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위원   “오류 '심적부담'보다 출제 '책임감' 더 커”

수능시험   “20년 유지한 '골격'까지 바꾸지 않았으면”

수험생에게  “가족과 소통하고 교양도서 많이 읽기를”

 

이준식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장

이준식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장(61·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사진)이 16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은 일관성, 안정성, 그리고 원칙이란 단어였다. 이 위원장은 “수능성적 통보일인 12월 2일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낼 것 같다”면서 어떤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그래서 일까.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질문에도 ‘원칙’대로라는 조금은 아쉬운 답변만 돌아 왔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EBS 교재 지문연계에 대해서는, 앞선 모의평가에서도 지문을 달리 출제했다”면서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고 답했다. 수능제도의 개선에 대해서는 사견을 전제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20년을 유지해 온 제도를 바꾸면 학생들도 혼란스럽다”면서 “영어나 한국사 절대평가처럼 교과별로 손을 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 수능이 끝났는데, 지난 며칠 어떻게 지냈나.

“수능 시험은 종료됐지만 아직 고사관련 업무는 진행 중이다. 성적표가 발부되는 12월 2일까지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낼 것 같다”

이번 수능에 대해 평가원의 6, 9월 모의 평가보다 어려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출제하였나.

“출제의 큰 방향은 일관성, 안정성이었다. 그 원칙에 맞춰 출제했다. 고난이도 문항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최고난이도 문항은 예상 정답자 비율이 20~30%인 문항을 말한다. 과목별로는 2~3문항에서 4~5문항까지 출제됐다. (출제과정에서) 변별력은 당연히 고려했다. 각 영역 출제위원도 변별력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만점자 숫자를 조절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난이도를 조정하지는 않았다. 기존 출제 기조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 영어가 특히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많다. EBS 교재연계 방식의 변화, 예고한 것 아닌 가.

“그렇다. 6, 9월 모의고사에서도 영어는 EBS 지문을 그대로 쓰지 않고 주제, 소재, 요지가 비슷한 다른 지문을 활용했다. 수능시험에서만 연계 방식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바꾼 지문도 어휘를 더 쉬운 단어로 바꿨다.”

지난 2년간 연속 출제오류가 발생했다.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출제위원장 승낙을 망설이지는 않았나.

“수능시험에 수차례 출제 또는 검토위원으로 참여했지만, 매번 심적 부담이 크다. 그렇지만 수능에 참여하는 모든 위원들은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경우가 많다. 수능은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 등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내가 이번 수능의 모의평가부터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출제위원 섭외 요청을 거절한 분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평가원이나 교육부가 출제위원들에게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기 때문에 출제과정의 어려운 점은 거의 없었다.”

이번 수능출제와 검토과정을 간략히 설명해준다면?

“출제 과정이나 검토 과정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해해 달라.”

출제오류를 위한 장치들도 마련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출제오류를 막기 위해 검토위원 수와 검토기간을 늘리고 각 영역별 평가위원 수도 영역별로 4∼6명 정도 인원을 보강했다. 또 처음으로 문항점검위원회를 만들어 출제와 검토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문항, 특별히 주시해야 할 문항, 검토 선생님들이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는 문항은 모두 다시 점검했다. 문항점검위원회가 내부 기준을 정해 상당수 문항을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살폈다.”

♦ 수능 출제기간에는 감금되지 않나. 가장 힘들었던 점과 좋은 점을 꼽는다면.

“출제·검토위원 500여 명과 보안·의료·조리 등 관리인력 200여 명 등 약 700여 명이 34일간 합숙을 했다. 가장 불편한 건 휴대전화와 팩스 등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통신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론 가족들과 소통할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인터넷은 과거 간접 검색만 가능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보안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항과 관련된 내용은 직접 검색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올해는 부모상을 당하는 등의  긴급한 상황은 없었다. 출제위원의 경우 검토기간에는 책을 읽거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 현재의 수능시험이 시작된 지가 20년 정도 됐다.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데.

“(개인적으로) 정책을 자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20년을 유지했다는 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어떤 제도든 10년은 넘어야 안정화 되고, 발전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수능은 일관성도 중요하므로 더욱 그렇다. 부분적인 수정은 몰라도 골격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어나 한국사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정도의 수정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 시험을 끝낸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수험 준비에만 몰두했을 거다. 앞으로는 가족과 이야기도 나누고, 수험서가 아닌 교양도서도 많이 읽으면서 남은 고3 기간을 충실하게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