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사진=합합엘
사진=합합엘

[에듀인뉴스]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으니, 먼저 정의부터 분명히 하기로 하자.

원래 아재는 삼촌뻘 되는 친척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하지만 요즘 이 말은 거의 표준어가 되면서 가부장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중년 이상의 남성으로 뜻이 바뀌었다. 물론 가부장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젊은 남성도 있지만, 이들은 주로 젊꼰(젊은 꼰대)이라 불린다.

가부장적 가치관이란 공동체에서 가장 나이가 많거나 권위 있는 남자가 그 공동체의 가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며, 다른 구성원들은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 까닭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에 기반한 각종 규범과 문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가장’이다. 자신을 ‘가장’이라고 생각하며, 이 지위를 직장이나 다른 사회생활에도 끌고 와,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어리거나 여성인 사람에게 군림하려는 40대 이상의 남성이라면 ‘아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갖춘 셈이다. 만약 이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남성에게는 철저히 복종하거나 아부까지 한다면 충분조건까지 갖춘 꼴이 된다.

아재는 말이 많다. 우리나라 인터넷 게시판, 뉴스 댓글, 각종 SNS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집단이 바로 이 아재들이다. 우리나라 10대, 20대가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많이 옮겨간 이유 중 하나로 페이스북이 심지어 ‘급식체’까지 흉내 내는 아재들 때문에 시끄러워서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아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이야 말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정의로운 집단처럼 들린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것들이나 여자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아재가 아재를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60대 이상의 아재들은 전쟁과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것들을 가르치려 든다. 50대 아재들은 독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세상 좋아진 것 모르는 어린 것들을 가르치려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무게 잡고 내 놓는 말들은 젊은 세대 혹은 여성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 또는 형편없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속좁은 것들이다.

아재만 탓할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가치관과 시야를 벗어나기 어려울 뿐이며, 우리 사회가 그들을 좁은 세상에 가두어 둘 정도로 낡고 편협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언론에서 ‘가장’이라는 말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편협함과 낙후를 증명한다.

이런 아재들의 시대에 뒤떨어지고 속좁은 견해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분야가 바로 교육, 특히 공교육 교사에 대한 견해다. 이상하게도 아재들은 평소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일년에 딱 이틀만 갑자기 교육 전문가로 변신하여 엄청난 훈수를 쏟아낸다. 이 이틀 동안 광분하는 아재들 때문에 갑자기 공교육이 언론의 중심에 잠시 떠오른다.

그 이틀은 바로 스승의 날과 수능일이다.

아재들은 수능일에는 주로 교육에 대한 자기 나름의 탁월한 식견을 자랑하며, 우리나라 공교육 체제 전반에 대해 비판한다. 물론 그 내심에는 자기가 학력고사나 수능 잘 쳤다는 자랑이 숨어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수능일이 아재들의 교육체제에 대한 식견을 뽐내는 날이라면 스승의 날은 아재들이 교사를 비평하는 날이다. 교육이 유·초·중등만 있는 게 아니고, 교원에는 교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도 있는데, 아재들은 이상하게 OECD 평균을 훨씬 넘어서는 성취를 내고 있는 유·초·중등 교사에게만 훈수를 두고, OECD에 차마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운 수준인 대학 교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스승의 날에 생산되는 아재들의 이야기는 두 종류다. 하나는 자기들 학교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30여 년 전에 교사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과 고통을 받았는지 자랑하는 것이다. 회초리,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망치 등 온갖 흉기들이 교사가 휘두른 폭력의 도구로 등장한다. 물론 촌지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이 이토록 형편없는 교사들이 있는 학교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며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너무도 뻔한 이야기, 스승은 어디 가고 직업인으로서 교사만 있다는 ‘요즘 것들’ 타령의 변형이다.

도대체 이 두 이야기가 어떻게 동시에 말해질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온갖 흉기로 두드려 패고 촌지 받는 교사들이 ‘참스승’이란 말인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까닭은 뭔가 식견이 있는 척 하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말하기 때문이다.

아재들은 왜 교사에 대해 쉽게 말할까? 아마도 교사를 대표하는 성별이 ‘여성’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이 아재들이 한창 직업 선택을 고민하던 시절 교사는 ‘여자일로는 최고’라고 불렸다.

교직에 대해 사회적으로 역할을 높게 평가해서가 아니다. 남자가 하기에는 째재하고 시시한 일이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로서는 최고난이도의 일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었다. 이 논리는 아직까지도 심지어 여성들에게조차 흔적이 남아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사라는 지위는 남자의 하층과 여자의 상층이 교집합을 이루는 영역이었다. 여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 역시 남자가 하자고 들면 얼마든지 더 잘 할 수 있지만, 남자는 이런 째째한 일 말고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맡기는 그런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재들은 ‘여자일’인 교육을 자기들이 하는 일보다 낮은 차원의 일로 내려다 보고, 언제든지 훈수 둘 준비가 되어 있다. 이는 마치 이들이 육아와 가사노동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면서도 그 일의 중요성은 인정하지 않고, 단지 ‘부엌데기’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아재들은 ‘부엌데기’ 일을 단지 맡기고 시킨 것이지 여성의 관할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은 하지 않지만 간섭은 한다. 여자가 더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가 하기에는 하찮아서 맡긴 일이기 때문에 실무는 하지 않더라도 관리감독권은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재들은 이른바 집안일에 대해 간혹 간섭하고 훈수를 두고, 때로는 자기 딴에 한수 가르쳐 주면서 가부장의 위엄을 세운다. 청소 상태에 대해, 요리에 대해 공연히 트집 잡는 그런 가부장의 모습으로.

사진=픽사베이

개인으로서 아재가 집안일에 대해 툴툴거리는 훈수 짓이 집합으로서 아재가 되면 교육을 향한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교사를 나태한 집단으로, 부패한 집단으로, 기타 여러 질책과 감독을 받아야 하는 집단으로 보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타이틀은 ‘스승의 날 기획’이라고 한다.

어차피 각 신문사의 편집권을 장악하고 있는 무리들, 교육 담론에 대해 부당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는 교수들도 모두 아재다. ‘스승의 날’이라는 기념일을 정하고 이걸 5월15일로 삼은 주체 역시 교사가 아니라 아재들이다. 어쩌면 아재들은 정기적으로 여자들(교사)에게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 관리감독권을 행사하는 날로 이 날을 지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재들에게 고한다. 그대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거북하며 불필요하다.

그런 거창한 교육관심과 식견을 뽐내기 전에, 먼저 댁의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더 많이 참여하라.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양육에 필요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아내와 동등하게 양육에 참가하는 아빠(이들은 아재가 아니라 아빠다)들은 교육과 교사를 무조건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이러쿵저러쿵 하지도 않으며, 적어도 스승의 날에는 자제한다.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