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윤 대구 심인중학교 교사

[에듀인뉴스]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듯 교육분야도 근대교육에서만큼은 미국의 것들을 대부분 원형화해 가져왔다. 교육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 및 평가방법, 각종 시설과 기자재, 심지어 지우개 하나까지도. 그러나 편리한대로 취식하다보니 순서와 아귀가 맞지 않은 것도 많다. 21세기 4차산업 시대, 온라인 디지털 리터러시의 세상이 왔다. 구글로 모든게 가능해진 시대, 짧지만 가볍게 미국 연수에서 보고 듣고 공부한 대로 그 차이와 생각들을 11회에 걸쳐 옮겨보고자 한다.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 홈페이지 메인화면(www.ibo.org) 캡처.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긴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는데 흥미로운 문자가 하나 왔다.

“AI(인공지능)가 쓴 책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관한 책인데 관련 논문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어, 이젠 인간이 이를 다 보고 정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왔답니다. 그런데 AI가 컴퓨터 신경망을 통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수행한 다음 수만 편의 논문을 맥락에 맞춰 싹 다 정리한 다음 관련 레퍼런스도 스스로 달고 목차까지 적어 책을 펴내는 데 성공했다는군요. 거기에 내용까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해 세인들을 경악케 합니다. 작가 이름은 베타 라이터(Beta Writer)라고 명명됐고요. 무료입니다. 선생님도 얼마 전 AI 교육관련 학회 발표까지 하셨으니 꼭 한번 읽어보세요!

구글 이노베이터(Google Innovator) 단국대 치과대학 박정철 교수에게서 온 문자였다. 호기심에 얼른 열어본 문서의 서문(Preface) 요점은 다음 세 가지였다.

1. 요즘 전기차나 휴대폰 등 각종 산업에 리튬이온 배터리 사용이 최고조에 다다라 가장 핫(Hot)한 산업 아이템이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무려 5만3000건이 넘는 논문 발표.

2. 쏟아지는 논문의 핵심은 리튬이온 충전식 배터리는 앞으로 인간의 편리에 기여하는 필수 구성품일 뿐만 아니라 잠재력이 큰 미래 산업 아이템이 될 것.

3. 시장 수익성이 아주 좋고, 다른 산업 발달의 필수아이템.

AI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시장에서 가장 가치를 인정받는 산업물품으로 해당 지식정보와 인재가 모이고, 그런 인재들을 국가적으로 양성해 전 세계로 내보내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이해·적용할지에 대한 참논의와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라의 운명 자체가 달라지는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내용의 책을 AI가 집필해 인간에게 알려주는,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AI의 등장..."교육(敎育)은 고육(苦肉)이 아냐"

4차 산업혁명과 현재의 입시나 교육제도를 억지로 엮으려는 게 아니라 이미 AI로 리딩해 가는 현실의 단면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AI가 책을 써 대는 현실에 당면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교육기관은 진부한 수업 도구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는 미국의 모든 학교가 갖춘 LMS(온라인학사지원시스템) 하나 없이 행정지원망 나이스에만 성적 등 일체를 맡기며 연명하고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조차 더 이상의 업데이트를 포기한 구 윈도우 버전에 오류투성이 나이스 엑스플랫폼이 돌아가는 모양이 그저 신기한기만 하다. 덕분에 잦은 복구는 늘 교사 몫이다. 다행히 리눅스 기반 차세대 나이스를 2년 뒤에는 분명 구축한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고맙다고 해야 할까?

생기부 기재법, 학생중심수업, 과정중심평가 등 교육사업을 잘 포장된 이름으로 낭떠러지 돌 굴리듯 교사들에게 종용하는 관료적 교육정책으로 학교는 늘 빡빡하게 짜인 살인적 교육일정을 소화한다. 결국 교실은 늘 질보다 양이 우선인 고육(苦肉)의 연속이다.

가슴은 비운 채 머리에 든 지식만 전달하는 교사와, 일제히 앉아 노트필기하거나 혹은 종일 잠자는 아이들만 가득한 교실. 교사의 행정업무는 시장통보다 더 바쁘게 돌아가고, 교육과정은 백화점 진열장처럼 가득 차 있으며,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나 마네킹처럼 꼿꼿이 선 채 감독을 치러야 하는 교사들에게 수능은 그야말로 우리 교육이 더 이상 교육이 아닌 고육(苦肉)임을 증명한다.

