 중등 관점의 보수적 접근 방식을 유지했고 생활기록부 역시 학생의 성장과 발달 기록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안내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기재 요령들로 제약을 가하고 있다.

국가 수준에서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질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지만, 제한 기준이 자의적이거나 불분명한 것들이 많고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적극적 요인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아 자율화된 것과 자율화되지 않은 것들 사이의 차이를 찾는 과정이 ‘또 하나의 업무’가 되고 있다.

▲이슈가 되는 교육에 대한 시간 할당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자율권 침해 상황은 ‘OO교육 시수 보고’이다.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그 문제의 원인 중 일부를 학교 교육에 두면서 당장 관련 수업을 하고 시수를 보고하라는 방식의 공문이 학교에 발송된다.

예를 들어, 올바른 인성교육은 교육의 기본 목표이며 도덕 교과가 존재함에도 별도 '인성 수업' 시간을 보고해야 한다. 또 교과를 통해 평화와 협력을 가르칠 수 있음에도 또 다른 '학교폭력 예방활동'을 하고 이를 보고해야 하는 현실들이 대표적이다.

교과를 아우를 수 있는 범교과 주제와 관련된 관련 교육활동이 단순히 ‘OO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에 녹아들이지 못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단순 시수 보고가 요구되면서 교육과정 운영 자율성은 침해받고 교육과정 운영은 분절된다.

국가는 거들 뿐..."교사가 교육과정 개발자 돼야"

국가가 아무리 좋은 내용을 문서로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학습자에게 내면화되는 가능성의 장은 학교라는 공간과 교사라는 존재의 매개를 통해 열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의 가치를 탐구하고 절차를 구상하는 교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필요치 않다거나 모든 교사가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습자의 교육 경험을 의미 있는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구현되는 학교·교사 교육과정의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지금 당장 모든 교사가 완벽한 교사 교육과정의 개발자가 되어 교사별로 특색교육을 하거나 개별 진도표를 만들고 서로 다르게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제시한 교육내용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학생의 발달 정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장 의미 있게 학습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조직하는 학년과 학교 차원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과정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교육과 관련 학습자의 참여와 자기효능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교육과정에 대한 학교 교육과정의 실질적인 변화는 구성원들의 자발성이 중요하고 교육활동 본질에 대한 공유된 인식과 그것에서 나오는 내적 동기에 기반해야 한다.

지금도 여러 제약 속에서도 교육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과 이를 통한 학생의 진정한 학습과 발달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많이 있다. 이러한 교사를 늘리고 교사 집단이 공적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진 교육과정 운영의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자발적 노력만큼 교육청과 교육부의 지원이 중요하다. 세밀한 체크리스트를 통한 점검, 단순 결과물 보고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 교육과정의 방향을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러한 합의된 방향에 의거해 교사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안내하는 지원과정이 필요하다.

민천홍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강원도교육연구원 파견 교사
민천홍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강원도교육연구원 파견 교사

■ 연재 예정 순서=1. 교육법으로 알아보는 마일리지승진제/ 2. 극한직업: '학폭' 담당 교사의 삶/ 3. 현장교사 없는 교육과정: 이대로 표류해야하나/ 4.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 5.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정치 배제를 말하는가/ 6. 상상을 더하는 학교 공동체 & 학교 교육과정/ 7. 교사의 행정업무가 상담에 미치는 영향/ 8.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9. 누구를 위한 특별교부금인가/ 10. 흔들리는 입시-어디로 가야 하나/ 11.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