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민 홍익대 교육학과 학생

아이들의 치열함 깨우는 방법 모르는 교사, 자기 데이터가 없는 아이들
수업에서 깨우친 자기 존재 이유..."성취 경험을 맛보다"

[에듀인뉴스] 군대에서 2년간 공군 헌병으로 복무했다. 헌병 중에서도 초소를 지키는 경비소대에 속했는데, 남정네 2명이 초소를 5시간씩 지켰다. 그 무료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꿈에 대한 20대의 생각과 그 근원에 있는 무의식적 욕망을 파헤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학습자로 하여금 ‘원하는 삶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복무 기간 동안 초소에서 약 50명 정도의 초병들과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서 45~46명 정도 초병의 답변 유형은 매우 유사했다. 그 대화의 얼개를 소개하며 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을 2회로 나누어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겁에 질려 사회의 욕망을 제 욕망인 양 쫓고 있는 10~20대의 실태와 교육적 어려움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다룬다.

정준민 홍익대 교육학과 학생은 성남 구시가지에 있는 '함께여는청소년학교'에서 12명의 아이로 시작하여 11명의 고1 아이들과 10개월째 만나고 있다(wjd1wns2als3@naver.com). 사진=정준민 학생
정준민 홍익대 교육학과 학생은 성남 구시가지에 있는 '함께여는청소년학교'에서 12명의 아이로 시작해 11명의 고1 아이들과 10개월째 만나고 있다(wjd1wns2als3@naver.com). (사진=정준민 학생)

치열함은 왜 발휘되지 못할까?

양아치 교사, 모범적인 교사, 초임교사, 베테랑 교사. 어떤 교사든 아이들이 무언가에 치열함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켠에 있다.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법으로 치열하게 살아냈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그 마음이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표현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치열함을 발휘하게 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막연할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의 아키라를 보고, 또 실제로 그런 친구들을 몇 번 가르치게 되면서 그들이 지닌 교육적 가능성을 발현시키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면, 지금의 5%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아이의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1년 전부터 그런 고1 아이들 12명과 만나고 있다.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고 스스로에게 던졌던 ‘치열함은 왜 발휘되지 못할까?’라는 고민 끝에 ‘아이들이 정확히 자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것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답을 얻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하면 행복하고 무엇을 하면 불행한지를 알아야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럼, 아이들은 왜 자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까? 그 물음에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 못해서 다양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란 답이 나왔다.

뭘 해봐야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한 마디로 자기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겠는가?

학습된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이런 질문이 파생됐다. ‘다양한 시도를 왜 하지 못할까?’ 그 질문을 궁구하다 보니, ‘어차피 해 봤자 의미 없다, 나는 해도 안 된다는 학습된 무력감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누적된 실패 경험으로 갖게 된 그 무력감 말이다.

학습된 무력감이 문제라고 생각되자,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해도 안 된다는 학습된 무력감을 어떻게 하면 된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성취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가 나왔다. 계속 실패 경험만 하니까 뭘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성취 경험을 하게 되면 하면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이어 성취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참여하는 모든 아이가 성취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수업이 5~10%의 아이들에게만 성취 경험을 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겐 실패 경험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가 수업 장면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해결책으로 ‘모든 아이가 자기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자’는 안이 나왔다.

수업 장면에서 자기 존재 이유를 발견해야만, 아이가 온 마음을 다해 그 경험의 장으로 입장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성취 경험을 맛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내 곧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아이들을 이 기회의 장으로 어떻게 진입하게 할까?’ 아이들이 오지 않으면, 몸만 오고 마음을 내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성취 경험을 획득할 수 없지 않을까? 이 질문과 계속 씨름하다 보니, ‘아이들이 교사인 나를 자신의 성장을 촉진시켜줄 수 있는 사람으로 신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애들이 나를 안 믿는다면, 지금 여기에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을 테니까.

고민이 ‘신뢰관계 형성’에 다다르자 이는 당장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더 이상 막연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교육자로서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교사로서 아이의 신뢰를 얻으려면

당장 아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해결책으로 우선 사랑과 관심을 아이들에게 표현하는 것, 나의 잣대로 아이를 판단하지 않고 아이의 입장에서 표현해 내가 아이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 등이 나왔다. 그런데 위의 것만으로는 내가 아이들에게 성장을 촉진시켜주는 교육자가 아닌 ‘보모’로 인식되는 것 같았다. 내가 만만하고, 편하긴 한데 이 사람이 자신을 성장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은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든 기회의 장에 온 마음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단순히 보모가 아닌 자기 성장을 촉진해줄 사람으로 믿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을 만날 때 ‘간 보기’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자기보다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에 아이들에게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나아가 그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를 그대로 믿지 않고 마음 한켠에 숨어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요. 변화하고 싶어요’란 마음을 알아차려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런 변화하고 싶은 마음을 내가 지지하고 있음을 아이가 확인해야 나를 자기 성장의 촉진자로 믿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확신하게 됐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막연함이 사라지면, 힘들어도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들이 치열함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던졌던 질문과 답을 거꾸로 펼쳐 놓으니, 교사인 내가 치열함을 발휘해야 할 일들이 됐다. 성장의 단계가 만들어졌다.

