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표 경기 소안초등학교 교무부장

안중근 의사 유묵 '청초당'
안중근 의사 유묵 '청초당'

 

[에듀인뉴스] 인천공항을 떠나 도착한 곳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공항, 기대했던 러시아다. 금발 머리, 큰 눈의 사람들의 무뚝뚝한 표정이 금방 긴장하게 만든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함경도 농민들이 농사짓기 좋은 땅을 찾아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러시아 당국은 광활한 미개척지를 개척하는 이러한 조선 사람들을 환영하였단다. 그 후 많은 함경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거주하였고,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20세기 초부터는 일제의 감시와 눈을 피해 독립운동을 펼치는 근거지가 된다.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시베리아열차의 시발착역인 블라디 보스톡 역, 볼세비키 혁명 전사들의 동상이 있는 혁명광장, 잠수함 박물관,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 기도를 드리는 장소인 러시아 정교회 등을 돌아보며 러시아의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들은 갈고 닦지 않아서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고 칠이 벗겨지고 금이 가 있으며, 새 건물들은 크고 웅장하지만 가건물처럼 견고해보이진 않는다. 러시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염두해 두어야 하는 한 마디가 ‘이것이 러시아(에따 러시아)’다. 어쩌면 이 말은 독선적이고 뻔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러시아는 큰 영토를 가지고 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세계사에서 한 몫을 차지한 나라이기에 결코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둘째 날, 2시간가량 이동해 우스리스크로 가서 최재형 선생의 옛집을 둘러보고,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참배한 후 1935년에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전까지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했던 고려사범대학(조선사범대학) 건물을 보았다. 우스리스크에는 옛 주택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농사짓기 좋은 땅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러시아의 우호적인 태도와 이상설 선생의 외교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정착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단다.

셋째 날 아침은 일찍 일어나 5시간을 버스로 이동해 중국과의 국경지대인 크라스키노로 향했다. 그곳에서 항일투쟁을 위해 단지동맹을 결행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인을 추모하는 단지 동맹비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러시아 국경을 넘으니 바로 중국이다. 조금 달리니 왼편에 보이는 강이 두만강이란다. 강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북한, 강폭이 좁은 만큼 마음도 아프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마음대로 갈 수 없다니….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저 강을 넘는 북한 주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프다.

이번 탐방에서 꼭 보고 싶었던 백두산 천지를 보러가는 날이다. 백두산으로 향하기 전 먼저 청산리 전투가 있었던 지역으로 갔다. 청산리 전투는 북로군정서 군을 이끄는 김좌진과 홍범도 부대가 함께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대첩이다. 청산리대첩 기념비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었는데, 전투에서 희생된 독립군들을 생각하며 계단을 밟고 올라가 본다. 높은 산들이 주변에 많은데, 이런 지형을 잘 알고 있던 홍범도와 김좌진이 합세하여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단다.

한민족의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고, 단군이 탄생했다는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은 중국에는 장백산으로 불리는데 입구에 기념품, 셔틀티켓, 기념엽서 등이 있다. 아침부터 날씨가 맑아 폭포와 천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장관이 환상적이다. 눈으로 잘 담아놨으니 떠오를 때마다 머릿속에서 천천히 잘 그려보고 조금씩 느껴볼 생각이다.

마지막 날은 연길에서 출발했다. 만주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고 큰 승리를 한 봉오동전투 승전지를 방문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여러 독립군 부대가 연합해 일본군의 추격 대대를 포위하여 대승을 거둔 전투다.

해림에서는 김좌진 장군이 말년을 보낸 마을을 방문했는데, 이곳 사람들의 따스한 미소는 우리 시골 마을처럼 느껴진다. 1999년에 회의실과, 자택, 정미소 등을 건립해 무료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김좌진 장군의 일대기와 업적, 마지막 생활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 앞은 아이들의 놀이 기구와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숙박 장소는 한중 우의공원이다. 이곳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항일투사들의 활동과 한인 이주, 일제의 침략상을 알릴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4시간을 이동해 안중근 의사가 100년 전 의거를 일으킨 역사적 장소 하얼빈으로 갔다. 하얼빈은 벤츠,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가 다니고, 고층 빌딩에 명품관, 백화점 등이 즐비하다. 하얼빈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1903년 중동 철도가 개통되면서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급증하고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만주 지배의 거점이자 동양의 모스크바로 건설된 도시다. 또 20세기 전반 러시아뿐 아니라 영국,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이 펼쳐져 동양의 파리로 불리웠단다. 그래서인지 하얼빈의 건물은 러시아의 건물과 흡사하다. 웅장하면서도 장식이 화려하다.

안중근 의사 친필 유묵비인 ‘청초당’ 앞에서 동양 평화를 지키고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운 업적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대한민국에는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와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투사가 있다. 그 분들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고귀한 사랑과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