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표 경기 소안초 교무부장
2009-2013 한국상하수도협회 전국초등교사물사랑 자문단장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얘들아, 누가 물속에서 숨 안 쉬고 있는지 시합할래”

“지는 사람은 딱지 10장내기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마냥 행복하기만 한 순간들이다. 깨끗한 모래와 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냇가에서 실컷 멱을 감고 물장구를 치면서 신나게 놀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저문다. 물싸움을 하다가 지치면 큰 바위로 올라와서 놀다가 잠이 든 친구의 고추를 실로 묶어 놓고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줌을 싸는 모습을 지켜보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시냇가에 있는 큰 돌 몇 개를 살짝 들어보면 영락없이 가재들이 있었는데 빠알간 알을 밴 어미가재들 주변에는 새끼 가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디 가재뿐이겠는가! 시냇가에는 송사리, 피라미, 모래무지 같은 1급수에만 산다는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고추를 한 소쿠리 따서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돌아오셨다. 온종일 밭에서 고추를 따느라 허리가 아팠을 텐데도 불구하고 “우리 막내, 어서 와라.”고 말씀하시고는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서 등목을 시켜주시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혀 주셨다. 어린 마음에 등목하는 게 싫어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나가 혼이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20여리가 넘는 산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계곡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그냥 벌컥벌컥 들이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기도 했다. 지금같이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했던 때라 시원한 물 한 잔도 그때는 그렇게 시원하고 맛이 있을 수 없었다. 동네 우물가에는 큰 두레박이 있었고 물지게를 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물을 길러 온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손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고 마을을 걸어 조금만 나오면 금강 물이 흐르고 있어 어디를 가나 흔한 것이 물이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자마자 시작된 저수지 공사 때문에 마을에서 몇 가구가 이사를 갔고 우리 집 앞까지 저수지 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동네 분 들 중에는 우리 어머니께 “아줌니, 마당에서 낚시 대만 드리우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겠구먼유.”라고 농담처럼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미꾸라지가 펄떡 펄떡 뛰면서 여기저기에 미꾸라지 천지였다. 그 놈을 잡아서 냄비에 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했던지 얕은 곳은 밑바닥이 다 보일정도였고 송사리나 피라미 같은 물고기들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연못에서 올챙이를 잡는 아이들. (사진=조원표 교사)
연못에서 올챙이를 잡는 아이들. (사진=조원표 교사)

깔을 베고 난 후 또는 가을에 타작을 할 때 땀이 나서 참기 힘들 때면 저수지 물로 풍덩 뛰어 들어 멱을 감았다. 저수지 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좀 시시하다 싶으면 조금만 걸어가서 강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곤 했었다. 그 때는 저수지나 강물이 맑고 투명한 유리알처럼 깨끗했기 때문에 목욕을 하고나서도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저수지 둑 밑에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서는 물을 퍼낸 후 저수지에서 흘러 내려온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밤에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어항을 놓은 후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잡기도 했었다. 동네 앞에 저수지와 강은 아이들의 놀이터요 목욕탕이었다. 여름에는 저수지와 강이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그 곳에서 놀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지난 여름 방학 때 고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점심 식사 후 옛날 생각만하고 수돗물을 틀어서 그냥 마시려고 하는데 큰형수께서 “그냥 드시면 안돼요.”라며 펄펄 끓인 보리차를 주셨다. “형수님, 우리 동네가 오염될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라고 묻자 “옛날의 시골이 아녜요.”라면서 젖소나 사슴을 기르는 농가가 늘어나고 저수지에 낚시터가 생기면서 시골의 물도 이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6.25 때는 인민군조차 들어오지 않았던 우리 동네가 사람들의 발길이 닿으면서 깨끗했던 옛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깨끗한 강과 호수, 바다가 있어야 우리들도 안심하고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다. 강과 바다의 물을 살리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21세기 물 분쟁의 시대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지름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생명의 물이 깨끗이 정화되어 동네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뛰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한 번 재현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