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은 선진화, 평가는 구시대로 회귀..."이해 안 돼"
교사와 학생 바꾼다?..."교육행정과 정책부터 쇄신하라"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듯 교육분야도 근대교육에서만큼은 미국의 것들을 대부분 원형화해 가져왔다. 교육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 및 평가방법, 각종 시설과 기자재, 심지어 지우개 하나까지도. 그러나 편리한대로 취식하다보니 순서와 아귀가 맞지 않은 것도 많다. 21세기 4차산업 시대, 온라인 디지털 리터러시의 세상이 왔다. 구글로 모든게 가능해진 시대, 짧지만 가볍게 미국 연수에서 보고 듣고 공부한 대로 그 차이와 생각들을 11회에 걸쳐 옮겨보고자 한다.

출처: IES -NCES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
출처: IES -NCES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

[에듀인뉴스] 요즘 일제고사로 인해 논란이 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는 또다시 같은 일제고사 전수문제로 시끄러운 지경에 있다. 10년 전 문제의 2009년도 당시로 잠깐 돌아가 보자.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해 학교 서열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했다. 교과부는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매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전수 평가해 이를 지역별, 심지어 학교별로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브리핑했다.

그 예로 미국은 초중등교육개혁법(NCLB.No Child Left Behind Act)에 근거해 매년 한 차례씩 주(州) 정부가 3∼8학년 전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등 3과목을 평가하고, 평가결과가 학교와 지역 교육구, 주별로 공개된다고 했다. 심지어 모든 학교 모든 학생이, 같은 문제로 매년 전수 평가하고 그 결과를 학교별로, 학부모에게 개별 통지하는 것처럼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 국가교육향상평가(NAEP.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는 4, 8, 12학년의 0.4% 정도 뽑아 시행하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 수준의 추이를 분석한다.

또 개인 인식가능 정보조항에 따라 성취도 평가에 의한 학생 성적과 학교별 성적은 대외비(Confidential)로 규정해 놓은 데 이어 금지(Prohibition)규정까지 명문화하고 있어 만약 이를 공개 시 벌금 혹은 감옥형까지 처할 수 있다.

이뿐인가? 문제가 되는 전수냐 표집이냐에 대해서도 미국 NAEP는 주별 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학생 개개인 모두에게 자발적(Voluntary) 시험이 되도록 규정해 표집 학생의 부모에게는 어떤 이유로든 자녀가 시험을 면제(Exempted)받거나 끝까지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꼭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취도 평가결과를 이용해 교사나 개별 학생의 순위를 매긴 후 이 자료를 비교 평가하는 것을 금지활동(Prohibited Activities) 조항에 포함해 이에 대해 보상하거나 제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학생, 교사가 아니라 바로 평가방식

미국의 성취도평가는 우리처럼 주요 과목에 한정하지 않고 거의 전 과목을 대상으로 개별 학생당 한 과목씩 표집 평가한다. 그리고 모든 시험은 크롬북(Chromebook)이나 태블릿(Tablet)으로 접근해 화면을 직접 터치하며 문제를 푸는 디지털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종이와 펜을 들고 시험을 보는 우리와 비교하면 시절의 아쉬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아래 영상 참조

출처=https://youtu.be/-RJ4k0I6h2c

다음은 4, 8, 12학년 학생들이 컴퓨터로 푸는 미국성취도평가 문제들이다.

4학년 학생들은 온라인 자(Ruler)를 움직여 펜의 길이를 측정한다.
4학년 학생들은 온라인 자(Ruler)를 움직여 펜의 길이를 측정한다.
8학년 학생들은 쓰레기 재활용 처리문제를 스크린에 나타난 순서도에 따라 응답한다.
8학년 학생들은 쓰레기 재활용 처리문제를 스크린에 나타난 순서도에 따라 응답한다.
12학년 학생들은 온라인 슬라이드로 움직이는 핵반응의 변화를 지켜보며 정답을 고른다.
12학년 학생들은 온라인 슬라이드로 움직이는 핵반응의 변화를 지켜보며 정답을 고른다.

