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혜 서울 용마중 교사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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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교단에 서며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후회 없이 표현하자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사랑에 서툰 아이들을 직접 겪어보니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것은 바로 ‘사랑한다’는 말 그 자체였다. 지금은 적응이 되어 습관처럼 말하지만 입 밖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어린 시절 나에게 매주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셨던 선생님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뵈었던 교장 선생님이시다.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학생들에게 교장 선생님은 늘 먼 존재로 느껴진다. 수업을 받거나 생활지도를 받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 새로운 교장 선생님께서 오셨다는 말에도 우리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교장 선생님은 전에 없던 존재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마다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성북 어린이 여러분, 교장 선생님은 어린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소위 말하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사랑받는 성북 어린이들은 처음에는 선생님의 인사말에 몸을 배배 꼬며 못견뎌했지만 이내 그 인사말에 적응했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 특유의 말투를 흉내 내며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유별난 제자 사랑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체력은 국력이니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도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건강 달리기였다. 우리는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책가방을 운동장에 던져두고 달리기를 했다. 추우나 더우나 아침에는 운동장 다섯 바퀴. 나는 예나 지금이나 땀 흘린 후 샤워 못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건강 달리기가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참 좋은 활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반별로 음식을 만들어 교장 선생님께 가져다 드릴 일이 있었다. 새하얀 플라스틱 접시에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오색 주먹밥을 가득 담아 떨리는 마음으로 교장실에 들어가던 기억이 난다. 긴장해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던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그 때 다정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느꼈다.

‘방송에서 하시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구나.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구나.’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카네이션 없는 스승의 날이 당연해질 정도로 사제 관계는 전과 달라졌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점은 그대로인 것 같다. 진심 어린 말씀 한 마디에 담겨 있던 교장 선생님의 사랑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