이게 과연 21세기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이란 말인가? 이미 클라우드 시대다. 로그인 한 번이면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고, 모든 수업자료는 보안을 유지한 채 원하는 어느 곳이든 실어 나르는 게 가능하다. 삶의 편리와 효율을 더하기 위해 관료, 관제라는 허울을 걷어내고 어떤 식으로든 각성(覺醒)이 필요한 때이다.

IB 도입이 교육사대주의라고?..."근대학교의 원형은 어차피 외국 것"

근래 IB 논의는 더욱 치열하다. 구성원마다 호불호가 있지만, IB 도입의 전제는 온라인 수업평가 플랫폼의 구축과 적용이다.

IB는 수업과 평가의 전문성과 함께 절차중심적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비판적 논·구술식 평가를 내·외부적으로 시행한다. 또 2015 개정교육과정과 같은 역량중심 교육과정이라 학교 내신평가 시 화학적 결합도 가능하다. 외국대학 지원 시 학점인증은 물론 국내대학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진학 가능하다는 사실에 일부 층에서 큰 호응이 일었고, 일부 교육청은 IB 수용을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있다.

그러나 현 교육과정에 반하는 외국 평가시스템의 무분별한 유입에 대한 염려와 함께 현재 우리의 수업-평가제도에 배치한다고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 교육의 원형적 틀을 잠깐 되짚어보면, 이는 기우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근대 학교와 조직시스템은 거의 일본에서 왔다. 일본 학교를 방문해 보면 교무실부터 책상배치까지 거의 비슷해 우리나라 학교인지 착각할 정도다. 교육과정은 거의 미국식으로 봐도 무방하고 시험은 일본식과 미국식의 조합이다.

지금 행해지는 수능은 일본식, 학생부종합전형은 전형적인 미국식 입학사정관제가 그 출처다.

물론 그간 우리만의 맥락으로 많은 변화와 변형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교육 평가체제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단순히 외국제도 차용 여부가 아니라 대학 서열공식과 우리 평가를 바라보는 대사회적 인식이다. 논·구술 등을 통해 종합적 사고와 융합적 사고방식(Mindset)을 묻고 평가해 인재등용을 하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영국의 A레벨, 프랑스 바칼로레아, 미국의 AP 그리고 독일의 아비투어 등 상당 국가들에서는 거의 서술식 논·구술식 평가제를 통해 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한다. 심지어 일본도 IB 도입에 열정적이고 중국 가오카오도 2020년부터 객관식 시험을 없앤다고 이미 천명했다. 변화하는 평가 방법의 대부분이 서술식이다. 대학에서는 이를 통해 아이들의 사고와 창의를 묻겠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논술식 평가제도가 공정성 시비와 사교육 범람, 공교육 정상화 등 국가교육과정에 반하는 아킬레스건이 되다 보니 대학은 점점 없애고 있고, 교육부는 딱 떨어지는 수능정시의 수치와 객관식만 강조한다.

이런 교육 바탕에 우리나라식 평가, 외국식 평가를 애써 구분 짓는 것은 어떻게 보면 초점에 벗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서당이나 향교로 돌아갈 순 없지 않나? 다행히 학생부종합전형의 제시문 기반 논·구술 면접이 IB와 비슷한 괘를 유지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AP vs IB, 미국에서 AP를 IB보다 더 선호하는 이유는?

미국은 IB를 받아들이기 전 이미 AP가 대세를 이루던 나라다. 미국의 경우를 살펴봐도 무조건 IB가 좋다 안 좋다는 이분법은 곤란하다. 일단 미국 IB 운영의 현재를 간단히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소위 주립대 이상 명문대는 적어도 AP(Advanced Placement) 프로그램이나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프로그램 둘 중의 하나는 이수해야 입학을 허가하는 학교가 많다. 특히 이공계나 의대 같은 경우가 그렇다. 모두 대학 수준의 코스와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고등학교 프로그램이지만 미국은 AP를 선호하는 학교와 대학교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첫째, AP는 학교에서 일반과정과 별도로 과목별 선택제로 운영할 수 있지만 IB는 학교자체가 인증을 받아야 DP 과목 선택제(고교), MYP(중학교)는 과목 전면제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IB 인증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학생개인이 시험을 칠 수 없거나 내신에 준하므로 응시도 한 번으로 제한적이다. 하지만 AP는 독학과 복수 응시가 가능하다.

