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재냐, 진도냐?...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과 '이해'
[칼럼] 교재냐, 진도냐?...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과 '이해'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5.2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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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 동국대 불교아동보육학과 교수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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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와 진도의 의미

[에듀인뉴스] 한 단위 수업의 시작과 끝, 한 학기의 시작과 끝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설렘과 회한을 안겨주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 단위는 아마 ‘학기’일 것이다. 학기의 시작과 함께 관심은 교재에 쏠리고, 학기 말이 다가오면 관심은 진도로 옮겨 간다. 교재와 진도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많이 변했지만, 학교현장에서 교재를 지칭할 때는 주교재인 교과서 한 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 그 과목은 어떤 교재를 사용하시나요?”라는 질문에서 교재란, 묻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교과서 한 권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의하면 교재란 ‘학문이나 기예 따위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재료’이다.

진도란 ‘일이 진행되는 속도나 정도’이다.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진도는 학기 초에 선정한 교재인 교과서 한 권의 내용을 학기말까지 다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진도를 많이 못나가서 걱정입니다. 두 단원이나 남았어요”라고 말할 때, 진도란 가르쳐야 할 교재 내용을 그동안 얼마나 가르쳤는지를 뜻한다.

"진짜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한 권의 단편 소설로 3년 가르친 선생님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2012년 8월에 발행된 책이다. 일본의 한 국어선생님이 시도한 수업과 그 선생님의 제자들 이야기가 담겼다. 이 책의 내용은 오래된 단편소설 한 권으로 중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3년 동안 가르치고 배운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과가 엄청났다. 가장 관심거리인 대학 입시는 물론 대학 졸업 후 직업세계로의 진출도 눈 부셨다. 어쩌면 그래서 책이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얇은 단편 소설 ‘은수저’ 한 권으로 3년 동안을 가르친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는 “진짜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짜 공부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배움의 즐거움을 느껴서 ‘배우는 힘’과 ‘살아가는 힘’을 익히는 것이었다.

이 선생님의 수업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자신이 체험한 것처럼 느끼고, 모든 구절을 정성스럽게 읽고, 학생들의 흥미에 맞춰 자꾸 옆길로 빠지곤 했다. 그 바람에 2주 동안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첫 한 달 동안 나간 진도는 겨우 두 쪽이었다. 그러나 교실은 늘 학생들의 탐구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주인공이 막과자 가게를 가는 장면을 읽을 때는, 학생들은 모두 한손에 막과자를 들고 먹으면서 들었다. 선생님의 인쇄물에는 ‘표현이 아름답다고 느낀 대목을 그대로 써보자. 그 이유도 써 보자’ 와 같은 제안과 빈칸이 있다.

이 선생님에게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 진도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야 직접 느끼고 즐기며 그래서 흥미가 생기고 계속 관심을 갖고 탐구하게 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성인이 된 학생 중 한 명은 “선생님은 가르친다기보다는 폭을 넓히고 깊이를 얇게 하여 마음껏 의문을 갖도록, 흥미의 대상을 찾도록, 그리고 거기에 점점 빨려 들어가도록 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도 학생들은 꺼질 줄 모르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앞을 가로막는 ‘벽’을 ‘계단’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교과서 없는 길을 잘 걸어가 대부분 탐스런 열매를 맺었다.

학교가 학기마다 한 권씩 가르쳐야 하는 국정 교과서를 뒤로 하고 단편소설 한 권으로 3년의 수업을 허락한 것은 더욱 놀랍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보면 어찌 이런 수업이 가능하겠는가.

'다양한' 교재와 '하나의' 교재..."중요한 것은 교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교과서도 아닌 단편소설로, 그것도 단 한 권으로, 3년 동안이나 수업을 한 선생님. 나는 내 수업을 돌아 봤다. 나는 교재를 정하지 않는다. 또 수업과 관련하여 진도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일이 업이 된 이후, 한 권의 교재를 정하여 하는 수업과 진도에 연연하는 수업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였다. 그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이 그 과목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가르쳐야 할 내용을 적절하게 잘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한 권의 책에 의존하는 수업은 그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지식과 이해, 경험의 폭을 제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들을 모았다가 한 학기 동안 대여해서 참고하도록 한다. 또 책을 개별적으로 구입하여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가능한 최근 발행된 책을 사도록 안내한다.

내 수업에서 사용하는 한 가지 교재는 여러 권의 다른 교재(교과서)를 참고하여 재구성한 PPT 자료이다. 그러나 이 자료의 수업은 한 학기의 1/3~1/4 수준이다.

예를 들어 발달 과목의 경우, 내가 재구성한 PPT와 학생들 자신의 영유아기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분에게 인터뷰한 내용, 학생들이 다녔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의 경험에 관한 글, 4명의 아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감문, 교육방송의 아기 성장 보고서 3편 소감문, 현재 방영 중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부분 발췌 동영상들, 발달 관련 최신 기사들, 학생들이 직접 촬영한 아이들의 행동과 행동 설명자료 등이다.

설명을 통해 배운 이론을 본인과 동영상의 아이들 행동에 관련시켜보는 토의와 토론이 수업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그동안 다양한 교재를 활용해 수업한다는 것에 일종의 자긍심 같은 것이 있었다. 또 학생들의 수업 반응도 매우 좋았다. 그러나 일본 선생님의 수업을 알고 나서는 한 권의 교재로 하는 수업과 다양한 교재를 활용한 수업에 대한 성찰을 하곤 한다.

결국 교재가 한 권이라는 것보다 그 교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일본 선생님은 한 권의 교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 몸으로 체득하게 하고 마음으로 느끼게 했다. 다양한 교재를 사용한 수업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많고 더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진도 또한 늦어서 혹은 너무 빨라서는 문제가 아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경험했느냐가 문제이다. 마음속으로 느끼고 몸으로 직접 체험하여 깊은 이해에 도달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는 진짜 경험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이 진짜 배움일 것이다. 우리 교육의 장에서 진도라는 용어가 사라질 수 있을까?

나정 동국대 불교아동보육학과 교수
나정 동국대 불교아동보육학과 교수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교바사)과 함께 합니다.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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