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순 서울여대 명예교수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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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명언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자신이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로서, 지속적인 자기 성찰(自己省察; 마음 다스리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마음챙김(mindfulness)) 노력에 따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노력이 곧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 포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양의 정신문화의 뿌리라고 인식되고 있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도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저승(지옥)에 다녀와야 한다’는 의미의 사회적 전통이 여러 고전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당시 사람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문학작품 등에서 고통과 질곡의 체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없이는 성인이 되기 어렵다는 사회적 통념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마땅히 고난을 체험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야만 된다는 생각이 그 당시의 일반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상식이며 사회적 가치의 일부로 널리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당시 강조했던 본질적인 의미는 한국사회에서도 오랜 동안 중요시 해왔던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전통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소학 小學>, <격몽요결 擊蒙要訣>, <동몽선습 童蒙先習>, <효경 孝經>, <천자문 千字文>, <명심보감 明心寶鑑> 등과 같은 경전을 통하여 정신적인 성장을 도모하며 자아를 발견하고 바람직한 성장과 성숙을 위한 자아성찰이 필수라는 점을 강조해 왔었다. 

말하자면 ‘젊어서는 고생을 사서라도 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말로서, 모든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체험을 해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격언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자아성찰을 위한 고생과 체험을 필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요구되는 ‘행복의 조건’들을 알기 쉽게 안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명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성숙한 청소년이 성인이 되기까지 세상만사를 경험하며 주어진 고통, 고민, 고뇌, 고난, 고생을 겪는 것은, 마치 온실에서 자란 묘목이 온실 밖에 나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겪어야 하는 당연한 절차와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로 한 개인이 온갖 고난을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매우 인간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성찰(깨달음)을 통해서만 인간다워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아성찰적 노력을 통해서만 인간답게 성숙해지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고 믿어 온 것이 인간사회의 한 속성이라고 볼 때,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사서라도 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매우 자연스러운 조언이며 경고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동서양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는 교훈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승려가 된 프랑스의 과학자인 마티외 리카르는 그의 저서, <행복, 하다>에서, 유전학자인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수인 루카 카발리 스포르자의 말을 인용, 지속적인 자아성찰 노력이 필요함을 알기 쉽게 정리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행복이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운이 우리에게 베푸는 은총도 아니요 역경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는 은총도 아니다. 행복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행복해질 수 없으며 나날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스포르자의 말을 인용해 모든 개인이 저절로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성장과정에서부터 ‘끈질긴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만 행복을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달라이 라마의 불어 통역관으로 수행에 참여한 과정을 거쳐 동서양의 보편적인 행복관을 경험한 리카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자아성찰 노력이 없이는 결코 한 인간으로 성숙하기 어렵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제대로 맛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명언은 우리 사회에서 행복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명분을 너무도 알기 쉽게 말해 주고 있어 새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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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성현에 의하면, 행복을 누릴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지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아성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미성숙한 자아 상태로서는 진정성 있는 행복을 누리거나 창출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리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면서 세상을 배우며 성장하고 경험을 쌓아 세상 물정을 파악하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어야만 자신에 대한 성찰과정을 거친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 자아성찰 노력을 거치면서 철이 들어 자기분수를 깨닫고 인생관을 정립하고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습득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렵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성현들의 지적이라는 점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청소년기 전후에는 대체로 부모나 성인사회로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행복, 우연히 얻어지는 행복, 남들을 모방해 추구하는 피상적 행복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으나, 이러한 행복감은 자신의 마음먹기와 노력에 따라 얻어진 것이 아니라서, 진정한 행복이라고 인정하고 만끽하기도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격언)와 함께‘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삶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에 특별히 경청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17세기 네델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유로워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유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의 의지 안에 있지 않고 항상 외부적인 원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에...(중략)...보편적인 인과(因果)에 복종하는 인간은 반드시 이성의 도움을 통해서, 오래도록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여 감정이나 부적절한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휘둘리지 않게 된 연유에야 비로소 내적인 예속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행복의 첫째 조건은 분별력이다"

또 고대 그리스 시대 소포클레스(‘안티고네’라는 작품에서)는 ‘행복의 첫째 조건은 분별력이다’라고 주장하는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출발점이다’라고 언명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을 알기 위한 성찰노력을 통하여 지혜를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시피, 분별력을 습득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정체감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을 포함한 기성사회가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 (간디 해설)에서도 “깨달음 상태에 도달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자율능력을 획득한 자, 자신 안에서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발견하는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각 개인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 자신에게 적합한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 자신의 기쁨을 증폭하고 슬픔을 감소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자신을 알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기 이해, 자기 관찰, 자기 자극과 동기부여, 삶의 방향과 비전을 설정하고 관련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야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성공적으로 사회인이 되어 자아를 실현해 갈 수 있게 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인류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철학자 르누아르는 “행복은 우리의 삶과 외부 세계를 가장 풍부한 감성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개성을 키워가며 진솔한 본성에 따라 살 때 찾아 온다”고 주장하며, 각자가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을 인용하여 권면하고 있다. 