둘째, IB 시험이 AP보다 더 비싸다. IB는 매년 등록비 $172에 시험 당 $119 수수료를 내지만 AP는 추가 비용 없이 시험 당 $94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IB를 도입하면, 현지 물가 가감제가 없는 이상 전 세계 공통이므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한글화를 했다고 해서 응시료가 더 싸지진 않는다.

IBO와 IB 협정서까지 공식적으로 맺어놓고 이걸 왜 교육청에서는 대외비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비슷하거나 한글화 용역이 들어갔다면 조금 더 웃도는 정도일 것이다.

셋째, 대부분 미국대학에서 AP 시험과 더 높은 수준의 IB 시험(Higher-level IB courses)에는 학점을 부여하지만 표준 수준의 IB 시험(Standard-level IB courses) 학점은 인정하지 않는다. AP를 수행하는 학생들과 격을 맞추기 위함이다.

이를 우리나라에 맞춰 해석하면 IB를 진행했을 때, 소위 상위권 대학들은 고득점 점수를 받았거나 높은 수준의 IB 시험(Higher-level IB courses) 점수 보유 학생들을 선호할 공산이 크다. 어차피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 입시경쟁이 있는 한 IB 도입이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늘 생각해 왔다.

넷째, AP는 주로 교재 심층학습 중심인 데 반해 IB의 토론식 학습 중심이다.

IB의 서술 평가시스템을 자세히 모르는 대학교수들이 많아 AP를 더 선호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미시간 대학교(Michigan Univ.) 같은 경우 IB에 더 많은 학점을 부여한다. 스탠퍼드(Stanford) 대학이나 UC 보울더대(UC Boulder)에서도 IB와 AP 학점 목록이 거의 같거나 일부과목에선 IB가 AP보다 더 많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

다섯째, 10~11학년에 주로 선택해 마음대로 선택 이수할 수 있는 AP가 미국입학시험 ACT/SAT 시험에 IB 보다 조금 더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IB는 전 세계 국제고 중심의 교육과정이라 AP를 조금 더 선호한다고 한다.

다시 위 미국상황을 우리나라 IB에 비춰 각각 대입해 해석해 보자.

▲우리나라 학생들도 IB 학교에 가지 않으면, 수업을 받거나 시험 응시 선택이 불가능하다. 또 내신의 문제로 귀결되면 기존 시험형태와 많이 달라 IB 학교 지원 시 충분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경우 잘못 둔 바둑돌처럼 패착이 생길 수도 있다.

▲수십만원의 응시료를 지원받지 않는 이상 재정적 부담이 크다. 공교육에 지원된다 해도 국민 세금이 쓰이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IB를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입학요건에는 학생부종합전형에 진입할 수 있어 학교단위 모든 교육활동은 모조리 전형자료로 쓰일 수 있다. 이는 일반학교가 역차별을 받는 풍선효과나 입시의 또 다른 경쟁트랙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의 최상위권대학 재외특별전형 대상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몇몇 입학사정관교수들 혹은 IB 외부채점자 교수들을 제외하면 아직 평가를 논할 만큼 IB에 대한 식견이나 담론을 펼칠 중·고교 및 대학교 교육자들이 현저히 부족하다. 이는 최초 토대와 바탕을 만들 때 충분한 기반 조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남은 준비 기간 중 전문 채점가를 다수 양성한다지만, 오히려 전문가를 먼저 양성하고 제도화했어야 하는 시말적 오류가 짙다.

▲미국도 AP처럼 자기 나라의 풍토성과 맥락에 좀 더 자연스러운 걸 선호하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엄연히 9년간 지속해 온 학생부종합전형이 버젓이 존재한다. 이 프레임 속에 어떤 교육적 함의를 충분히 담지 않은 채 입성하면 오히려 불협화음을 초래할 수도 있어 사전에 충분한 대화와 논의 및 연구가 필요하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IB를 우리나라에 도입한다고 해서 꼭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우에 맞춰 좀 더 인색하게 정리를 해 보았지만, 그 이상의 좋은 면면들도 있기에 도입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