이 모두 2014년도 미국성취도평가부터 실시된 디지털 리터러시 기반 온라인 디지털 평가의 면면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표집된 학생 한 명이 국·영·수 모두 치르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은 학생 한 명이 한 과목에 표집되어 약 90~120분 정도 시험을 치르고 디지털 기기는 모두 NAEP 관계자가 직접 학교 현장까지 가져가 시험을 치르도록 배려한다. 디지털 기기가 제대로 비치되지 않은 학교를 위한 배려다.

미국식 수능(SAT, ACT)은 또 어떤가?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대학입학자격시험)는 지난 2016년부터 그 방식과 형식을 대폭 바꿔, 총점은 2400점에서 1600점으로 낮아지고 오답에 대한 감점 제도도 사라졌다.

당시 미국 SAT 주관 기관인 칼리지보드의 콜먼 위원장은

“기존 SAT는 고교 교육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가 있다”며 “고교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에 집중하며 기존 종이 시험에서 컴퓨터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바꾸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대입 시험준비에 들어가는 막대한 사교육 비용이 불평등과 불공정성을 확대한다”고 지적하며 “고소득층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시험 잘 보는 법을 배우는 현상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SAT 입시를 위한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문제를 쉽게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수능 정시를 확대하며 기존 재래시험을 장려하는 현상과 비교하면 매우 배치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바뀐 SAT 시험의 읽기/쓰기 영역에서는 증거기반 읽기/쓰기(Evidence-based Reading and Writing) 도입이 가장 큰 변화다. 다음은 읽기 문제 중 한 예다.

지금까지 객관식 시험은 정답인가 아닌가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새로 도입한 미국의 SAT는 자신이 선택한 답에 대한 근거(Evidence)까지 요구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 기억해야 풀 수 있는 시험을 지양하고 종합적 사고체계를 묻겠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한국의 수능시험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의 종합사고 탐문유형의 문제이자 테크놀로지 기반의 컴퓨터 기반의 SAT/CBT 시험의 특징이 됐다.

SAT와 양대산맥인 미국 ACT 수능시험도, 작년 2018년 9월 시행부터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해외 전 지역에서 Computer Based Test로 바뀌었다. ACT는 미국 현지 시험이므로 관리가 가능해 종이와 컴퓨터 둘 다 병행 시행하며 학생은 선택할 수 있다. 또한 SAT와 ACT는 1년 내내 7회 가까이 볼 수 있고 원하는 점수를 알아서 픽업할 수 있다.

이런 정량화된 표준화 점수는 GPA(내신)와 더불어 대학입시에서 부분 점수로 활용되고 입학사정관들은 교외활동이나 교사추천서 그리고 에세이 등 다른 평가 요소들을 최종 고려한 후 그 당락을 비정량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수능이 수시모집에서 최저등급용으로 쓰이는 우리나라의 학생부종합전형과 비교적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즉 SAT나 ACT 등 표준화 국가시험 하나만으로 아이 인생의 당락을 결정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갖은 욕을 먹고 있는 학종이지만 미국 포함 선진 유수의 나라는 이미 지향하는 평가전형인 것이다.

태평양 건너온 오렌지를 탱자로 만들지 말라!

미국은 표준화 검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교육과정과 현장에 도입하고 대대적으로 전파한 나라다. 우리나라도 그 체계를 대부분 받아들였고 응용해 왔다. 그러나 그런 미국도 이미 오래전부터 전면이 아닌 표집으로 시행하고, 평가시스템은 디지털 리터리시 중심의 쌍방향 온라인 평가와 종합적 사고체계를 묻고 답하는 등 새로운 평가방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시 우리나라의 표준화 평가인 수능과 국가성취도 평가로 돌아와 보자.

