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형극 어머니 여영숙 현대인형극회 원장 "인형극, 다시 재조명 받길"
밤새 한땀한땀 수작업 2만여점 인형..."새 생명 찾아줄 박물관, 학교 건립하고파"

여영숙 현대인형극회 전문 아카데미 원장이 지난 50년을 인형극회와 함께하며 모은 2만여점의 인형이 보관된 경기 김포의 한 창고. 여 원장은 인형에 먼지가 끼고 습기라도 찰까 하나하나 비닐로 씌우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진=지성배기자
여영숙 현대인형극회 전문 아카데미 원장이 지난 50년을 인형극회와 함께하며 모은 2만여점의 인형이 보관된 경기 김포의 한 창고. 여 원장은 인형에 먼지가 끼고 습기라도 찰까 하나하나 비닐로 씌우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2019.05.02(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1974년 KBS 부리부리박사, 1981년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 1983년 EBS 딩동댕 유치원, 1993년 KBS 혼자서도잘해요.

인형극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알려진 방송 프로그램의 뒤에는 현대인형극회가 있었다. 1961년 KBS 개국과 함께 창립한 현대인형극회는 KBS를 넘어 방송 3사의 인형극을 모두 담당하며 그 명성을 쌓았고 대한민국 대표 인형극회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지난 60년 가까운 극회의 역사 속에서 50년 세월을 지켜온 여영숙(66) 현대인형극회 전문 아카데미 원장. '부리부리박사'를 연기하고, EBS '꼬마 요리사'에서 배추아줌마, 여운계씨와 함께 "만들어 볼까요" 도치 연기 등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인형극 속 주인공이었던 그는, 지금도 서울, 경기, 인천 등지에서 인형극 연수와 아이들과 노인 등을 위한 소규모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일 인천 문화의 집에서 만난 여 원장은 2000년 인천 역사를 담은 인형극 ‘비류왕자의 꿈’ 공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첫 마디는 역시나 “인형극은 내 삶의 전부이자 내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은 방송에 단 몇 초가 나와도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같은 표정이 하나도 없는 것은 공장처럼 찍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을 제작하는 곳이 전무할 당시 현대인형극회는 방송 3사의 인형을 모두 제작했다. 수작업으로 인형을 만들어야 하는 제작 환경 탓에 극회 직원들은 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회사를 떠나지 못했다.

“인형극을 기획하고 그에 맞는 인형을 만들고 대본을 구상하고 연기를 지도하는 것은 모두 극회의 몫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인형극이 방송을 통해 생명을 얻었을 때의 희열은 고생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었다.”

1960년대부터 인형극 인형을 만들어 온 현대인형극회 인형이 보관된 창고에는 기자에게도 익숙한 인형이 보였다. 여 원장은 이 인형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기증할 뜻을 내비쳤다. 사진=지성배기자
1960년대부터 인형극 인형을 만들어 온 현대인형극회 인형이 보관된 창고에는 기자에게도 익숙한 인형이 보였다. 여 원장은 이 인형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기증할 뜻을 내비쳤다. 2019.05.02(사진=지성배 기자)

지난 60년간 대한민국 인형극의 역사를 써 온 현대인형극회가 만든 인형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여 원장은 이런 궁금증을 알아차린 듯 인형을 보여주겠다며 경기도 김포에 소재한 창고로 안내했다.

“내가 현대인형극회에 몸담으며 직원 동료들과 함께 만든 인형을 그간 이 곳에 하나씩 모아 두었다. 이곳은 대한민국 인형극의 역사다.”

여 원장이 안내한 창고의 문을 열자, 양옆 2단으로 진열 보관된 인형이 눈에 한 가득 들어왔다. 2만점이 넘는 인형들이 헹여나 습기라도 찰까 하나하나 비닐을 씌워 보관한 정성에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부리부리박사, 아라비안나이트, 호돌이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인형들이 그렇게, 그곳에 보관돼 있었다.

“인형극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40년 전부터 하나하나 모아 왔다. 이 인형들은 관중 앞에서 박수를 받아 다시 생명을 얻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진정으로 생명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기증하고자 한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지자체와 기관 등에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많이 알려진 일부 인형의 전시만을 원했고, 인형극 문화에는 관심이 없어 모두 거절했다고. 차라리 인형을 모아둔 창고에 불을 지르고 싶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는 여 원장은 사람들의 엇나간 관심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형들이 생명을 얻는 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인형들의 스토리가 다시 세상에 읽혀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때 가능하다. 국내에서 전시와 인형극을 함께 운영하자는 제안이 없다면 해외로의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여영숙 원장의 평생이 담긴 이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마침 올 가을 드디어 김포의 한 예술회관에서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전시를 시작으로 사회적으로 한국 인형극의 역사가 다시 재조명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인형극 학교를 만들고 싶다. 대한민국의 인형극 역사의 산 증인으로써 나의 사명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인형극의 전통을 다시 세우고 싶다.”

지난 50년간 직접 대본을 쓰고 하나하나 바느질을 해 온 그의 손에서 인형들이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인형극이, 인형극의 역사가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게 만들 수 있을까. 여영숙 원장이 만들어갈 인형극 역사 재조명 작업에 관심이 쏠린다.

미추비류연극단(대표 김선미)이 인천 연수구 관내 학교의 요청을 받아 공연 준비중인 '비류 왕자의 꿈' 연습 장면. 단원들은 인형극이 지친 삶에 엔돌핀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2019.05.02(사진=지성배 기자)
미추비류연극단(대표 김선미)이 인천 연수구 관내 학교의 요청을 받아 공연 준비 중인 '비류 왕자의 꿈' 연습 장면. 단원들은 인형극이 지친 삶에 엔돌핀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2019.05.02(사진=지성배 기자)

"인형 만들고 대본 짜며 역할극까지"...융합교육 실현 '효자템' 

▲인형극이 교육에 들어오면...

여영숙 원장은 성폭력 예방, 다문화 및 장애 인식 개선, 노동 및 노인 인권 인식 개선 등 사회 문제를 지자체와 함께 인형극으로 소화하고 있다.

“인형극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데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감정을 이입하는 활동은 아이들에겐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실버세대에게도 제2의 삶을 제공한다.”

여 원장에게 10년간 인형극을 배웠다는 이인순(전 한양초) 교사 역시 현장에서 인형극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사는 “국어과에서 연극이 의무가 됐다. 연극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 동료와 협동하는 능력 등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할 수 있다”며 “특히 인형극은 인형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고 대본을 짜며 역할극까지 하므로 융합 교육을 실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반복되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윤활유가 되어 삶을 풍족하게도 해준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여 원장의 지도를 받아 2000년 인천 역사를 그린 인형극 ‘비류 왕자의 꿈’을 인천 연수구에 소재한 학교 공연 준비에 몰두 중인 김선미 미추비류연극단 대표는 “인형극으로 인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며 “힘든 준비 과정을 거쳐 연극을 무대에 올렸을 때 얻는 성취감,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며 들리는 박수소리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은 삶의 활력으로 이어진다는 것.

곧 70살이 된다는 미추비류연극단 단원 역시 “인형극은 이 나이에도 가능한 예술 활동”이라며 “내 인생의 윤활유가 되어 제2의 삶을 사는 것 같다”는 말로 여 원장과 연극단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