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구미사곡초등교 교사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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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10여 년 전, 큰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이 학교는 인근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갑자기 학급수가 많이 늘어났다. 학교가 커지면 학사운영에 혼란이 빚어지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급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보통 20~30학급 규모만 돼도 점심시간을 학년별로 분산 배치하여 저학년 학생들은 1시간 일찍 점심을 먹는 식으로 급식 시간을 운영하곤 한다.

그런데 당시 이 학교는 60학급이 넘는 거대 규모여서 그런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되어 내가 속한 3학년 학생들은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2학년 때까지는 3교시 마치고 점심 먹다가 갑자기 5교시까지 기다려야 하니 아이들의 생활 리듬이 깨지고 신체 건강도 염려되었다. 학교엔 집안 형편상 아침을 못 먹고 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신체건강보다 정신건강이 더 걱정되었다. 5교시 수업 뒤에 점심 먹고 바로 하교하는 탓에 아이들의 학교일상에서 점심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공복에 음식물을 섭취하는 시간이 아니라, 밥을 빨리 먹고 뛰어노는 시간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밥보다 놀이가 더 고프다.

아이들은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놀러 온다. 이런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을 뺏는 것은 행복을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팍팍한 아이들의 일상에서 어쩌면 유일한 행복의 원천을 봉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나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아니면 언제 어디에서 놀 수 있단 말인가?

교육부의 초등 저학년 놀이시간 확대..."아이들에게 행복 돌려주는 일"

교육부가 2학기부터 초등학교에 저학년 아이들의 쉬는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안내하며 2022년까지 전국 학교에서 시행할 방침이라 한다. 이를 위해 1~2교시와 3~4교시를 블록수업으로 묶어 30분의 중간놀이시간을 확보하는 한편, 1~2학년 교육과정을 ‘놀이 중심’으로 구성하여 예체능 교과는 물론 주지 교과에도 놀이활동을 최대한 포함하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최악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자살률 또한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이며 그것도 점점 상승하는 추세인 점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생에서 결정적 시기인 어린 시절에 마음껏 못 논 것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 아이들은 놀이에 굶주려 있다. 밥을 못 먹으면 몸이 축나듯이 충분히 놀지 못하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조치는 놀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육부의 시책 발표는 질식 직전의 생명에 산소마스크를 공급해주는 것과도 같은 복음(福音)으로 들린다. 매일 밥을 먹듯이 아이들은 매일 놀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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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야 '공부할 힘'이 생긴다"

1시간에 40분씩 하던 수업을 1~2교시와 3~4교시를 블록으로 묶어 80분 연속으로 하면 저학년 아이들이 어떻게 견뎌낼지, 또 교육과정을 놀이중심으로 편성하면 학업성적이 저하되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가 예상된다.

사실, 블록수업을 통해 30분의 중간놀이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은 그리 새삼스러운 묘책이 아니다. 혁신학교 진영에서는 이미 시행한다. 몇 년 전에 필자가 근무한 학교에서도 시간운영을 그렇게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저학년 학생들도 수업 몰입도 면에서 별문제가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수업 집중력은 오히려 타 학교 학생들보다 더 높은 편이었다. 이는 블록수업이 한 시간 단위의 수업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놀라운 인과관계는 학생들을 충분히 놀게 한 것에 기인한다.

이 학교에서는 중간놀이 외에도 방과후에 아이들이 실컷 놀 수 있게끔 학교 일정이 짜여 있는데, 아이들을 실컷 놀리면 어떤 ‘힘’이 생겨난다. 그것은 ‘공부할 수 있는 힘’이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일이다. 어른들이 휴식을 통해 일할 힘을 재충전하듯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공부할 힘을 비축한다.

그리고 실컷 뛰어놀면 저절로 체력이 좋아진다. 이 학교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6년 동안 실컷 뛰어논 덕분에 튼실한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중학교에 올라가서 학교생활은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졸업생 학부모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교육방식이 옳다는 확신을 하곤 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 삶을 살아내는 힘을 길러간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힘이다!

향후 1~2학년 교육과정을 놀이중심으로 편성할 것이라 하니 벌써부터 기초학력 부진 운운하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안 그래도 최근 사회 일각에서 기초학력 문제를 들어 혁신학교교육을 비판하는 주장이 분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동발달 원리상 저학년 아이들에게 놀이는 공부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임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놀면서 '사회성'과 '학습능력'을 배운다

놀이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령기 이전에 놀이를 해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놀 줄 모르는 아이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아이들은 사회성은 물론 학습능력도 낮다는 점이다. 모든 놀이에는 규칙이 있는데 아이가 놀이의 규칙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적 수준과 정서적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인지 발달과 사회성 발달을 도모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발달은 독서나 성인의 설명을 통한 지적 활동으로도 이루어지지만 놀이를 통할 때 훨씬 효율적으로 일어난다. 아동심리학자 비고츠키의 말을 빌리면, “놀이는 아동의 근접발달영역(ZPD)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놀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규칙 준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조절 역량을 길러간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놀이 규칙을 어기거나 투정을 부리면 놀이의 흥미가 떨어지고 또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민주시민의 중요한 자질’을 학습해갈 수밖에 없다.

이렇듯 놀이를 통해 지적 성장과 정서적 발달을 도모하며 공동체 생활에서 중요한 자질을 길러가니, 아이들에게 놀이는 곧 공부다!

요컨대, 아이들을 못 놀게 하는 것은 아이의 행복과 성장을 막는 것과도 같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서로 다투다가도 다시 화해하고 또 때론 의기투합하면서 양보심과 협동심 그리고 이웃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면서 이 사회의 건강한 공민으로 성장해간다. 놀이기구나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다양한 노작 활동을 통해 페스탈로치가 말하는 3H 즉, 손재주(Hand)와 영민한 머리(Head) 그리고 따뜻한 가슴(Heart)을 키워 간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잘 볼 수 없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놀이터가 아닌 학원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참담한 현실이다. 학교가 파한 뒤에는 놀 수가 없으니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라도 마음껏 놀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놀이시간을 확보해주고 안전하게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어주자. 이 나라의 밝은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렸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은 놀이를 통해 가능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고 힘이고 공부다."

이성우 구미사곡초 교사
이성우 구미사곡초 교사