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표 경기 소안초등학교 교무부장

[에듀인뉴스] 안중근 의사님,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누구보다도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 가르쳐야할 책무가 있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저 자신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가를 점검해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KBS 열린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군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과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계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안중근 의사님을 회상해보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님, 당신은 정말 용기 있는 애국자이시며 지혜로운 전략가이시며 이론가이셨습니다.

도마 안중근 의사님을 이해하기 위해 부친의 생애를 공부했습니다. 부친께서도 조선왕조말 권력층의 가렴주구에 시달린 민중들이 관리들의 횡포에 벗어나기 위해 천주교 신앙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님의 소망은 현세에서의 평화로운 도덕사회 실천과 내세 구원이며 전교활동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과 삼위일체였다는 것을 강사님의 강의를 통해 알았을 때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빌렘 신부에게서 천주교 신앙과 서양의 근대 사상을 배우게 되면서 그것을 동양적인 교리로 설명하시려했던 노력에서 안 의사님의 신앙심과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순국 직전에도 일본 변호사에게 가톨릭 신앙을 권면하실 정도의 두터운 신앙심으로 조국을 사랑했기에 후손들도 안 의사님을 존경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안 의사님은 참으로 지혜롭고 앞을 내다보는 慧眼(혜안)이 있으셨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신민회’라는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는 교육 구국운동을 전개하셨던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국채보상운동에 온 가족의 패물을 헌납하셨고 민족운동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합의’라는 무연탄 회사를 경영했던 것도 모두 조국의 독립운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시기 위함이셨지요.

또한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해 온 세계에 알렸던 것만 보아도 얼마나 지혜롭고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를 알 수 있지요.

안 의사님, 안중근 의사님을 정말 용기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할 의거를 스스로 자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얼빈 의거는 당시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 일대 쾌거였으며 중국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영웅이라고 중국인들조차 극찬했다고 하니 의사님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하셨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시면서 일제 침략의 부당함과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간교함을 세계만방에 알리려하신 것 또한 대단한 선견지명이셨습니다.

8발의 총성을 울리며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이국땅에서 장엄하게 외치신 의사님의 모습을 상상만 해봐도 피가 끓어오르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의거 뒤 5개월 동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금도 의기를 굽히지 않고 당당하기만 하셨고 왼손 약지를 끊어 그 피로써 태극기 앞면에 ‘大韓獨立’이란 글자를 쓰시기도 하셨지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返葬하지 말라“는 유언에서 비장하고도 결연한 불타는 애국심과 조국 독립의 염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형을 당할 때까지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마지막까지 걱정하셨던 초인적인 삶을 생각하면서 머리 숙여 안중근 의사님의 숭고한 애국심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안중근 의사님의 숭고한 애국심을 잘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롤 모델’이 되겠습니다. 저 먼 하늘나라에서는 이 땅에서 누리지 못했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세요.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