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흔들리는 입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경기 위례한빛고 교사

[에듀인뉴스-실천교육교사모임 공동기획: 흔들리는 교육, 그리고 교사]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싶고, 학생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만, 학교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에듀인뉴스>는 신학기를 맞아 교육이 흔들리는 원인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따른 각종 법령의 등장, 교사 패싱 교육정책 등 현안을 집중 조명하고 교사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10부작 신학기 기획을 마련했다.

출처=교육부 네이버 블로그
(출처=교육부 네이버 블로그)

'흔들리는 입시제도'의 산물, 2021학년도 대입 전형

입시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정도가 아주 심해 입시의 바다를 항해하는 제도에 몸을 싣고 있는 사람들은 멀미하고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입시제도의 흔들림은 고려대가 발표한 2021학년도 대입전형에서 시작되었다.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30%까지 확대하라는 교육부 지침을 어긴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긴 것은 아니다. 학생부교과전형을 30%까지 늘리면 수능 위주 정시전형 30%는 안 지켜도 된다는 단서 조항을 넣어놓았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조항이 왜 삽입되었는지 배경을 알지 못한다.

대학을 차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방대학이 미달 사태를 빚거나 앞으로 빚을 예정이다. 이들은 이제는 미달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오래전부터 조짐을 보여 왔다.

정시까지 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학생부교과전형으로 많은 학생을 뽑아 왔다. 이런 지방대학들에게까지 일률적으로 30%룰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이들 대학은 커트라인이 낮은 삼류 대학이니 수능 위주 정시전형 30% 룰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까딱 잘못하면 대학 서열을 공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부교과전형의 비중이 30% 이상이 되는 대학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학생모집이 어려운 지방대학은 수능 위주 전형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 대학들의 공통점이 학생부교과전형의 높은 비중이었다.

고려대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학생부교과전형을 30%까지 늘림으로써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늘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정시 인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멀미를 일으킨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교육부는 발끈했다. 설마 고려대 같은 대학이 학생부교과전형을 30%로 늘리겠냐는 판단이었는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은 셈이 되었다. 교육부의 반응은 그런 의미에서 이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지방대를 생각해서 만든 예외 조항을 SKY에 속해 있는 대학이 활용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교육부가 그동안 대학들이 수시 전형을 늘려오는 것을 장려했다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교육부의 지원 아래 그 비율이 늘어왔는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시 확대 여론에 밀려 그동안의 정책 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입장을 바꾼 교육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정치의 투입-산출 모델까지 들이밀지 않더라도 강력한 정시 확대 여론이 있었고, 이를 정치권에서 받아 교육부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교육부 차관이 대학들에 전화를 걸어 정시를 늘려달라는 부탁(?)을 한 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대입제도 개편 합숙토론 모습. 사진=숙의토론 참여자 제공
대입제도 개편 합숙토론 모습(사진제공=숙의토론 참여자)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이상한 대입제도개혁

대학, 교육부, 정치인을 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욕받이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욕을 하면 우리 입시 문제가 해결될까? 그게 가능했다면 교육문제란 게 애초에 존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이해당사자에게 게임의 룰을 맡겼다는 것에 있다.

학종에 불만이 많은 계층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특목고와 강남 지역이 움직였다. 정시 지원을 위한 재수 비율도 높고, 내신 비중이 높은 전형에 대한 피해 의식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속해서 낮아지는 정시 비율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가 있다.

세대로는 학력고사 세대가 가세하였다. 이들은 객관적 선다형 시험에 대한 강한 추억이 있다. 그들은 학력 자본을 바탕으로 부를 일구었다. 학력고사 승자들의 자녀가 방금 언급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면 학종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는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해당사자가 끼어들었다. 바로 대형 사교육 업체이다. 공교육에서 제공할 수 없는 대학 서열화를 전제로 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언론 기관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학종과 정시 전형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직결되어 있다. 이들이 언론에서 힘을 쓸 수 있었던 것 역시 수능 시험 후에 수집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입시 정보였다.

