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관점] 가르침(교육) 없는 배움이 행복의 열쇠

오늘날 교육 기관과 단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에 관련한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에듀인뉴스>는 “교육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 틀이 지닌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 소장(서울 경기고 교사)과 함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김두루한의 배움 혁명’ 연재를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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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르침’(학교 교육)

정유라의 이대입시 부정에 이은 대통령 탄핵과 구속,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수월성(엘리트) 교육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교수, 교사의 자녀 부정 시험 관련 기사가 꼬리를 잇는 가운데 교육계 불신이 극한에 이른 ‘교육망국론’을 현실에서 보고 겪는다.

“까닭 모를 우울함은 내가 살 희망을 잃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에 나가서 그 순수함을 점점 잃어 가는 때 묻은 어른들, 그들은 나에게 환멸만을 안길 뿐이다.”

11년 받은 ‘학교 교육’으로 살 희망을 잃어간다는 어느 고2 학생의 속마음을 읽어 보자.

“며칠 전에 수능 점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오가는 교무실에서 간간이 아는 선배들을 보고 있다. 선배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어두움이 서려 있었다. 학년이 끝나가는 요즈음, 내가 그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까닭 모를 우울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이젠 드디어 우리 차례라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참혹해서 차마 눈 뜨고는 보기 힘든 학생부 교과 성적과 그에 따르는 부담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매일매일 성적문제로 다투는 부모님과 올 한해 나에게 실망만 안겨 주었던 학교의 모습 때문일까?”

수업과 평가 나눔 문화, 왜 어려울까

얼마 전 수업 개선을 넘어 수업혁신을 하자는 연수에 갔다. 학교 혁신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일체화까진 왔으나 여전히 고등학교에서는 수업과 평가의 나눔 문화를 펼치기가 어렵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래도 ‘교육이 바뀌겠어’란 자조와 냉소를 ‘교육은 바뀔 수 있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을 지닌 분들이 많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교육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희망은 만들어 가는 것,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교육희망’을 말한다. 이처럼 누구든 대입까지 ‘입시 교육’을 하루바삐 벗어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실시에 머물러 있다. 집이나 학교에서 부모나 교사의 가르침보다는 자녀나 학생이 스스로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생각하며 서로 나누도록 집과 학교가 거듭나야 할 ‘배움의 시대’인데도 말이다.

교육, ‘가르치고 기르는 일’인가 ‘가르쳐 기르는 일’인가

새삼 대한민국 ‘교육계’가 말하는 ‘교육’이란 어떤 뜻인지 묻게 된다. ‘교육’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가르쳐 기르는 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교육’의 중심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껏 해 온 대로 교육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로 보면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대상인 학생을 가르치고 기르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교육의 중심은 자연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활동에 놓이게 되고 교사를 좇아서 배우는 학생의 활동은 주변에 머물고 만다.

이와 달리 교육을 ‘가르쳐 기르는 일’로 보면 어찌 될까? 교육은 가르침을 펴는 교사와 기름을 이루는 학생이 함께하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은 모두 교육의 주체로서 새의 두 날개와 같이 가르쳐 기르는 일을 함께 이루어간다. 예기(禮記) 학기에서 찾아본 교학상장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는 서로를 키운다고 한다.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고, 지극한 도리가 앞에 있어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대함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가르쳐 보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가르침의 고단함을 깨닫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연후에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가르침의 어려움을 깨달은 연후에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보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노라!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는 서로를 키운다!” - 중국 고대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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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아닌 ‘배움’에 길이 있다

그런데 가르침을 펴는 주체는 교사다. 교사는 가르침으로써 학생을 기르고자 한다. 하지만 교사의 가르침이 곧바로 학생의 기름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교사가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학생이 전혀 배우지 않으면 기름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까?

‘기름’이라는 열매를 가져오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학생이다. 학생이 기름으로 나아가는 까닭에 ‘가르쳐 기르는 일’은 언제나 ‘배움’을 끌어들이게 된다. 학생이 전혀 배우지 않으면 기름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사람은 보고, 듣고, 따라서 배운다. 이때 원하지 않는 것, 쓸데없는 것 등 학생의 의사나 의향과 달리 배우는 것은 억지 배움이다. 올바르지 않은 것 등을 배우니 거짓 배움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헌법에서부터 ‘더욱더 많은 것을 넓고 깊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배우려고 가르침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학생 쪽에서 보면 어떨까? 그것은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려 배움이다. ‘가려 배움’이 될 때 제대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긴다.

이제껏 교육과정과 수능(수학능력) 시험에선 국어, 영어, 수학과 달리 사회나 과학은 여러 과목에서 골라서 배운다. 이렇게 ‘골라 배움’에 머무르면서 앞에서 든 학생 스스로 ‘가려 배움’이 빠졌다. ‘가려 배움’은 마땅히 ‘즐겨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그렇다. ‘교육’이 아닌 ‘배움’에 길이 있다. 이제 교사들도 ‘교육주체’로 나서지 말자. 다만 ‘배움’의 본보기로 저마다 거듭나자. ‘스스로 묻고 함께 새 답 찾기’란 늘배움에 힘써야 하기에.

