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에 대한 잘못된 정의..."잘못된 평가 결과 가져와"
왜 교과 지식만 평가하나..."배우는 모든 것 평가해야"

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기초학력평가..."무엇을 평가하는 것인가"

[에듀인뉴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학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학력’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교육’의 내용은 무엇일까. 말하기·듣기, 읽기와 쓰기, 셈하기. 이것이 교육의 내용인가.

그렇지 않다. 교육 내용은 지필고사 점수로 환산되는 지식만이 아니다. 지필고사 점수는 ‘기초학력’에서 극히 지엽적인 부분이다.

기초학력에서 더 큰 영역이 바로 ‘덕성’과 ‘체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 부분을 놓치고 있기에 성적 지상주의와 살인적 경쟁교육체제가 공고해지는 법이다. 아는가. 모르는가. 그래서 체육, 음악, 미술 등의 교과목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어, 사회, 역사 등의 교과에서 화법과 작문, 도덕, 윤리, 철학 등의 교과목을 통해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기, 남을 배려하기, 여러 구성원과 협력하기 등등을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학력’이나 ‘기초학력’의 개념도 읽기, 쓰기, 셈하기 등에 국한하는 ‘기초학력평가’ 개념은 대단히 왜곡되었으며 잘못된 개념이다.

비만이나 체중 미달 등이 아닌 건강한 신체를 기르고 있는가, 기초체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타인과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나’ 외의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는가, ‘친구’들과 더불어 협력하는 자세가 되어 있는가, 예술적, 미적 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등등이 기초학력평가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평가요소를 빠뜨리고 단순히 지식 차원의 평가가 과연 타당한 ‘기초학력평가’인가.

타당성과 신뢰성이 현저히 부족한 ‘기초학력평가’의 개념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어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 지식이 ‘기초학력평가’의 대상이란 말인가. 국가가 나서서 이런 식의 ‘기초학력평가’를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일제식’ 기초학력평가를 시도함으로써 교육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을 지속하는 한 ‘기초학력’은 교과 지식에만 머물게 된다.

학생, 학부모, 교사는 ‘지식’만을 강조하는 정책 속에서 정책이 요구하는 현실적 억압 속에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정신적 문제들은 돌볼 겨를조차 없는 질곡이 학교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고통스럽다고 절규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해결되지 않는 심리적 불안함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길러주어야 하며,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고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기초학력’에 대한 개념조차 오도된 상황에서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 지필고사 점수가 하락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의 교육과 학력에 대한 관점이 어느 수준에 봉착해 있는 것인지 절망스럽다.

'지식'만 평가하는 기초학력평가, 무슨 의미있나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과거에는 ‘기초학력’ 개념을 어떻게 정립했을까. 신언서판(身言書判). 건강한 신체, 의사소통능력, 글쓰기 능력,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말했다. 체·덕·지(體德智)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재 정부와 교육부가 추진하는 ‘기초학력평가’에서는 ‘체력’, ‘소통능력’, ‘판단력’ 등의 핵심 평가내용을 측정하고 있는가. ‘체덕지’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체(體)’를 평가하기는커녕 ‘지혜로움(智)’도 평가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식(知)’만을 기초학력의 범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가 초래할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전국의 혁신학교 등에서 다양한 수업 활동을 통해 형성되는 대인관계역량,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에 눈을 뜨고 스스로 표현하며 주장할 수 있는 표현역량, 자신의 기본권과 권리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역량, 모둠과 협력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 각종 동아리 활동과 스포츠 활동 등등을 통해 형성되고 있는 이 무수한 역량들을 도대체 평가에 반영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제대로 된 ‘기초학력평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렇게 편협하고 지엽적인 평가요소를 통해 측정하는 ‘기초학력평가’를 우리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출발선부터 잘못된 ‘기초학력’의 개념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평가를 ‘일제식’ 평가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부는 해야 할 일이 명확하다.

첫째, ‘기초학력평가’를 하려면 ‘학력’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 도대체 ‘기초학력’의 개념이 무엇인가.

둘째, ‘기초학력평가’는 객관성과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평가방식이 사용되어야 한다. 체력과 건강함,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교사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 등을 평가에 수용하지 못하는 평가가 과연 제대로 된 평가라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셋째, ‘기초학력평가’의 개념과 평가요소를 제대로 수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제고사식’ 기초학력평가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