미국교육과정을 모태로 수십 년간 7~8차에 거쳐 국가교육과정을 끊임없이 손댔으면 최소한 일제(一齊)식 학력진단고사와 국가평가인 수능은 미국의 반만큼이라도 맥락상 진화해야 했지만 실상은 늘 그렇지 않아 왔다.

미국의 평가시스템을 전면 벤치마킹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2015 개정교육과정에 들어선 만큼 국가성취도평가 정도는 얼마든지 입시를 떠나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 간 멀었던 물리적 거리를 최소화하여 미국처럼 기술에 기반한 정성평가적 체계로 충분히 갈 수도 있는데, 일제(一齊)고사식 학력평가로 회귀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수능개선은 요원하지 않은가? 누가 우리나라를 IT 강국이라 했던가 말이다.

다소 실소가 나오는 점은 이런 와중에도 각 지역청은 교사들을 위한 수업과 평가개선을 위한 각종 연수를 진행하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 IB(국제 바칼로레아) 수업평가의 부분 도입까지 목표, 실행하는 것이다.

연수나 외국교육과정 도입을 새 시대 앞걸음에 놓고 본다면 일제식 고사시행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업도 '일제'식으로 나라에서 장려할 건가

백번 양보해서 학력수준 저하는 일제식 평가 전면 도입으로 성적 보상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럼 과거처럼 학교 수업까지도 마땅히 전면 일제식 수업이 되어야 합리적일 것이다. 그럼 수업도 일제식 수업을 나라에서 장려할건가?

수업개선을 위한 개정교육과정과 자유학기(년)제 그리고 각종 교수방법 도입과 디지털 교과서 구축 등 교육개선을 주문했으면 그에 맞는 혁신적 체계의 평가방식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그 자료를 교육에 다시 환기하는 데 써야 옳다. 하지만 그 주동을 거듭한 교육부가 또다시 과거회귀적 발상과 시스템을 재도입하려는 억측은 현장 교사들과 학생들을 매우 실의에 빠지게 할 뿐 아니라 우롱하는 처사이다.

이틀 전 모든 학생을 기초학력 진단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반대 입장을 밝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의견에 주관적이나마 전폭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가? 이제 우리나라 학생들은 전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단 하루짜리 1회용 시험응시권을 손에 들고 시험장에 들어가 종일 심장 떨며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전 세계 표준화 시험의 유일한 화석국가가 되었다.

언제까지 일제·객관·종이식 진단평가와 수능이 표준화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학교와 학생들을 재래입시의 갈라파고스로 고립시킬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교육부에 바란다. 이젠 교사와 학생을 먼저 바꾸려 논하기 전에 교육행정과 정책부터 먼저 쇄신할 의지를 갖추고 아이들의 모자를 쓴 후 학교를 바라보면 좋겠다.

정성윤 영어교사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대구 심인중‧고교에서 20년째 근무 중이다. 경북대 국제관계 및 미국학 석사 졸업 후 계명대 영어교육 박사를 수료했으며 교육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대구교육청 등 국가교육기관, 대학교와 함께 출제, 검토, 연구논문 발표 등 다양한 활동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아 학생부종합전형 및 과정중심평가 등 연구 자료들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클라우드 기반 온라인 수업 및 과정중심평가 방법을 담은 구글클래스룸 적용방법으로 전국 특강과 컨설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18 전국창의융합수업대회(비상)에서 영어과 1등상를 수상했고 현재 한국멀티미디어학회 교육이사,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협회 전문위원 및 GEG 구글 에듀케이터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2015개정교육과정 영어교과서(YBM) 해설서 및 평가문제집, 학생부종합전형 고교백서(넥서스), 얇고 빠른 수능영어 독해 기본, 실전편(능률영어) 그리고 개정교육과정 중등영어과 평가기준지침(교육부, 평가원) 등 다수의 국가교육기관 저작과 연구물이 있다. jsykorea180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