융에 의하면 “개인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위선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았음을, 자신을 존중하기보다 다른 삶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왔음을...(중략)...정서적인 면이나 직업적인 면에서 우리의 실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며 개별성이나 고유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라는 과정을 경험하는 자아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지속적인 수신(修身) 노력을 통하여 자기분수에 맞게 자신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함양할 때가 되어야 자아정체감을 정립하고 자기다운 신념과 인생관을 갖게 되는 자기 자신이 되어 자율적으로 꿈과 비전을 갖게 되고 그를 능동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자아성찰을 통하여 자아정체감과 주인의식의 함양이 가능하게 되고, 자신에 대하여 마스터하게 되는 경지, 적정한 수준의 세상경험과 경륜, 좌절과 실패를 극복해 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함양하게 될 때, 진정성 있는 자기조절과 자기관리가 가능하게 되고 마침내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모든 종교는 개인의 자기 인식, 자아성찰과 더불어 자신을 관리하고 조절하기,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을 함양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명상, 기도, 종교의식 등과 같은 종교적 행위들은 개인의 정신적 성장을 기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훈육하는 과정으로서 자기인식과 정서적 관리를 포괄하는 수신능력을 구비한 성인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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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신앙심은 삶의 목표라기보다는 개인의 자기성찰능력을 터득하고 자기관리능력을 습득하며 함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단이며 도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복잡한 세상사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명상(瞑想) 또는 선(禪)을 권장하고 있어, 불교의 명상기법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스트레스나 번뇌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안정과 자기 자신을 찾는 방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관하여 달라이 라마는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며, 망상을 스스로 다스려 고통으로부터 탈피하고 고통을 규제함으로써 긍정적인 힘으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내면적인 힘(긍정의 힘)과 평정을 찾기 위해서 안식처가 필요하고 부처와 같이 자기 자신을 안식처로 삼아야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기독교문화에서도“자기를 제어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 자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이 세상에 보내 주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본 의도와 목적이 성취되었기에, 즉 하나님의 본성과 모습을 실현하게 되었기에,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성취감과 책무를 다 했다는 만족감을 중시한다.”라는 말씀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총(행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 자체가 성찰을 경험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아성찰이 행복을 누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저서 <윤리학>에서 ‘매우 행복한 상태는 높은 단계의 자유이며,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단계’라고 전제하며, 이 세상에서 이성의 노력만으로 진정한 행복과 지고(至高)의 자유를 얻는 법을 추구하였다. 

스피노자는 삶의 지혜로서의 윤리학을 추구하며 인간을 지복(至福)과 완전한 자유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합리적인 길을 정립하려고 노력하였기에 일찍이 현대적 의미의 행복의 근거를 제시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또 스피노자는 “행복하다는 것은 주어진 기쁨의 순간을 온전히 미련 없이 향유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슬픔을 온전하게, 억지로 참지 않고 당당하게 가로지르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인식, 충동 조절, 마음을 동요시키는 감정이나 왜곡된 심상을 다스리는 일 등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자아성찰과 자기 관리가 행복의 관건임을 특별히 언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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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자율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하며 살아가야만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편안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체험을 통해 성찰할 수 있도록, 그들의 가정과 학교 및 지역사회의 여건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다양하고 의미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는 행복교육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려고 당장 인지적 학습활동에만 몰두하며 주어진 시간을 보내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고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욕구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쌓기 어렵게 되어,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그를 기반으로 한 행복한 삶의 순간을 만끽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 명확관화(明確觀火)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스스로 욕구불만을 제대로 해소할 수도 없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마저 추구할 수 없게 되면서,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체면만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많아져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할 잠재력을 갖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욕구와 이기심을 극복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고생을 사서라고 해야겠다는 의도로 다양한 체험을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추구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로, 마치 쓰나미에 휩쓸려 가듯이 학교로부터 사회에 끌려 나가게 된다면, 즉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상태의 사회적 풍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경쟁사회에 뛰어 들게 된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점에 유의하자.

지금은 보다 미래지향적이며 거시적 차원에서 행복교육에 보다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