재밌는 것은 이들 각자가 내세운 명분이었다. 강남과 특목고는 학종이 깜깜이 전형이라 하였고, 학력고사 세대는 귀족 전형이라고 비난하였다. 대형 사교육업체 대표는 학종이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하였다.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대학입시를 깜깜이 전형이라고 비난하고, 학력 자본으로 부를 일군 중산층이 귀족을 내세웠고, 사교육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사교육비 증가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는 것을 느낀다.

강남과 특목고는 좋은 대학에 더 많이 보내지 못해서 불만이었던 것이고, 학력고사 승자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에서 꽤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또한 사교육 업체는 직업적 이해관계를 숨겼다.

실은 자기들이 더욱 대학에 많이 갈 수 있는 제도를 갈구하는 목소리였고, 자신들이 성공해온 방식이 영속적이길 바라는 목소리가 이념적 외피를 뒤집어쓴 것이었으며,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것이었다.

이런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이 교육 정책의 투입 과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니 정책 산출물인 대학 입시가 온전하길 바란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데, 단순한 사공들이 아니라 각자의 계산기를 들고 배를 움직이려 하였고, 배는 갈 곳 몰라 하며 요동쳤다.

학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의 해악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일부 학부모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입시가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공정한 게임의 룰을 이야기하지만, 다들 속내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보편적인 룰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입시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입시제도에 대한 논란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것은 대학 입시가 결코 공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해준다.

나라 안에 A고등학교와 B고등학교, 단 2개의 고등학교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대학은 S대학 하나만 있다.

만일 A고등학교의 진학률이 높아진다면 그건 B고등학교의 진학률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역으로 B고등학교의 진학률을 개선하기 위하여 국가가 노력하면, 그 이야기는 거꾸로 A고등학교의 진학률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여기서 고등학교의 수가 몇백 개로 더 늘어난다고 해서 본질적 원리가 바뀌지 않는다. 결국 국가는 짚신 장수 아들과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공론화 뒤에 숨은 국가..."수요자 아닌 전문가 목소리 필요"

국가는 공정한 입시제도를 추구해야 하고,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냉철한 심판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때로는 강력한 어필에 시달릴 수 있고, 조그만 실수로 트집이 잡혀서 경기 진행을 보이콧하겠다는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럴 때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순간에 공론화라는 명분으로 대중들 뒤에 숨었고, 그 결과는 갖가지 이해관계의 봉합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30% 룰이었고, 그러기에 공정의 외피를 둘러쓴 매우 불공정한 룰이라는 의심이 합리적이다.

특정 지역, 특정 직업 집단을 중심으로 수능에 대한 선호도가 나타난다면 그건 입시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사회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첩경이다. 사교육을 유발하니 학종을 없애야 한다는 사교육업체의 주장에서 모순을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물적 토대를 없애기 위한 숭고한 사명감으로 그런 주장을 펼친다는 건 매우 순진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입시는 이력으로서 학력이 아니라 공부의 힘으로서 학력에 집중해야 하고, 문제 풀이 실력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뺏고 빼앗는 제로섬 게임의 장이 아니라, 우리를 모두 행복하게 하는 플러스섬 게임으로 룰을 바꿔나가야 한다. 현실주의란 미명 하에 불합리한 현실을 정의로 호도하는 교육 담론 시장의 구조도 개혁해야 하고, 이해당사자들의 무분별한 개입으로부터 교육정책을 보호해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그동안 너무나 수요자중심주의에 경도되어 왔다. 이제 전문가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공론화위원회의 실패가, 그로 인해 갈피를 못 잡는 입시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진정한 전문성을 가진 세력이 입시제도의 키를 주도해나갈 수 있을 때 배는 안정감을 느끼고 망망대해를 항해하게 될 것이다.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경기 위례한빛고 교사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경기 위례한빛고 교사

 

■ 연재 예정 순서=1. 교육법으로 알아보는 마일리지승진제/ 2. 극한직업: '학폭' 담당 교사의 삶/ 3. 현장교사 없는 교육과정: 이대로 표류해야하나/ 4.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 5.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정치 배제를 말하는가/ 6. 상상을 더하는 학교 공동체 & 학교 교육과정/ 7. 교사의 행정업무가 상담에 미치는 영향/ 8.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9. 누구를 위한 특별교부금인가/ 10. 흔들리는 입시-어디로 가야 하나/ 11.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