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옥 경기 안양 동안고 진로진학상담교사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대학을 가야 성공하나요?

수업 후 한 학생이 교탁 앞에 머뭇머뭇 서 있다. 대부분 수업 종료종이 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반사적으로 일어나 나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는 일상과는 달리 한 학생이 침착하게 다가온다. 유튜버의 성공방식에 대하여 열변을 토한다. 그렇듯 전문적 지식을 들은 바도 없었다. 수치도 정확하게 나열한다. 수익구조에 대하여도 빠삭하다. 고등학생치고는 너무나 박식하다. 한 30분 이야기를 나눈 후 자칫 중식을 거를까 걱정하며 서둘러 식당으로 유도하였다.

그 다음 주에도 4교시 수업 후 조용히 다가오며 하는 말했다.

“선생님 왜 대학을 가야 하나요? 대학 안 가면 성공할 수 없나요? 대학 안 가도 성공할 수 있어요. 유튜버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요. 정말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학원에 가는 시간, 국·영·수 공부하는 시간이요.”

순간 호기심에 사로잡혀 작심하고 그 학생의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관심 영역인 유튜브 영상 편집 기술을 연마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부모가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정말 답답하다고 한다. 가끔은 서러움이 북받쳐 울먹이기도 했다.

너무 각박한 생활! 듣기에도 벅차다. 그 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부모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생의 역할을 이중으로 수행하느라 하루 4시간만 잠자며 공부한다고 한다. 그 학생의 성적은 최상위권이다.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이 필요할까?

어쩜 경기도 혁신교육에서 이러한 학생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과다한 수업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하며, 학생들을 즐겁게 놀 수 있게 해주면 자신이 관심 있고 끌리는 것을 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이 심화할 때 자신의 진로 분야로의 접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할 법하다. 어느 혁신중학교 학부모 회의에서 교장선생님이 강조하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님들 제발 학생들 사교육으로 내몰지 말고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시키세요. 사교육 공부 안 해도 됩니다. 다 필요 없어요.”

과연 몇 퍼센트의 학부모가 이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

예전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삶이 단조롭고 평이하여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 가능했다. 성실하고 억척같이 원하는 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지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집 팔고 논 팔아 뒷바라지하는 것이 아주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었다. 한 예로 변호사나 판사가 되면 충분한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 다녀오면 논과 밭에 나가서 농사일을 거들거나 친구들과 모여 구슬치기, 사방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다양한 놀이를 하였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지금도 생각하면 뿌듯하고 즐거운 그리고 짜릿했던 성취감 같은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밀려온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은 초, 중, 고, 대학생 누구할 것 없이 바쁘다. 공부하느라 바쁘다. 학교에서 잠깐 집에들러 햇반에 국물 말아 후루룩 마시곤 또 학원으로 줄달음쳐 10시 가까이 되어야 귀가한다.

무슨 공부를 하는지 보면 대부분 국어, 영어, 수학이다. 그것도 내신 준비 아니면 선행학습. 어쩌다 이렇게 각박한 삶을 무엇을 위해 어린 학생들에게 지우고 있는가? 아이들 희생의 보상은 충분히 보장되는가?

'총체적 난국'..."시대는 변하는 데 교육은 멈춰 있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 또한 변화하고 있다. 한 마디로 예측 불가능한 복잡한 시대에 우리는 놓여 있다. 혼돈의 시대라 할 수도 있다. 기존 가치관이 여러 분야에서 무색해질 위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라 불리는 신기술의 등장으로 기존의 가치관이 위협받을 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가령 로봇 청소기의 등장으로 가사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무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장거리 운전에서 오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다. 자기부상열차가 운행되게 될 경우 더 이상 도로 정체로 인한 피로는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랴?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다양한 결과들은 무엇일까?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방식의 변화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충분히 대처하고 있는가?

요즘 이따금 들려오는 용어가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과연 이 시대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이 맞을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린 청소년들이 시간에 쫓기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으로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맹자가 말했다.

“컴퍼스의 곡척은 네모 모양과 둥근 모양의 표준이고, 성인은 인류의 표준이다. 군주가 되려고 하면 군주의 도리를 다해야 하고, 신하가 되려고 하면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요순을 본받으면 될 뿐이다.”(맹자 이루 상, 199).

이 시대 우리는 본받을 표준이 있어 우리가 군주의 역할, 부모의 역할 그리고 자녀의 역할과 같은 근본을 이해하기에 충분한가?

BTS, 손흥민, 류현진..."즐김이 낳은 희망의 증거들"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준 그 누군가가 늘 있었던 것이 우리 한민족의 역사인 듯하다. 무너질 듯 하다 가도 벌떡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왔다. BTS, 손홍민, 류현진. 이들은 세계 정상에서 훨훨 날고 있다.

연일 장밋빛 뉴스들이다. 빌보드 차트 1위,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우승 주역의 골 결정력, 미국 메이저리거의 완벽한 무실점 제구력 등. 그들만의 독창적 성공법으로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들의 자신감은 무엇에서 나오는가?

한마디로 자유롭게 즐기는 그 무엇에 제구력을 갖춘 것이 아닐까?

청소년들의 교육에서도 즐기며 제구력을 기를 수 있다면 그리 학원으로 뺑이 돌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 단순한 접근으로도 복잡한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적은 에너지로도 즐기면서 충분한 지적 안목을 키울 수 있다면 그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을 텐데, 그 방법이 무엇일까?

감히 말하고 싶다. 교과서를 내던지고 책을 읽자. 10권을 읽든, 50권을 읽든 각 수준과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골라서. 그리고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읽은 내용 몇 줄이라도 음미하며 글을 써보자.

거기에 날아가는 잠자리도 스케치해 보고, 따스한 햇볕도 노랗게 그려 넣고. 그러다 인문고전으로의 도전도 해보자. 그때 그들의 고민과 처세와 도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이순옥 경기 안양 동안고 진로진학상담교사
이순옥 경기 안양 동안고 진로진학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