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 교사

2019학년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올해도 선생님과 학생들은 교실과 교실 밖에서 하루하루 추억을 쌓아가며 1년을 보내게 된다. 이 추억을 소중히 오래 간직하기 위해 교단일기를 기록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에듀인뉴스>에서는 작년부터 190여편의 교단일기를 써온 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 교사의 교단 일기를 연재,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 4월16일, 2014년 4월16일을 칠판에 적으며 기억한다. 사진=최창진 교사
2019년 4월16일, 2014년 4월16일을 칠판에 적으며 기억한다. 사진=최창진 교사

[에듀인뉴스] 출근 길, 복도를 걷는데 들리는 리코더 소리. 2반 교실에서 일찍 온 남학생 한 명이 텅 빈 교실에서 리코더 연주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2반 교실에 들어가서 그 학생과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벌써 온거야? 혼자 교실에서 뭐 해?”

“리코더 연습하고 있어요”

수줍게 말하는 학생을 보며 흐뭇하고 웃는다. 우리 반 교실로 가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칠판에 적힌 문장이 또 나를 끌어당긴다. 칠판 앞에 우두커니 서서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잊지 않아야 할 세월이 있다.

 

5년. 무려 5년이 지났다. 그 긴 시간 동안 명확한 침몰 원인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죄 없는 학생들만 차가운 바다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대학생이 되었거나 취업을 했을 것이다. 아니 그 무엇을 하든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흐드러지게 핀 4월의 벚꽃을 영영 볼 수 없다.

우리 반 칠판에도 흘러간 세월을 잊지 않기 위해 적는다. 문장 가운데 노란 리본을 그리고 색칠하고 있으니 교실에 들어온 우리 반 학생들이 같이 색칠해도 되냐고 묻는다. 당연히. 칠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뒤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리코더 연주가 들린다. 우리는 이렇게 세월의 무게를 함께 감당한다.

“어제 왕벚꽃 접어서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은 사람?”

“제 짝꿍이 접었고 저는 가운데 벚꽃을 넣어서 완성 했어요.”

“쉬는 시간에 접는 방법 좀 알려줄래?^^”

학생들과 쉴 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하교 배웅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텅 빈 교실을 바라보며 숨을 돌리는데 책상 위에 내 시선을 멈추게 한 한 떨기 왕벚꽃. 종이를 세심하게 접어서 만든 왕벚꽃이 힘든 하루를 보낸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이 맛에 교사하지!

7분 동안 야무진 손을 쉼 없이 움직인다. 주변에 학생들이 몰려 든다. 반복적으로 방향을 바꿔 계속 접는다. 이렇게 접기만 하면 진짜 왕벚꽃이 만들어질까 다들 궁금한 표정이다. 마지막 접힌 종이를 오므리니 꽃이 완성된다. 정말 신기하다.

학생이 직접 접어준 왕벚꽃. 사진=최창진
학생이 직접 접어 준 왕벚꽃. 사진=최창진

“미술 시간에는 00이가 선생님 하면 되겠다.”

“미술뿐이겠니?^^ 너희들이 선생님보다 잘 하는 거 훨씬 많을 걸?”

우리 반 학생이 종이접기에 이렇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 비단 종이접기뿐일까? 학생들은 자신의 생김새처럼 모두 다른 관심사와 능력이 있다. 다만 그 시기와 속도가 다를 뿐이다.

오늘 따라 하교 배웅 인사를 안 하고 기다리던 학생 한 명이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나에게 쪽지를 건넨다.

선생님 공부를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방 끊었는데 엄마가 선생님이 공부 잘 가르쳐주시냐고, 공부방도 안 나가는데 성적이 오르냐고 해서 제가 선생님이 공부 잘 가르쳐주신다고 했어요. 선생님 이대로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너무 짧은가요?

꼭 선생님 혼자 보라며 웃으며 교실 밖을 나가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난다. 평소에 장난기가 많은 학생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쪽지를 펴보니 감동이다. ‘평소에 내가 전국에서 제일 잘 가르친다고 했는데, 그걸 진짜로 믿은 건 아니겠지? 나 때문에 학원도 끊은 것 같은데 어쩌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편지다.

꽃과 편지, 역시 표현의 힘은 막강하다. 고마운 마음을 갖고 누군가에게 표현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렇게 훌륭한 학생들이 나에게 더 배울 것이 있는가 싶다. 아니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할지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하다. 나도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자주 표현해야지.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과연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며 결대로 성장하도록 격려와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지 못하지만 체육시간에는 엄청난 재능을 뽐내며 학교대표로 육상대회에 출전하는 학생이 있다.

학은 정말 어려워하지만 기억력 하나는 천재급인 학생이 있다.

혼자만의 세계가 강해 다른 학생과 어울리기 힘들어하지만 동물에 대해서는 박사 수준의 지식을 가진 학생도 있다.

학교에서는 조용하지만 외부 활동에서는 자신의 끼를 폭발시키는 학생이 있다.

남몰래 남자 아이돌을 꿈꾸며 쉬는 시간마다 열심히 춤 연습을 해 자신의 꿈에 다가가는 학생이 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하고 주어진 과제에 열중하는 학생들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학생이 있다.

협소한 나의 인식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학생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나의 좁디좁은 경험의 폭 때문에 내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오늘 따라 유독 더 미안해진다. 있는 그대로, 각자만의 색깔로, 유일한 결대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교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구슬픈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의 소소한 교실 속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유쾌한 초등교사로 작년부터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 밴드에 매일 교실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글을 읽은 선생님들이 남긴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는 댓글을 보며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최 교사는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는 교사로 살고 싶다고 한다.
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의 소소한 교실 속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유쾌한 초등교사로 작년부터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 밴드에 매일 교실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글을 읽은 선생님들이 남긴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는 댓글을 보며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최 교사는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는 교사로 살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