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버린 김밥 두 줄의 추억...'정'이 통하던 스승의날
쉬어버린 김밥 두 줄의 추억...'정'이 통하던 스승의날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5.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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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에듀인뉴스]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었던 스승의날 모습

스승의 날이 지났다.

차라리 이럴 바엔 스승의 날을 휴무로 만들어 달라는 자조 섞인 교사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어버렸다. 28년차 교사는 쓸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두 가방에 가득 담긴 선물 꾸러미에 담긴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보던 스승의 날 시절도 있었다고 하면, 이제 막 교사의 길로 접어든 풋풋한 교사들은 상상이 가시려나.

스승의 날은 아이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오는 날이었고,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써오는 날이기도 했다. 간혹 어떤 학교에서는 “개별 선물이 부담스럽다”, “잔잔한 선물 여러 개를 드리느니 반 전체가 모금해서 제대로 된(?) 하나를 드리자”는 의견이 비등할 경우, 1인당 얼마씩 모금(?)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히 ‘전설의 고향’ 시절 이야기인 것이다.

아직도 그런 경험을 간직한 교사와 자판기 커피 한 잔도 마시면 범죄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교사가 현재 한 울타리에 함께 근무 중이다. 머잖아 교사집단도 교체가 확실하게 이루어 질 것이라 보지만 말이다.

그렇게 반장들이 담임교사를 위해 소풍 때면 ‘걸판진’ 도시락을 싸오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야기이다. 그런 시절이 그립거나 향수를 느끼는 것은 아님을 밝히고 시작한다.

쉬어버린 두 줄의 김밥속 사연

그해 반장이 된 기현(가명)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친화력이 좋은 아이였다. 틈만 나면 운동장에 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면서 친구들과 운동으로 다져진 우정을 과시하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에 걸맞은 활동력과 반항기로 똘똘 뭉친 아이였다. 밝고 구김이 없어 보이는 성격이었으나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소풍(현재는 체험활동이라 부른다)’날이 되었다. 각 반 반장들이 선생님용 도시락을 싸오던 그런 시절이었다. 전체 모임 후 시간이 되자 본부석을 정하고 자리를 잡았다. 각 반 반장들은 교사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로 커다란 도시락 찬합을 들고 속속 도착했다. 그 아이들이 밀물처럼 왔다가 사라지고 나자, 당시 우리 반 반장은 신문지로 돌돌 싼 도시락을 들고 나타나 도시락을 불쑥 내밀었다.

“뭘 이런 걸 다! 고맙다. 잘 먹을게!”

내던지듯 도시락을 건네고는 인사를 마친 아이가 겸연쩍은지 도망치듯 달아났다. 신문지에 쌓인 도시락을 조심스레 풀었다. 풀자 이내 플라스틱 일회용 도시락에 쌓인 김밥이 나타났다. 두 줄 쯤 되려나? 그런데 그 도시락 뭉치에서는 슬쩍 쉰내가 풍겨왔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아이 어머니가 도시락 싸실 형편이 안 되셨나, 미리 싸두었나? 사왔나? 만약 샀다면 어린애한테 어떻게 이런 도시락을 팔았나? 아이에게 이런 도시락을 판 장사꾼을 내가 그냥!’

하지만 아이는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쩜 어디에선가 화려한 찬합들과 신문지에 싸 온 자신의 도시락 사이에서 자신의 담임교사가 그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켜보고 있으리란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아침을 거르고 와 시장한 탓도 있었기에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반 줄 가량을 먹었다. 설마 그걸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나 생각하며 기분 좋게 먹었다. 옆에 계신 선생님께 밥이 상한 것을 들킬까 싶어 끝까지 신경을 쓰면서 도시락을 다 비웠다.

‘무슨 독을 먹을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성경의 한 구절이다. 맛있게 먹었는데 그깟 살짝 상한 도시락 좀 먹었기로 죽기야 하겠나 싶은 배짱이었다. 그 도시락을 먹은 나의 위장과 대장은 씩씩하게 소화를 했다. 튼튼한 장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반장 아이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후 물었다.

“그 도시락은 네가 산 거냐?”

“예 제가 샀어요. 아침에 일찍 가면 김밥집이 문을 열지 않을까 봐 전날 사서 가방에 넣어두었거든요. 선생님 전에 말씀 안 드렸는데, 저희 엄마는 새엄마예요. 새엄마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요.”

더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아이를 보내고 다시 생활기록부를 뒤져보았지만, 아이의 어머니가 새엄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신학기 초 면담할 때도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기에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상한 김밥 덕에 아이의 사연을 알게 되어 나중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 아이의 학교생활 이야기도 나누고 집에서 생활은 어떤지 등 대화를 나눴다. 상한 김밥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전화상으로 나눈 대화 속에선 자기 속으로 낳지 않았어도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정이 느껴졌다. 중학교 2학년. 한참 사춘기로 좌충우돌에 반항기 가득한 행동을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재혼하여 나이 차가 나는 동생도 생겼지만 딱히 잘 못 지내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거리를 두곤 한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춘기 소년의 복잡한 성장통. 마음 한 켠이 아려오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상한 김밥을 먹었지만.

그 후 그 아이는 고교를 졸업하고 해양대학을 진학해 배까지 탔고 졸업했으나 끝끝내 교사의 꿈을 접지 못해 재수 끝에 교원대에 진학했다. 아마도 지금쯤 대한민국 어딘 가에서 교사가 되어 제자를 잘 기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지금도 그 김밥이 상한 김밥이었음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모르면 어떤가! 나는 맛있게 먹었고, 소화까지 끝내주게 시켜버린 것을!

2007년 스승의 날. 교사와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벤트와 파티로 그날을 더 즐겼다.(사진=조윤희 교사)
2007년 스승의 날. 교사와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벤트와 파티로 그날을 더 즐겼다.(사진=조윤희 교사)

'정'이 사라진 교실이 아쉽다

지금 우리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진심으로 오고 간 물 한 잔, 차 한 잔, 쉰내 나는 김밥 두 줄에서조차 세상의 온갖 비리가 창궐할 것처럼 이야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을 슬퍼한다면 나는 시대착오적이고 구시대 유물일까. 책을 다 뗐다고 감자며 고구마며 집에 닭이 낳은 알 몇 알 소심하게 건네주던 우리네 정도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김영란법으로 꼼짝없이 범법자가 될 것이다.

스승의 날을 28번 보내며 생각나는 사건이 많지만 ‘상한 김밥의 추억’을 소환해 본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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