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 반대가 항상 참은 아냐...'내로남불' 이제 그만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들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아이들의 어휘력은 나날이 빈곤해져 가건만 그런 빈곤한 어휘에도 불구하고 독서는 늘 뒷전이다. 독서토론에, 독서를 권장하는 행사가 풍년이어도 몇몇 책 읽는 아이들은 열심히 참여하고 또 독서를 하지만 대다수 아이는 스마트폰과 웹툰 등에 빠져 독서는 남의 일이기 일쑤다.

게다가 ‘읽기’에 기반을 두지 않은 토론이 열병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읽기 없이 찬반 논쟁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분법적 사고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중인 것이다.

A와 B가 있다.

A가 피해를 보았다면 그건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고, 그 잘못은 B가 없어져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B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되어 있지 않아도 A와 B가 있다는 전제에서 ‘B가 저지른 잘못’이라는 숨은 전제(?)를 밀어붙인다. 성급한 일반화이고 오류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곳곳에서 ‘자동적 사고’로 나타난다.

이번엔 A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뜸 그럼 B를 좋아한다고 결론짓는다. A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가 어째서 B를 사랑해야 하는 의무로 뒤바뀌어야 하나. 아이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답을 쏟아낸다. 이것 아니면 저것. 이게 옳으면 저것은 그른 것.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길든 아이들이 공격자가 되고 토론왕이 되고 싸움닭이 되어 간다.

토론대회에선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승자는 숙고와 다양한 폭넓은 사고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항상 옳다는 듯 아집이 강한 사람이 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되곤 했다.

통합사회 교과에서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배우며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을 논하고 다양한 지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학생들에게 우리나라가 청렴한 사회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사회는 썩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부패한 사회라는 것이다. 부패사회고 재벌이 다 해 먹고 교육이고 경찰이고 어디든 다 썩었다고 거침없이 뱉었다. 자신들도 이제 사회가 어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안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들이었다.

이어서 질문을 했다.

“그래? 그럼 너희들 중에서 학교 선생님 중에 촌지를 갖다 바치고 수행평가 점수 올려 받은 사람 손들어볼래? 어머니가 선생님 찾아온 덕분에 그다음 성적이 올라가고 시험문제가 뭐 나올지 시험지도 막 미리 받아보고 그런 사람 손?”

...

“부모님들이 운전하시다가 교통위반으로 벌금을 내게 생겼는데, 경찰에게 뇌물을 건네신 덕분에 7만원짜리 범칙금을 1만원으로 깎을 수 있었다는 무용담 들어본 사람 손?”

아이들이 이번에는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은 결단코 그런 뇌물 따위나 주는 더러운 인간이 아님을 힘주어 강조했다. 우리가 얼마나 청렴한데! 열심히 이야기하더니 잠시 후 잠잠해졌다.

“너희들 중 누구도 부정을 저지른 적 없으며, 너희 부모님들도 다들 법을 잘 지키고 부정한 방법을 써보려 하지 않는 분들이신데. 대체 그럼 누가 썩었고 부패했단 말이냐? 나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지만 남들은 다 썩었고 악마란 말이냐?

말이 없이 조용해졌다.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선생님, TV 보세요. 정치치인들 보세요. 다 썩었어요. 매일 뉴스에 나오는데요?

물론 이 땅의 국민들이 다 정직하고 모두 청렴하다고야 하지 못하지만 일각의 정치인들을 제외한다면 많은 사람이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도 우린 소수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보면서 확대해석하고 또 역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말을 이어갔다.

“얘들아, 개가 사람을 물으면 뉴스가 아니야. 그러나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겠지. 방송이나 신문에 나왔다는 건 그것이 일반화된 일상은 아니란 방증인 거지. 그런데 그것이 우리사회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을 것 같구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건강한 사회이며 선진사회인지도 일러주어야 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훌륭한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나라를 스스로 폄훼하고 더럽고 추한 나라로 여기는 일그러지고 구겨진 자의식은 쫙쫙 펴 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급함과 편협함은 한 번 더 짚어주어야 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여기 사과와 배가 있다. 난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 그럼 난 반드시 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배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그냥 배에 대해서는 싫고 좋고 의사가 아예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으로 사과를 싫어한다는 의미 역시 배를 좋아한다는 의미와는 전혀 무관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특히 찬반 토론에 익숙한 아이들일수록 빠르게 찬반구도로 의견을 구분하고, 어느 쪽을 지지하며 어떤 근거로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할지 논거(?)를 마련하는 자동적 사고에 길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러한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간혹 무섭기도 했다.

자신들의 견해가 다 옳을 수 있는가. 내가 가진 논거가 항상 참인가. 그 판단은 누가 하는가. 참의 기준은 적정한가. 반대의견이라 해서 항상 그른가. 생각 또 생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어떤 명제는 참이어도 역이 참이 되지는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수학 기호까지 써가며 설명을 했지만 복잡한 이야기를 다 떠나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자신의 견해와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하지 말 것,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는 이 나라에서 자기 자신을 믿고 또 나와 같은 타인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좀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야기를 해주고 마무리를 지었다.

특히 청렴한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란 대중들이 ‘느끼는’ 국가 청렴도에 대한 지수인데,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인색하고 냉소적이면 점수가 낮게 나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지표임을 추가로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그렇다고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소의 OECD의 부패수준과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과의 관계 연구 자료를 살펴봤더니, 부패지수가 1%(부패지수 0.1) 오르면 1인당 명목 GDP는 약 0.029% 상승하는 추세를 발견했단다. 문제는 우리가 OECD 수준만큼 청렴해지면 연평균 성장률은 명목기준으로 약 0.65% 상승시킬 수 있어 4% 내외의 잠재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패는 국가의 품격과 대외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경제까지 갉아먹는 것이니 부패를 청산하는 것이 중요하고, 늘 우리가 부패하다는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CPI만 올라도 경제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는 사실!

훌륭한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형편없으며, 나는 깨끗한데 그 원인이 다 더러운 너 때문이라는 ‘내로남불’은 이제 우리 세대에서 그만두어야 할 숙제이다.

지금 정치권이 썩고 어른들이 다 부패하다면 앞으로 맑고 청정한 새 물 같은 너희들이 이 세상에 점점 더 많아져서 혼탁한 물을 희석해 결국 깨끗하게 정화하라는 당부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까지 걷어낸 시민이 되자는 부탁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