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의 자연주의적 접근② 제임스와 듀이 "앎이란 무엇인가"
듀이의 자연주의적 접근② 제임스와 듀이 "앎이란 무엇인가"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9.04.11 0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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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에듀인뉴스] 교육계와 교육학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학계에서도 존 듀이(John Dewey)는 누구에게나 이미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알려진 만큼 그의 이론이 잘 이해되고 소개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은 ‘실용주의’, ‘실험주의’, ‘진보주의 교육’, ‘새교육’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되어 왔고, 우리의 교육계와 교육학계는 그를 현대적 교육사상의 근원인양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교육계에서 심도 있게 평가된 수준은 아니었다. 에듀인뉴스는 정치와 교육의 이념적 갈등이 극심하고 특히 자유주의적 전통과 강령적 기조에 대한 이해의 혼란이 심각한 수준에 있는 이 때, 존듀이의 실험주의적 자유주의와 이에 관련한 교육사상을 검토해 보는 ‘왜, 지금 존 듀이를 읽어야 하나’를 연재한다.

제임스와 듀이(오른쪽). 실용주의를 하나의 철학, 종교 이론으로 정립하고 세상에 공표한 사람이 제임스(William James 사진 왼쪽)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제임스가 실용주의의 창시자는 아닐지 모르지만, 가장 대표적 실용주의자로서 제임스의 위치는 부정할 수 없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제임스, 대상과 관념은 '의식의 흐름' 속 떠오르는 것

제임스(William James)는 우리가 다루는 대상과 관념은 내심에서 일정하게 그려 보여주는 '그림'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 속에서 그냥 즉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을 두고 평소에 생각하거나 설명할 때, 집의 모양도 떠오르고, 거기서 나와 가족이 살면서 행동하고 느끼고 생활하는 것도 마음속에 그려지지만, 어떤 때는 그 집을 구하기까지의 수고와 애환도 생각나고 그 집에 관한 이런 저런 역사와 이야기도 내 마음을 채운다. 

나의 집에 관한 생각, 기억, 가치, 의미, 태도 등은 언제나 나의 의식 속에 이런 저런 양상으로 떠오르면서 지나가고 있다. 우연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그 집을 인식할 때 항상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재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질성으로 나의 의식의 흐름 속에 생겨나고 변화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어떤 목적의 충족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경험에 대한 원초적 사고는 질성적 사고의 도움으로 파악되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듀이가 1896년에 발표한 매우 중요한 논문의 하나인 ‘심리학에서의 반사호(reflex arc)의 개념’에서 제임스의 영향을 확연히 보여 주고 있다. 또 제임스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자극과 반응의 새로운 이원론

제임스 자신이 사용한 반사호의 개념에서는 육체와 영혼의 오래된 이원론을 자극과 반응의 새로운 이원론으로 대치한다. 자연주의적 개념이 사용된 것이다. 이에 대해 듀이는 ‘조정작용의 순환’이라는 새로운 설명의 모형을 제시하였다. 즉, 생명체가 환경과 계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극과 반응의 국면이 교차적으로 생성한다는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예를 들면, 아기가 촛불을 보면 즉 자극을 받으면 촛불을 만지려는 반응을 하고, 그러다가 뜨거운 자극을 받게 되면 다음에는 손을 거두어들인다. 일종의 조정 작용이 이루어진 것이다. 듀이는 이러한 과정을 퍼즐놀이와 같은 것으로 비유하였다. 조정 작용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환경에 이미 역동적으로 관여하는 유기체로서 자리를 잡고, 동시에 관심의 대상인 촛불에 집중하는 활동의 중심에 있게 된다. 

촛불에서 뜨거움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취한 결과로서 혹은 의미로서 느끼게 된다. 보고 접근하는 것은 감각적-동작적 조정의 계속적인 진행과정에서 아이와 환경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오직 한 가닥으로만 가는 일종의 선형적(線形的) 관련만은 아니다. 학습의 과정이 확장되고 의미를 제대로 느끼게 되면 분산된 상태로 있던 여러 행위들을 새로 조정된 것이 대치해 버린다. 

별로 의미 없이 옹알이도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던 아이는 어떤 대상에 집중하고 그 대상과 상호작용하면서 필요한 동작이 이어진다. 좀 더 복잡한 경우는 야구경기를 하는 투수에게서 본다. 그는 투수 마운드에서 타자도 봐야 하고 주자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포수의 싸인도 읽어야 하고 게임의 흐름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투수는 전체적으로 감당하는 자신의 요령을 세워야 한다. 

이와는 단순하게 아기도 촛불의 뜨거운 성질을 느끼고는 접근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밝은 빛에 관심을 가지고 물건을 식별하고자 할 때 불빛을 이용한다. 그러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 무서움도 느낀다. 

제임스의 총체적 심리학(holistic psychology)을 발전시킴으로써, 듀이는 유기체적 상호작용의 기본모형을 발견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그의 자연주의적 형이상학, 도구적 논리학, 소통이론, 도덕이론, 정치이론, 그리고 미학까지를 포괄하는 폭넓은 철학을 전개하였다.

몇 년 후인 1903년 듀이는 그의 철학 전체에 영향을 준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추론을 추가했다. 그는, 만약 표상이라는 것이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행위를 조정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전통적 철학에서 기본적 주제가 된 '앎'(인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을 것인가는 의심해 볼 만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지식의 전통적인 '관조적 이론'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의 일상적 삶, 즉 고통도 있고 즐거움도 있는 삶 그대로를 경험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인식론적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개념인 경험과는 아주 다른 것일 수가 있다고 하였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 대상(무엇)이 나와 어떤 유의미한 관계에 있게 되는 여러 가지의 방법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자동적으로 앎(지식)만의 경험인 것은 아니다. 심장병을 앓는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심장병이라는 것을 앓고 있음을 안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앎보다는 훨씬 많은 경험적 요소들이 있다. 

존재와 의미와 진리는 같은 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그 자체의 성격상 세계를 인식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러한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는 철학이 더욱 넓게 맥락을 설정할 필요가 있고 형이상학과 방법론도 이에 따라서 새롭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한치원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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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2019-04-11 17:36:12
제대로 안다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