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학부모 민원 온 몸으로 받아내는 교사
민원 제기는 학부모 정당 권리..."시스템화 필요"

[에듀인뉴스] 교권침해는 교육계의 오래된 화두다. 그러나 교권의 개념과 보호해야 할 교육활동의 범위에 대한 교직사회의 합의는 미흡하다. 정부 대책도 대증치료와 사후약방문 수준에 머문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 교사들의 공포심과 업무기피증이 일상화되며 교육의 공적 기능이 약화하고 있다. 교육이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보호해야 할 교사의 교육활동의 범위와 기준을 모색하고,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자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과 함께하는 '송원재와 교권 제대로 알기' 연재를 기획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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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민원, 학교에서 어떻게 이뤄지나

학부모에 의한 교육권 침해는 보통 민원으로부터 시작된다. 통계에 따르면, 학부모 민원은 대부분 학교폭력 관련 자녀에게 내려진 조치나 교사의 학생 지도방식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교원의 비위행위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고, 법규상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도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교사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요구도 있다. 학부모의 요구를 거절한 것에 대한 감정적 보복도 간혹 있다.

이유야 어떻든 민원을 둘러싼 갈등이 교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부모 민원은 본질적으로는 학교나 교사에 대한 공적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다. 귀찮다고 소홀히 여기거나 대충 달래서 얼버무릴 게 아니라, 학부모의 정당한 의견 개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를 학교에 맡긴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자녀가 안전하고 교육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민원을 대하는 ‘학교의 태도’와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의 방식’이다.

민원처리 시스템 없는 학교...'멱살·머리채 잡히는 교사'

모든 공공기관에는 민원처리 시스템이 있다. 부당한 업무처리나 요구사항이 있을 때 민원실이나 인터넷 신문고에 올리면 일정 기간 안에 반드시 회신해야 한다. 시정조치가 내려지기도 하고, 오해가 있으면 설명과 함께 관련 법조항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민원 처리에 불만이 있으면 상급기관에 다시 진정할 수 있다. 민원인이 직접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멱살을 잡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은 없다. 그랬다간 공무집행 방해죄로 고발당하거나 공무원을 다치게 하면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학교에만 그런 민원처리 시스템이 없다. 학교도 엄연히 공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인데도 그렇다.

미성년 학생들이 온종일 좁은 공간에서 집단으로 생활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이런저런 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에 쏟아지는 민원은 어떤 공공기관보다도 많다. 그런데도 학교에는 학부모의 불만과 요구를 공식적으로 접수하여 책임 있게 검토하고 회신해 주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불만을 제기할 마땅한 통로가 없다 보니 학부모들은 문제가 생기면 직접 교사를 찾아와 터뜨리기 쉽다. 학교장은 너무 어렵고 교사가 그나마 만만하다.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이나 학부모회 임원 같은 유지급 학부모들이야 수시로 교장에게 전화를 걸지만, 보통 학부모들은 다짜고짜 교사를 찾아와 분노를 터뜨린다.

면담 사전예약 같은 것은 없다. 작심하고 왔으니 말도 곱게 나올 리 없다. 영문을 모르는 교사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주위에 학생이 있으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학부모가 폭포처럼 쏟아붓는 말을 한참 듣고 나서야 교사는 사태의 전모와 내용을 겨우 파악한다. 교사가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학부모가 아이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교사를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교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학부모의 귀에는 ‘비겁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설령 이해를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사과도 받지 않고 물러서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공격의 수위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린다.

잘못한 게 없는 교사가 사과할 리 없다. 거절하면 고성과 욕설이 오가다가 교사의 멱살이나 머리채가 잡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학부모의 민원제기 시스템 제도화하자

법원 판례에 따르면,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실에 무단으로 들어와 수업을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 수업 중인 교사를 폭행하여 다치게 하면 ‘공무집행방해 및 치상’이다. 사립학교 교원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므로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 수업 중이 아니어도 교원에게 폭행을 가하면 폭행죄, 폭언‧욕설을 하면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카톡 등 SNS 공간에서 교사를 비방하면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학부모에게 의견을 개진할 공적 권리를 허하라. 단, 민원은 얼마든지 제기하되 그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교사를 직접 찾아와 따지고 들이대는 방식이 아니라, 민원처리 시스템을 통해 제기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자.

학교장은 마지막 중재자로 남겨두고, 교감을 책임자로 하여 학교 민원창구를 개설하자. 홈페이지에도 전자정부 신문고 같은 민원창구를 상시 개설하고, 학부모총회 때도 널리 알리자. 자녀 교육에 관한 어떤 요구도 민원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들어온 민원에 대해서는 적어도 2주 이내에 책임지고 답변을 하도록 제도화하자.

교원의 업무수행과 학생 지도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라면 위법성 여부를 따져 징계사유에 해당하면 교육청에 징계를 요청하면 된다.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면 해당 교원의 설명을 첨부하여 회신하면 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성실하게 해명하여 바로잡으면 된다. 학교의 공식 절차에 따라 처리된 사안에 대한 불만이라면 상급기관에 불복하는 절차를 친절하게 안내하면 된다.

단, 서로의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모든 진정과 답변은 실명을 사용하도록 하자. 나중에 벌어질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민원은 반드시 서면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실명을 밝히지 않은 투서나 전화 등 신뢰할 수 없는 민원은 모두 배척해야 마땅하다. 경험적으로 볼 때, 학교관리자가 밑도 끝도 없이 “어떤 학부모가 민원전화를 걸어 왔는데” 하고 말하는 것은 교사를 옥죄는 또 하나의 통제수단으로 이용돼 왔기 때문이다.

걸쭉한 육도문자와 격렬한 신체적 접촉을 동반한 방식으로 원초적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위협과 폭력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다 못해 반문명적이다. 미성숙한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성장‧발달시킬 목적으로 세워진 교육기관에서는 이런 폭력적인 방식을 결코 허용해선 안 된다.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 정당한 요구라면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무리한 요구라면 자제하는 게 맞다.

민원처리 시스템을 통한 공식적 문제 제기는 개인 간의 대면방식이 초래할 수 있는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갈등을 걸러주는 완충장치가 될 수 있다. 또 문서의 형태로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격앙됐던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수도 있다. 민원의 당사자가 된 교원도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자신의 교육방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원처리 시스템을 갖추었는데도 직접 교사를 찾아와 항의한다면, 이것은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민원처리 시스템의 핵심은 학부모 발언권은 최대한 보장하되 그에 따르는 책임 또한 분명히 하는 것이다. 동시에 교원의 교육권도 최대한 보장하되 그 책임 또한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학부모와 교원이 서로의 권한을 존중하되, 그것을 행사하는 방식이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부모와 교원이 서로 존중하며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할 때, 학교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 이 시스템이 학교에 정착된다면, 학부모의 민원을 둘러싼 고질적인 갈등과 충돌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