1. 교사를 단순 보모가 아닌 성장 촉진자로서 믿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

첫 만남 때 아이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또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기가 싫은 기제가 발동해 교사와 학생 간의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내가 왜 이 곳에 오는지를 스스로 상기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또한 자발적으로는 하려 하지 않는 성장 과정의 첫 발을 뗄 수 있도록 강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는 그들에게 권위를 인정받게 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를 확인시켜준다.

2.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장 제공

연극을 활용. 조명, 소품, 배우, 연출 등 모든 아이가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도 가능하다.

3. 기회의 장에서 아이가 학습된 무력감을 극복하게 하는 1차 성취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퍼실리테이팅. 그리고 박수 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통해 아이가 온 몸으로 성취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연극을 했다면, 여러 갈등 상황이 나올 때 적절히 그 관계를 풀어줄 수 있는 퍼실리테이팅이 필요하다. 나아가 연극의 마지막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4.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2차 기회의 장 제공

대한민국이란 실질적인 장을 생각해보면 2차 기회의 장은 대개 교과 학습의 성취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더욱 실제 세계와 연결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때 나를 기준으로 과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기준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리는 쉽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은 어렵다.

5.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2차, 3차, n차의 성취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성취 경험이 반복되지 않으면, 아이는 다시 ‘해도 안 돼’라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또한 다양한 시도에서 성취 경험을 하지 않으면, 자기 효능감을 느끼지 못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기 어려워한다.

6.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성취 경험과 실패 경험을 해석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의미한 데이터로 만들게 하는 것

파편화된 데이터는 아이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 그런 데이터들을 연결해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고, 나름대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해 치열함을 발휘하고 싶은 일을 정할 수 있게 한다.(Connecting the Dots)

7.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치열함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며, 실제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것

치열함을 발휘하는 과정에서도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때마다 적절한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최종적인 성장의 단계가 나오면 막연함은 사라지고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이 치열함을 무조건 발휘하게 된 것도 아니고, 내가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바탕으로 지금도 아이들을 열심히 만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뭘 해야 할지 막연한 건 아니니까, 해볼만 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인 내가 그러니, 사실 교사들도 막연함이 사라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지면 아이들을 위한 열정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심지어 양아치 교사의 마음 한켠에도 아이들이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예비교사에게 끈질긴 교육적 물음 품는 '마인드셋 교육' 실시해야

그런데 지금 내가 밟은 사고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답은 사실 사범대를 다니면 전부 배우는 내용들이다. 사범대에서 열심히 공부한 교사들이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그런 내용. 그런데 왜 교사들은 막연해할까? 그것은 아마 '마인드셋'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교육적 문제를 당장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마인드셋의 부재가 아닐까.

그럼, 왜 마인드셋이 부재할까? 선생님들이 문제일까?

본인은 교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데, 아직 저런 마인드셋을 가르치는 교육을 사범대에서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마인드셋의 부재는 사범대에 복잡한 교육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이런 마인드셋을 이우중·고를 설립하신 부모님과 틈틈이 대화를 하고, 우연한 기회로 한 분에게 디자인씽킹과 퍼실리테이팅을 배우면서 습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배우고 나니, 사범대에서 배운 내용들을 실제 교육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이런 사고방식을 배우기 전인 2학년 때까지는 사범대에서 배우는 내용이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반전을 직접 경험해서인지 마인드셋의 힘을 강하게 느낀다. 그것만 있다면 수많은 교사가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도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치열함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한 치열함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범대에서 예비 교사들이 실타래처럼 복잡한 교육문제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마인드셋 교육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범대 교수에게 부탁한다. 가르치는 내용을 조금 줄이더라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져 학생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주시길. 그렇지 않으면 많은 학생이 교사가 되면 현장에서 당황하고, 3년 차가 되면 학습된 무력감을 갖게 되어 기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치열하지 않은 교사들로부터 배우는 학생들에게 치열함을 바라는 것은 무리한 기대가 아닐까?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교바사)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