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사진=픽사베이

성현기(가명).
7년 전. 한 해는 그 아이의 사회교사로, 그 다음 해는 담임교사로 그렇게 우리 인연은 시작되었다.

아이가 2학년 때, 수업시간마다 컹컹 거리며 쏟아내는 기침은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감기가 한번 걸렸다하면 늘 기침감기였고 두어 달씩 컹컹거리는 기침 소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아이의 엄마는 뭘 하느라고 애가 저렇게 기침을 하도록 방치할까. 아이의 기침이 신경 쓰이다 보니 급기야는 아이의 어머니가 다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더는 참지 못하고 담임교사에게 물으러 갔다. 선생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는 집을 나가셔서 할머니랑 아버지랑 살았습니다. 할머니도 중2 때 돌아가셨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아버지는 일용직 공사현장 등을 전전하는 비정규직 노무자이고. 아버지가 지방에 일하러 가면 혼자 숙식을 해결하고 일어나 등교해야 합니다.

그랬다. 치아가 누렇게 아기 이빨같이 조그맣게 삭은 것도, 교복이 늘 꼬깃꼬깃 세탁기에서 한밤 잔 듯 다림질도 안 된 채 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싶었다.

‘오지라퍼’의 간섭질이 다시 스멀거렸다. 집에 아이들 먹이려 주문했던 배, 생강즙을 넉넉하게 두어 박스 더 시켰다. 수업 마치고 사회실을 나가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이거 종례시간에 들러 가지고 가라.”
“뭔데요?”
“너 기침이 하도 안 떨어져서 쌤이 우리 애들 꺼 주문할 때 더 시켰다.”
“괜찮은데요.”
“이눔아! 내가 안 괜찮다. 너 기침 안 떨어지면 폐렴으로 가. 그리고 후딱 나아야지. 계속 달고 있음 안 돼! 배즙 값은 나중에 너 졸업하고 갚든가, 말든가.”

그렇게 들려 보냈다. 두어 박스를 다 먹고 날 즈음 기침이 잦아드는 눈치였다.

그렇게 만났던 아이가 고3 때는 담임으로 만나게 되었다. 막상 담임이 되고 보니 간섭하고 챙길 일이 더 눈에 띄었다. 열 받을 일이 늘었단 뜻이기도 했다. 지각을 밥 먹듯 했고 일상생활이 엉망이었다. 

세탁이 되지 않은 체육복은 사무함 속에서 쉰내를 풀풀 날리며 곰팡냄새까지 날 지경이었고, 구겨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젖은 채 입고 오는 교복이나 체육복은 늘 교실 안에서 괴로운 냄새의 ‘진원지’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틈만 나면 축구나 농구를 하곤 했는데 땀에 젖은 체육복을 그냥 사물함에 쑤셔 넣는 탓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교실 안에서 굴러다니는 체육복과 헌 체육복들을 수거 해다가 학교 세탁기로 빨았다. 사유를 설명하고 학교 안 청소아주머니께 다른 비품 빨 때 같이 좀 돌려 주십사하고 부탁을 드렸다.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학교 안 ‘체육복 보모’역할이 시작되었다. 새로 빨아 섬유유연제 향기가 폴폴 나는 뽀송뽀송한 체육복을 아이의 사물함에 넣어주고 입었던 체육복은 교탁 아래 칸에 넣어두고. 본인도 쾌적한 체육복을 입는 것은 기분이 좋았던지 별다른 이견 없이 정해진 대로 룰(?)을 지키며 실천하고 있었다. 

문제는 지각이었다. 아버지가 지방에 일하러 가시면 깨워줄 사람이 없으니 지각을 밥먹듯 했다. 휴대폰알람 쯤이야 다시 끄고 혹은 이불 속에 파묻어 버리고 계속 자버리곤 했다. 학교에 제시간에 안 나타나 전화해도 소용없었다. 전화를 끄거나 이불속에서 휴대폰 혼자 부르릉 거리면 그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강력하고 파격적인 알람이 필요 했다.

사진=픽사베이

알람시계를 사주랴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람시계를 사주기로 하곤 바빠서 며칠을 미뤘더니 애들한테 동네방네 ‘담임은 뻥쟁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성격 차분하고 조용한 반장이 하루는 와서 ‘선생님, 현기가 선생님께서 알람시계 안 사주신다고 말이 많습니다.’ 하고는 사라지 길래 알았다.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아니, 내가 안 사준대? 며칠 늦는다고 그 야단이야? 내가 그동안 지한테 한 것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싸가지 없이 나올 수가 있지? 고맙다고 말은 한마디 못할망정! 뭐가 어떻다고?’

생각해보니 그 녀석은 내게 단 한 번도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뭘 그리 잘 못했단 건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감사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니었다지만 예의가 없어도 한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혼자 부글거리다가 오늘은 기필코 시계를 사서 내일 그 녀석 코앞에 던져주겠다고 다짐하고는 마트에 가는 길이었다. 

시동을 걸고 가는 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시끄러운 알람시계를 사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아이를 생각하며 가고 있었다. 

그 때 문득 떠올랐다. 엄마!

아이의 엄마. 핏덩이 일 때 헤어져 엄마 정도 모르고 자란 아이. 대부분의 어린애들은 엄마와 만나 말하기부터 기본적인 예의도 배우는 것이 사실이다. 어쩜 가장 기본적 사회화 기관이 가족이고 엄마와 아빠다. 그런데 그 아이의 경우 엄마는 어릴 때 아이를 버렸고, 아버지는 사는 게 바빠 아이와 대화다운 대화는 해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응석이나 몇 마디 받아 줬을 테고, 아버지와의 대화는 일방적인 요구 외엔 대화답게 나누어 본적조차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급식비 주세요.’, ‘책값 주세요.’가 어쩜 전부였을지도 모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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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뭘 기대 했단 말인가. 아이의 옷을 빨아 입힐 때 인사를 받고자 했단 말인가.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울 때 고맙다고 알아주길 바랬었단 말인가. 알람시계를 사주면 아이가 고맙다고 인사할 줄 알았단 말인가. 

갑자기 숯불을 끼얹은 듯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콱 막히는 듯 했다.

부끄러웠다.
배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이는 대화다운 대화를 배운 적도, 자신에게 감사한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진심을 전달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을지 모르는데! 오히려 시간을 가꾸로 돌려 혹시 내가 아이에게 서운한 티를 낸 적은 없을지, 감사하단 인사를 기대하며 했던 행동은 없는지 복기해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가진 알량한 현장경험으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상담을 해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나의 오만이 어쩜 아이들에게 그간 상처로 작용 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나마 현기는 툴툴 거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떠들기라도 했지만 그렇게도 못하며 속으로만 끙끙 거린 아이가 없었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부로 전문가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상담 전문가.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진짜 교사.

 

그렇게 필자는 그 학년의 2학기 수시를 마무리 지으며 바로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교육심리(상담 전공)의 문을 두드렸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선무당이 되어 누구를 또 다치게 하려나 싶은 걱정과 안타까움이 들자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그 길로 나는 1급 상담 전문교사 자격과 교육학과 학교상담 석사 학위에 도전했고 늦깎이 학생답게 4년 만에 겨우 목표를 이루었다. 다시 ‘제2의 성현기’를 만나도 이제는 상처주지 않고 제 길 가는 아이를 잘 응원해 줄 수 있는 초보 상담자가 되었다. 

비는 내리고 불순한 기후 탓에 여기저기 쿨럭 거리는 기침 소리를 듣다 문득 떠오른 얼굴이다. 지금 쯤 멋진 청년이 되어 있을 현기를 응원한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