‘교육(가르침)’의 대안은 ‘가르침 없는 배움’

이처럼 가르침과 배움은 관점이 다르다.

줄 세우기가 목적인 ‘가르침’과 달리 배움의 목적은 ‘학생의 성장’을 내세운다. 교육과정과 수업의 전문성도 달리 본다. 가르침(교육)은 ‘교육과정’을 함께 읽자고 하거나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하여 수업하자는 제안이나 연수를 내세운다. 하지만 배움은 학생들의 관심사를 살린 맞춤 배움 과정으로 학생의 성장이 일어나도록 다가선다.

김정안 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지원센터장의 “혁신학교 교사로서 경험해 보니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과 학교 활동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과 학교 활동’을 말한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학생이 배움의 주체가 되는 것은 ‘(교사가)가르치지 않는 수업’으로도 학생에게 ‘깨배움(깨침, 깨달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제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삶, 다양한 삶을 추 구하고 교육은 개인의 선택과 성장을 지원해야 합니다. 협력과 공존의 교육으로 학생 성장 중심 교육으로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찾을 수 있는 개별화 교육으로 바꿔야 하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취임사

가르침(교육) 없는 배움이 행복의 열쇠!

'교육개혁은 학생·학부모의 공감을 얻는 데 성패 달려', '쉽고 단순한 대입제도 개선안 마련해야…과정에 승복할 수 있도록 공론화 필요' 등과 함께 줄곧 ‘소통’을 강조하고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역설한 ‘문재인 정부’는 이제 답해야 한다. 왜 21세기를 사는 학생들이 ‘배움의 시대’에 주입식 강의를 들어야 하고, 정기 고사란 이름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칸막이 교과 시험을 봐야 하는지 말이다.

‘원형 탁상(하크니스)’에서 교사 1명과 학생 12명이 수업하면서 개별, 모둠별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깨배움을 하도록 돕는 게 어떤가? 교사가 도와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주제를 정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해 토론거리를 찾아 발제하는 것이야말로 정작 우리가 바라는 ‘참배움’이 아닌가? 어떤 논제에 대해서 학생들끼리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일, 토론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협력하며 지식을 얻는 것이 진짜 공부(최유진 North Park University Professor)일 테니까.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말처럼 ‘배움’은 끝없이 흘러가는 하나의 리좀(Rhyzome)으로 뿌리내리지 않고 흐르면서 새로운 스승을 만나 배우고 또 옮겨가고 달라진다.

배움의 때가 따로 있지 않아 3차원의 근대적 시간에 매이지 않고 봉건에서 근대, 탈근대와 미래로 연결된 우주를 넘나들며 낯섦을 즐긴다. 그래서 가르침(교육) 없는 배움이야말로 저마다 행복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다.

이제 함께 틀(패러다임)을 바꿔내자. 교육에서 배움으로! 배움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연재순서 ①[시대 정신] ‘배움의 시대’에도 ‘주어진 물음’에 답해야 할까?/ ②[관점] 가르침(교육)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③[배움권] 가르침(교육)을 받는 것보다 배움을 누리는 게 권리/ ④[학력] ‘아는 배움’보다 ‘할 줄 아는 배움’으로/ ⑤[고교 학점제] ‘교과목’보다 학생 ‘관심사(주제)’를 배워야/ ⑥[수업-평가] 국바(IB) 도입보다 찍기(선택형)시험부터 버려야/ ⑦[대입  전형] 얼치기 ‘대학수학능력’보다 ‘고교졸업자격’을 길러야/ ⑧[학생부] ‘학교생활’보다 학생 삶이 드러나게 기록하자/ ⑨[학교 운영] ‘행정’보다 ‘수업, 상담’을 지원하는 학교 틀로 바꾸자/ ⑩[교사] 스스로 배움의 본보기가 되는 ‘혁명가’로 거듭나자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 소장/ 서울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 소장/ 서울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소장(경기고 교사, 문학박사)은 열린시대교육개혁론(이서원, 1996)을 펴냈으며 앎의 두루퍼짐과 겨레 하나됨이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가꾸려는 뜻을 지니고 1987년 한양여고에서 교편을 시작한 뒤로 33년째 교직에 종사 중이다.

한국인격교육학회 부회장, 한글학회 평의원, 한국어정보학회 이사,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전교조 부설 참교육연구소 중등새로운학교연구실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참배움학교연구회를 조직해 매월 참배움이야기마당 등 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2017년 이후 참배움연구소로 개편해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교운영체제(교과체제), 고교학점제, 대입전형, 과정(수행)평가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최근 고교주제학점제 실행방안(2018), 배움과 성장이 있는 교사의 삶 가꾸기(2018), 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등학교에서 사람다움(인성)기르기(2017), 정보 시대 생각하는 참배움의 뜻과 길(2017) 등을 발표했고 현재 ‘배움혁명’(2019)을 출판 준비 중이다. duruh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